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야마 세이치의 쇼토쿠 태자 허구설[편집]
1999년에 일본의 사학자 오오야마 세이치는 「'쇼토쿠 태자'의 탄생」을 발표했다. 오오야마는 「우마야도 왕의 사적이라 전해지는 것 가운데 관위 12계와 견수사 파견의 두 가지 외에는 완전한 허구」라고 주장하고, 이마저도 견수사 파견이 《수서》에 기재되고는 있지만 《수서》에는 스이코 천황도 우마야도 왕도 등장하지 않으며, 스이코 천황의 황자 · 우마야도 왕(쇼토쿠 태자)은 문헌 비판의 관점상 《일본서기》외의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그 흔적이라고 해봐야 이카루가미야나 호류지 옛 터뿐이라는 것이 된다. 또한 쇼토쿠 태자에 대한 사료를 《일본서기》의 「17개조 헌법」과 호류지의 「호류지 약사상 광배 명문, 호류지 석가삼존상 광배 명문, 천수국수장, 삼경의소」의 두 가지 계통으로 분류하고, 이들 모두 우마야도 왕자보다 꽤 후대에 작성되었다고 한다.
오오야마는 아스카 시대에 이카루가미야에 살며 호류지도 지었을 '우마야도 왕'이라는 유력 왕족의 존재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지만, 스이코 천황의 황자 겸 섭정으로서 알려져 수많은 실적을 올린 '쇼토쿠 태자'는 《일본서기》 편찬 당시의 실력자였던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 등의 창작이며 가공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져 온 '쇼토쿠 태자'의 실재를 증명해줄 사료는 전무하며, 요로 4년(720년)에 성립된 《일본서기》에야 최초로 쇼토쿠 태자의 인물상이 등장한다. 그 인물상의 형성에는 후지와라노 후히토 뿐 아니라 나가야 왕(長屋王)이나 승려 도지(道慈) 등이 관계되었으며, 17개조 헌법도 《일본서기》 편찬시에 창작된 것이었다.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죽음과 나가야 왕의 정변 이후, 고묘 황후 등이 《삼경의소》나 호류지 약사상 광배 명문 같은 호류지 계통의 사료와 구세관음상을 본존으로 하는 몽전, 호류지를 무대로 하는 '쇼토쿠 태자 신앙'을 창출해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쇼토쿠 태자의 진실」 (헤이본샤, 2003년)이나 「천손강림의 꿈」(NHK 출판, 2009년) 등 다수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오오야마의 학설은 잡지 「동아시아의 고대 문화」102호에 그 특집이 짜여져 102호, 103호, 104호, 106호 지면상에서의 논쟁이 「쇼토쿠 태자의 실상과 환상」(다이와 서점, 2001년)에 정리되고 있다. 이시다 히사토요(石田尚豊)는 공개강연 「쇼토쿠 태자는 실재했을까」에서 쇼토쿠 태자 허구설과 매스컴의 관계를 언급한다.
《일본서기》 등의 쇼토쿠 태자상에는 어떤 과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연구자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쇼토쿠 태자상에 가미된 윤색 · 각색이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물」임을 주장하는 오오야마의 학설에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있다.
또, 오카다 히데히로(岡田英弘), 미야와키 준코(宮脇淳子)는 오오야마설과는 다른 시점에서 쇼토쿠 태자 허구설을 논하고 있다.
---------------------
반론이 잇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것도 들여다 보면 약간 물타기식 주장이 대부분입니다. 하나씩 까발려보면 시작부터 허구죠.
오야마 세이이치씨는 단호한 어조로 쇼토쿠 태자는 가짜라고 합니다.
당연히 일본서기의 왜5왕에 대한 내용도 전부 창조되거나 가짜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