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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01 01:48
잊을수 없는 1994년
 글쓴이 : 바람따라
조회 : 1,129  

아래 글에서 1994년의 혹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1338710&page=2) 를 언급하시니 기억나네요.

1994년은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충 기억나는게 김일성 사망 (전쟁나는줄 알았음;가족/친척들끼리 서로 전화하고 난리), 성수대교 붕괴, 수십년만의 혹서 등등

삼풍도 그때쯤인가 싶어서 찾아보니 그건 아니었네요.


1993년 10월 10일 서해페리호침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4월 28일 대구지하철공사장가스폭발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붕괴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나라에 뭔 마가 꼈는지..대형사건사고가 주르륵..

그러다 97년 한방 크게 맞았죠..IMF..

박대통령 재임기간도 후에 그리 평가되려나요? (메르스, 세월호 등)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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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장여관 16-08-01 01:53
   
구포열차사고로 사람많이 죽었고..대한항공도 떨어져서 다 사망했었죠..태풍도 엄청왔고..

진짜 그해년근방은 눈만뜨면 사고나더니 결국 97년에 사단이 벌어지고 말더군요
     
바람따라 16-08-01 02:00
   
아 구포열차전복..그것도 있었군요. 대한항공은 97년 괌 추락이죠?
황윤 16-08-01 01:57
   
고딩때 버스타고 집에 가는데 라디오 뉴스로 김일성 사망 나옴. 버스안에 갑자기 정적이 감돌더니 전쟁나는거 아니냐고 소란스러워짐. 그러더니 라면사간다고 내리는 사람도 있었음.
     
바람따라 16-08-01 02:04
   
전 당시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라 휠체어 타고 티비의 긴급속보를 봤습니다. 제딴엔 빨간애들 쳐들어오면 싸워야하는데 이러고 있다고 걱정했더랬죠 ㅋ;
부모님은 시골 친척들이랑 전화하면서 피난가야하는거 아닌가 의논하고;;
바벨 16-08-01 02:00
   
94년에 대한 그나마 좋은 기억이라면..

미국월드컵에서 스페인 상대로 서정원선수의 역전골.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교복을 벗고.. 처음 만났던 연애..


사실 당시는 신문만 봐도 아비규환이였죠..

지존파사건, 부모살해한 박한상사건.. 이것도 그땜니다.


요즘엔 그때보다 더 살벌한 사건이 많으니..ㅉㅉ
     
바람따라 16-08-01 02:05
   
아 일과 이분의 일..저도 참 좋아했었습니다 ㅋ

지존파, 박한상..기억나는군요..
     
바람따라 16-08-01 02:16
   
94년 미국 월드컵하면 왜 la가 생각나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 기억도 나는군요.

그런데 왠지 또 la하면 92년 흑인폭동도 기억나고..기억이 꼬리를 무는군요 ㅎㅎ;
야밤이라 그런가 ㅋ

https://www.youtube.com/watch?v=69Br2Xu_Ark
스트릭랜드 16-08-01 02:01
   
아시아나 추락사고도 있었음
     
바람따라 16-08-01 02:06
   
헐..진짜 사건사고 많았네요..그러고보니...
프러샨블루 16-08-01 02:08
   
94년쯤이면 완전 살기좋던시절 아닌가요? 우리집, 앞집, 옆집 누구나 돈 잘벌고 펑펑쓰던시절.
음식점, 옷매장, 치킨집등등 무슨장사를 하든 2년안에 아파트사고 친척들끼리 아파트분양 돌려먹기하고 등등
     
바람따라 16-08-01 02:13
   
경제적으론 엄청난 호황이긴 했죠. 97년초까진..

그때 중고등학생들 과외 두탕만 뛰면 최소 50에 많이 벌면 100만원도 넘게 벌던 시절이었으니깐요.
용돈에 과외비에..너무 풍족했었습니다 저도;;
아마 그 이후로 과외비도 그다지 오르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바벨 16-08-01 02:18
   
그때 영수 두과목 일주일 두시간씩 세번이 시세가 50만이었죠.

IMF오기 전까지 그때가 아마 대학생들한텐 꿀이었죠.

대기업 채용설명회때 기업에서 돈도 뿌렸으니.
               
바람따라 16-08-01 02:29
   
저도 기억나는게..면접보러 가니 면접비라고 봉투에 현금을 넣어주더군요. 기억이 가물한데..3만원이던가 5만원이던가 그랬던 기억이..
여기저기 면접다니니 돈이 은근 모이더라는..쿨럭;
               
프러샨블루 16-08-01 02:31
   
저때는 국민학교때 영수과외가 보편적이지 않을때같아서 모르겠는데 피아노, 바이올린이 40만원정도 했던것같네요. 국민학교때 시험보면 유독 음악필기점수가 안나와서 음악과외는 받았네요ㅋㅋ
     
바벨 16-08-01 02:15
   
가계소득이 96년까지는 외벌이로 4인가구 먹고살기에 넉넉한데다.
집값, 전세로 힘들어하지도 않았고, 신용카드 사용이 점점 확대되기 시작했고,
가계부채 걱정없이 살았죠. 사회안전망은 그와는 별개로 엉망진창이었지만..
          
바람따라 16-08-01 02:27
   
사회안전망이야 뭐..그런게 뭔지도 모르고 살던 시절이었으니깐요 ㅋ
     
황윤 16-08-01 03:37
   
호황은 호황이었죠. 당시 돈이 벌리니 주부였던 어머니까지 장사한다고 음식점차리고 집에 있던 빚 다 갚고 살림좀 펴지나 싶었을 때 97년 그날이 왔죠. 98년도 제대하고 복학했더니 잔디밭에서 대까리 까는 후배들 보고 시겁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적어도 군대가기 전까진 아무리 없어도 맥주정도는 돈걷어서 부담없이 사먹던 시절이었는데, 98년도엔 완전히 세상이 변해 있더군요. 97년 그날 이후로 대학의 낭만은 사라졌죠.
프러샨블루 16-08-01 02:33
   
제가 만약 94년에 성인이였다면 탈세만으로도 기가막히게 돈벌었을텐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