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군생활할 때 저희 연대에서 바로 길 하나만 건너면
3군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ASP라고 전시탄약 보관창고가 있었습니다.
작은 야산 몇 개를 뺑 둘러서 탄약고로 쓰고 있던 꽤 큰 규모였죠.
부지는 넓은데 주둔 인원은 적다 보니 저희 연대에서 각 대대별로 돌아가면서
탄약고 근무지원을 나갔었습니다.
연대본부에서는 전투중대가 우리와 전투지원중대 밖에 없었는데,
전지대는 지원나갈 수 없다고 해서 저희가 연대본부 차례가 되면 말뚝으로 근무지원을 나갔었죠.
근무 초소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주간에는 탑형의 초소였고 야간은 탑형 초소에서 조금 떨어진 지상에 마련된 초소였죠.
그 중 임시막사에서 두번째로 멀리 떨어진 초소로 야간근무 나갔을 때 였습니다.
그 초소는 다른 초소와 다르게 초소에서 몇백미터 떨어진 곳에 무덤이 몇 기 있는 곳 이었습니다.
동틀 새벽 무렵이 되면 그 무덤들에서 물안개 같은 것들이 피어 올라서
분위기를 무섭게 만들고는 했었죠.
어느 날, 야근 근무를 서는데 사수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사수가 귀신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귀신 이야기를 듣는데 꽤 무섭더군요.
그 날은 바람이 참 세게 불던 날이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철조망이 뭔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여자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하고 사수는 귀신 이야기를 하다가 동시에 그 소리를 듣고 일시에 침묵.
그러더니 고참이,
" 너 들었지? "
" 네 "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초소 밖으로 나갔습니다.
초소 밖으로 나가서 바로 앞의 철조망으로 다가가는 순간
둘 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 앉았습니다.
철조망에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해친 귀신이 매달려서 흐느끼고 있었던 거죠.
우리는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혼비백산 해서 총을 겨누는데 이건 뭐 심장마비가 올 정도 였죠.
그런데 그 귀신이 갑자기 흐흐흐하면서 웃는 겁니다.
그러더니 철조망에서 내려와서는 산 밑으로 웃으면서 내려가는 겁니다.
우리는 넋이 나가서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귀신은 사라진 후 였죠.
그제서야 그 고참이 정신이 들었던지 이러는 겁니다.
" 아 맞다...저거 미친*년이다 "
" 네? "
그 뒤 고참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 초소에서 산 밑으로 내려가면 무당집이 하나 있는데,
그 여자가 거기 딸이라는 겁니다.
거기 딸이 미쳐서 가끔 저러는데 자기도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몇 달 뒤에 야간행군을 하면서 그 초소 밑에 있는 마을을 지나는데
굿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군요.
그리고 고참이 하는 말이,
' 거봐 내 말이 맞지? 무당집 있다고 했잖아 '
진짜 그 순간에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