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곰님 말씀대로 팽형은 주로 탐관 오리들에게 행한 형벌인데
실제로 죽이지 않고 빈 가마솥만 걸고 그냥 죽이는 시늉만 했습니다.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팽형을 당했다는 치욕을 주기 위한 것이었죠.
팽형을 당한 탐관은 죽은 시늉을 하고 가짜 장례식까지 치른 후
남은 여생을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육시도 산 채로 찢어 죽이는게 아니라
사형시킨 죄수의 시신을 잘라 각 부위를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등
각 도에 나눠 묻은 것이고요.
실제로 조선시대 사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반을 일으키거나 살인을 한 자에 한해 사형이 내려졌으며 그것도 그냥 사형이 아니고
현재의 3심제와 마찬가지로 3복제라하여 3차례의 재판을 거쳐 신중을 기하도록 하였고,
사형의 확정은 반드시 왕이 직접 재판한 이후에야 내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