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문과출신이라 전자파가 뭔지 하나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드미사일의 성능이나 레이더의 성능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저같은 문과 출신들은 고작 사드배치로 야기되는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 혹은 북한과의 문제, 그리고 거기에 숨어 있는 (국제)정치학적인 관점이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주로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 사드의 성능이 어떻다느니, 레이다의 성능은 또 어떻고, 전자파의 세기 등은 어떻고 하는 스펙을 설명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정보의 근원을 찾아 가면 그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만들어 놓은 자료들입니다. 문제는 정보제공자가 만들어 놓은 자료에 반박하는 사람들 역시 해당 전문가들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우리(대한민국)가 확인할 수 없는 정보는 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간단한 예로, 걸프전 당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을 대부분 요격했다는 미국(군)의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경외심을 가졌던 오류가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농담삼아 사드미사일을 배치한 곳에 오바마와 박근혜를 데려다 놓고 그곳에 탄도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해서 정말 막아 내면 1개 포대가 아니라 10개 포대라도 도입하자고 하는 이유도 가공할 수 있는 정보주체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정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드배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드는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도입되어야 하는' 정치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부지선정과 사드의 유해성에 대한 불안감을 다루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미국에서조차 환경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이미 배치를 한 괌기지에서는 2년이 지난 아직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일본은 당초 설치시에 약속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주민들은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정부는 밀매들이 하는 것처럼 록히드마틴이 만들어 놓은 팜플렛의 수치를 그대로 읊어 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 역시 성주군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망상이라고 그 수치를 가져 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일방적인 정보를 전파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하는 말로, 사드를 지금 건설하고 있는 롯데빌딩의 옥상에 설치한다면, 그래서 사드 레이더는 하늘로 향하기에 서울시민의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과연 서울시 주민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아마 성주군민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시내로 몰려 시위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성주군민들의 저런 행동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님비'라고 욕을 하지만, 정작 우리 모두는 자기 집앞에 저런 물건이 배치되기를 찬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이익을 준다고 하는 물건, 하지만 소수의 누구는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는 물건, 그럴 때는 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논리가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반발하는 '소'를 비판하는 자신은 언제나 '대'에 속해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측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측이 공개적인 토론과 검증의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입을 주장하는 측이 안전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일수록 일방이 정보를 독점해서 자기들 구미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제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더구나 정치적인 목적까지 가미된 물건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그 정보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반대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들에게 공개적인 반론의 기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질 않습니다. 우선, 찬반양론을 확인하고 국민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할 언론이 없습니다. 그냥 앵무새처럼 정부의 입장만 옮겨 주는 언론들이 공중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들이 정확한 판단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사고와 매우 유사하게, '국가가 결정하면 우리는 따른다.'는 사고체계를 가진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분들은 지금 국무총리가 봉변을 당하자 성주군민들을 '빨갱이'라고 트위터질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늘 지금과 같습니다. 일단 일을 터트린 다음에 수습을 시도합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갈등요소가 있는 정책을 시행할 때 늘 필요이상으로 시끄럽고 어수선한 이유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대론자들은 시끄럽게 시위를 할 수 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과격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다시 정부가 공권력으로 대응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갈등상황에서 '더이상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전지전능한 군주의 언행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결정하면 너희들은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을 최소하 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식상한 표현인 '토론과 양보'입니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사전에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서 그 사업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시행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피해를 입는 주민들에게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주민들이 걱정하는 위험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사후에 예상과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등을 가지고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성주군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그림'을 만들어 성주군민들을 무식하고 파렴치한 사람들로 몰아가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말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박근혜를 지지하더니 꼴 좋다'는 조롱과,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빨갱이'라는 조롱과, 짐짓 젊잖은 척 하는 사람들에게는 '님비현상이 문제야'라는 조롱 속으로 성주군민들을 몰고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우리가 갈등을 무마하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이런 해결방식의 결말은 '공권력에 의한 강제집행'으로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 와중에 몇몇 분들은 몸이 상하실 것이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들간의 감정적인 골도 커질 것이고, 그 동안 조용하던 시골은 서로를 불신하는 삭막한 마을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는 잊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