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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3 07:16
군대에서 사격군기를 중시하는 이유.eu
 글쓴이 : 그래서뭐임
조회 : 2,377  




1분 50초쯤부터 답답하네요 아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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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과 18-03-13 07:42
   
영화에서 긴장으로 인한 급사격 장면은 보통 이기던데 ....왜 이건..
     
백투산 18-03-13 08:00
   
시나리오 대로 흘러 가려면 저럴 수 밖에요
          
빨간사과 18-03-13 08:30
   
정해진 시나리오라서 어쩔 수 없지만 ㅠ
01410 18-03-13 08:03
   
남한산성 영화 잘만들었죠...
백투산 18-03-13 08:08
   
참고로 저 당시 조총 검색해보니 사거리 100보, 명중률이 좋지 않았다네요.

 총열에 강선이 없고 활강총이라해서 자유운동으로 인해서 100보 이후로 총알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네요
사격술 중에 곡사가 있었다네요
rhine12 18-03-13 08:11
   
조총의 사거리는 상당히 짧죠. 게다가 재장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 첫발에 큰 피해를 줘야 하는데, 영화를 보면 기병이 아직 멀리 있는데 총을 난사 했으니 피해는 전혀 못주고 기병이 돌력할 시간만 벌어준 셈입니다. 결과는..
     
백투산 18-03-13 08:13
   
우리나라 필살무기 애기살이 300보니 이거 부대 양성이 더 좋았을텐데 ㅠㅠ
          
아날로그 18-03-13 08:51
   
애깃살....편전.........
이건 지금으로 치면 군사보안에 가까웠다고 보면 됩니다..
그 무기가 역성혁명에 쓰일걸 두려워해서...보편화시켜 보급하길 꺼렸죠.
               
촐라롱콘 18-03-13 09:22
   
애깃살은 화살이 작아 적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당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쏘는 과정에서 한 과정이 추가되어야하고... 그리고 사수가 일반 화살을 쏠 때보다도

더욱 숙련되어야만 어느정도의 명중률을 보장하기 때문에....

수성전이나 기습전 등의 한정된 전장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더구나 애깃살은 빠르고 정확한 대신, 파괴력은 떨어지는지라... 특히 병자호란 당시

겨울철에 겹겹이 껴입은, 게다가 청나라 팔기군들이 착용한 갑옷의 방호력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상태에서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청나라군이 픽픽 쓰러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픽션입니다!!!^^
                    
아날로그 18-03-13 12:35
   
그깟 영화보고 쓴 댓글이 아닙니다.

병자호란까지 갈것도 없고...
조선시대 편전의 최고달인 중의 한 명이 이성계 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신립 장군 역시 편전을 너무 과신하여
조총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촐라롱콘 18-03-13 09:29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이 건국되던 무렵... 명나라와 후금과의 전쟁에서 조선도 어쩔수 없이

개입하게된 사르후전투에서.... (그 중에서 조선군이 후금군과 격돌한 것은 부차전투입니다만...)

후금기병이 돌격하는 가운데... 조선군 조총사수들이 한 발을 일제사격하고

2번째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후금기병들이 들이닥쳐 이후부터는 그냥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지요!

13,000명 3영의 조선군 가운데 좌우영 2개영 7~8,000명의 조선군이 순식간에 함몰되고
(후금군 피해는 대략 200명 정도)

도원수 강홍립의 중영 5,000명 정도만이 보존되어.... 후금군에게 항복하게 되지요~~~
기성용닷컴 18-03-13 08:15
   
아.... 저 장면 볼때 역시 비슷한 생각이 들었네요;;;; ㄷㄷ
ddfff1 18-03-13 09:08
   
저때 사야가가 청나라군 500명 죽이고 승리했었는데 저영화에는 없었나요??
     
촐라롱콘 18-03-13 09:40
   
사야가 김충선이 병자호란에 참전했다면... 경상도군들이 청나라군과 격돌한 쌍령전투일텐데...

(사야가 김충선이 병자호란 시기 대구-달성 일대에서 터를 잡고 오래 살았기 때문에....)

쌍령전투는 경상도속오군들이 주축이 되어 충청도일부병력이 가세한 무려 3~4만에 달하는 병력이

고작 300명의 청나라 기병들에게 패한 전투입니다. 물론 쌍령전투에서의 청나라군 지휘관이

청태종의 조카 악탁이므로 최초돌격한 병력은 300명이라도 전투에 동원된 청나라군 규모가

3천~6천까지도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저라나 쌍령전투는 전투라고도 할 수 없는 그냥 일방적인 학살극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2만명 가량의 조선군들이 함몰된)

김충선이 만약 참전했다 하더라도 공을 세웠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을 것입니다.
Alice 18-03-13 09:31
   
참 암담하네요.
듀랑고 18-03-13 10:47
   
후우
깁스 18-03-13 10:52
   
잘만든 영화에요 흥행실패가 아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