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초기작인 '서검은구록(청향비)'의 주인공은 청에 대항하는 한족들의 단체인 홍화회의
수장 진가락이다. 그의 평생의 꿈은 반청복명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청나라 황제 건륭제
는 사실 한족이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김용은 이 글에서 야사에서나 나올법한 허황된 이야기를 마치 역사적 진실인것처럼 꾸며냈다.
아무리 소설에 불과하다지만... 덕분에 중국에서 실제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의 대표작 영웅문의 화두는 '남송시대부터 원에 이르는 시기, 여진족과 몽고에 대한 한족의
항쟁'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민족에게 지배당하는 한족의 암울함과 비애가 잘 묻어나 있다.
이 암흑기의 시대에 영웅문 속 주인공들은 이민족을 물리치겠다는 사명에 불타는 영웅들이다.
전체적으로... 김용의 작품들은 중기까지 이러한 한족을 중심으로한 '중화주의' 사상이 곳곳에
묻어나있다. 혹자들은 그의 후기 작품들인 천룡팔부나 녹정기를 예로들며 김용의 이런 고약한
중화주의 냄새가 점차 사라지고, 종내에는 사상을 초월한 대가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천룡팔부의 주인공중 한명인 소봉은 출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며 자신이
한족이 아닌, 한낱 이민족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게된다. 이 과정에서 꼭 한족이 절대
적인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노골적으로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녹정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위소보는 기생의 사생아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소설속에서
그는 한족일 수도 있고, 혹은 만주족이나 몽고족일 수도 있다. 위소보는 그 출생의 혼잡함만큼
정체성에 있어서도 자유롭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한족이라는것에 구애받지 않고 양껏 까불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김용은 후기에 들어 '중화주의'를 버린것인가?
전혀 그렇지않다. 비록 '한족 우월주의'에 대한 색채는 다소 옅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의
'중화주의'사상은 점차 확대 해석되어 "중국이라는 국가는 그야말로 모든 민족을 포괄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중화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김용의 이러한 사상이 가장 잘 묻어나 있는 녹정기의 한 대사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
[ 징기스칸은 우리 중국에서 원태조라고 부르고 있소. 왜냐하면 그는 우리 중국에서 원나라를
창건하신 태조이기 때문이오. 그는 몽고사람이오. 하지만, 당신도 말했다시피 만주사람이나
몽고사람, 그리고 한족 모두 중국사람이며 전혀 차이가 없소. 당시 몽고의 기마병은 서양을
정벌하였는데 나찰의 군사와 크게 싸운적이 있소. 귀국의 역사책에 똑똑하게 기술되어 있을
것이오. 그 싸움에서 우리 중국인이 이겼소? 아니면 귀국의 나찰인이 이겼소?]
비요다라는 잠자코 듣고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중국인이 아니라 몽고인이 이긴 거겠죠.]
색액도는 말했다.
[몽고인도 중국 사람이오.]
비요다라는 한참동안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수긍한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이 이야기를 듣자 새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
김용은 기존의 작품들에서 그가 줄곧 견지해 왔던 '한족은 우월하고 이민족은 열등하다'는
'한족 우월주의 대립구도'를 포기하는 댓가로 말년에 '중화주의' 사상을 완성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