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학적으로 북한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창덕궁 창경궁 종묘 모양이 임금의 머리와 몸통이 닮았다고하여 일본 개객끼들이 목을 잘라버린다고 산을깎아 도로를 내버렸죠.
일제 만행을 비판할 것 널렸건만, 어째 이런 풍수지리니 뭐니 하면서 엉뚱한 얘기들로 물을 흐리는지 답답한 노릇입니다.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중 서구문물에 어둡고 미신에 찌들어있던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식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일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정말 그랬을지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북한산 정기를 끊으면 조선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저항을 포기할걸로 생각했을까요 ? 도대체 얼마나 더 비참해지려는겁니까 ? 사진 찍히면 영혼 뺏기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아프리카 토인이었나요 ? 만약 당시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조선 사람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서 하지 않는게 정상이죠.
율곡로 언제 만든건진 알고 계시나요 ?
1926 년 순종 사망후 즉위한 영친왕의 허가를 받아서 뚫은겁니다.
연도를 잘못 쓴거 아닙니다. 한일 합방으로부터 16 년뒤죠.
사실 율곡로를 문제로 삼는 것은 한참 핀트가 벗어난겁니다. 그 이전에 이미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유원지로 만들어버렸죠. 참고로 창경원은 해방 이후에도 오랜 기간 서울의 대표적인 유원지였고, 요즘 기준으로 말하자면 롯데월드쯤 됩니다.
구한말 당시에도 조선 왕실은 군대가 폭동을 일으키고, 황후조차 지키지 못 했고, 왕이 남의 나라 대사관에 가서 피난갈 정도였는데, 한일 합방하고 16 년뒤에 와서 북한산 정기 끊는다고 예산 펑펑 써가며 율곡로 닦을 필요를 느꼈을까요 ?
비록 구한말 왕실은 무력화되었지만, 일제는 지방 사림의 반발을 우려해서 왕실을 계속 존속시켜놓습니다.
심지어 http://weekly.donga.com/List/3/all/11/80459/1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해방 당시까지 왕실 재산중 각종 토지는 무려 1억5519만8532 평에 달했죠. 여의도 면적의 60.5 배나 됩니다.
이제 좀 정상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던 것과 달리, 일본은 한반도를 자기들이 살 땅으로 여겼으며 임진왜란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대륙 점령의 교두보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수도를 도쿄대신 서울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대세는 아니고 소수파의 주장)
만약 그 잘난 대동아공영권을 현실화시켰다면 진짜 서울을 수도로 삼았을지도..
대륙을 넘봤던 걔네들로서는 당시 서울의 도시 구조가 대단히 마음에 안 들었을겁니다. 좁은 지역을 성곽으로 둘러싸고 사대문등 몇 몇 대문으로 통하며 내부 도로도 부실했을테니까요. ( 구한말 당시 사대문과 한양 사진 찾아보세요 )
일본은 막대한 자금 지출하면서까지 전차를 부설해놓죠. 얘네들은 자신들이 살 곳으로 여겼기 때문에 도시 계획에 열심. 남의 땅에서 심시티 게임한거죠. ( 하려면 좀 잘 해놓든가.. )
유원지 하나 없는 서울이 답답해서 창경원도 만들어놓고요. 당시 창경원은 서울의 외곽지역이었습니다. 1924 년에는 일본애들이 좋아하는 밤 벚꽂놀이도 열었죠.
본격적으로 유원지로 만들고 나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창경원과 종묘 사이까지 도로를 만들어놓은겁니다. 그게 1926 년에 만든 율곡로.
북한산 정기 어쩌고가 실제로 존재한다 쳐도 창경원 만들때 이미 끝난 것임.
왕궁을 유원지로 만들어놓은 것을 비난하는 것은 매우 충분히 타당하지만, 율곡로 뚫은 것을 풍수지리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어째 참..
비난하더라도 제발 풍수지리 운운은 뺍시다. 얼마나 비참해지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