올여름 휴가차 독일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 분단을 극복한 나라, 어딘가 외유내강형의 단단해 보이는 나라.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이 기대하며 공항에 내렸다.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표를 어디서 사야 할지 아무리 찾아도 알 길이 없었다. 큰 짐을 끌고 다니느라 지쳐갈 즈음 정거장에 두 명의 한국 여학생을 발견했다.
“버스표 어디서 사는 거예요”라는 질문에 “그러게요. 우리도 찾다가 포기했어요. 그래서 그냥 타려고요.” “그냥 타라고…. 그냥 타도 돼요.” 순간 망설였지만 나도 모르게 그 버스에 올라타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은 매번 버스를 탈 때 표를 체크하지 않고 무임승차가 적발될 경우 큰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버스가 출발하고 다음 정거장에서 뒷문으로 손님이 내리는 순간이 왔다. 무겁고 큰 캐리어를 든 나는 내렸다 다시 타기가 불편해 몸을 한쪽으로 밀착해 사람들이 내릴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나를 비켜 여러 사람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버스가 출발하려 할 때 내 옆에 서 있던 한 남성이 나를 손으로 밀쳤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거지….
독일 말은 ‘구텐 탁(안녕하세요)’밖에 모르는 내가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 사람 말의 요지는 이거였다. ‘버스 문을 막고 있지 말고 다시 내렸다가 타야지… . 이 미개한 인간아.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지. 그냥 너희 나라에 가만히 있지’였다(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한 욕일 수도 있다). 당황하며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나에게 그 사람은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어마어마한 수치심과 모멸감이 나를 감쌌다.
“좋아. 내가 너희 나라 문화를 잘 몰라. 그런데 좋게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거든, 이 나쁜 인간아!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네가 더 미개한 인간이거든.”
이렇게 한마디 정도는 해야 했다. 아니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한마디도 못 했다. 그래 짧은 영어로라도 한마디 하자. 그런데 아뿔싸, 난 티켓 없이 무임승차한 범법자였다. 고스란히 그 모욕을 견디고 다음 정거장에서 쫓기듯 내려버렸다.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쳐다보는 그 버스 승객의 모든 시선은 내 인생의 최대 모욕이었다.
나에게 독일이라는 나라의 첫 이미지는 그 시간에 멈춰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어리숙하게 버스에 승차한 동양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만일 독일 말을 잘하는 동양인이었다면, 내가 만일 건장한 남성이었다면 등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난 그 나라에서 소수자, 이방인에게 던지는 차별을 몸소 경험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862825
이기주의, 피해의식 만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