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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08 16:08
인조없이, 광해군이 계속 즉위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글쓴이 : mymiky
조회 : 1,529  

쉽게 말하면,

청이 삥뜯을때-
니가 자진해서 낼래? 맞고 낼래? 차이가 있었을뿐입니다.

당시, 청나라는 이제 막 겨우 응애응애 태어난 신생국가였고
북방민족 특유의 기동력을 갖춘 군대는 있었지만, 경제나 문화가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청초기에, 명나라에 대들다가도, 조공으로 뜯어먹고 살았는데
명나라 특유의 카드- 니들 조공 안 받고, 안 줄꺼임

그덕분에 당시 청나라 경제 파탄 지경에 이름.
겨우 통일해논 부족들끼리 다시 반기를 들고 찢어질 가능성이 다분했고,
투항해온 몽골족들에게도 줄게 없는 상황..

즉, 명국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뜯을게 있다고 여긴 형제국 조선침공ㅋㅋㅋㅋㅋ

조선이, 청나라에 붙었다면?
누구말처럼, 최소한 전쟁은 없었을꺼라고 가정해도

 당시 청나라 내부 사정상, 엄청 뜯어갔을 것임.
명은 그나마 토산물 받으면, 비단이다 은자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많지..
청나라한테 뭐 받을 것도 없고-.-

그럼, 조선 백성들도 바보가 아닌데,
조선 조정의 이런 정책에 불만이 안 터져 나왔을까?
그렇지 않겠죠. 이건 이것대로 골때렸을 것임.

게다가, 청태종이란 자가 워낙에 난놈이셔셔..
광해군때도, 조선을 쳐야 한다고 했던 강경파 인물임.

광해군이 계속 재위에 있었어도, 청태종이 재위한 이상,
조선이 어찌 했던간에 전쟁은 시간문제였을뿐입니다.
솔빠,, 전쟁명분이야 만들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붙이면 되는거고 ㅋㅋㅋ

인조의 치세가 없고, 광해군이 계속 앉아있었어도,
선조나 광해군이나 둘다 우리 역사속에 암군으로 남으실 숙명인거죠-.-

광해군의 중립외교? 이거 거품이 드글드글한거 아시죠?

앞선조, 후인조라서 광해군이 뭔가 특출나 보이는거지;;

광해군의 세자시절때 좋았죠. 저도 세자시절 광해 인정합니다.근데/


이미, 아버지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흑화한지 오래되어

간혹 귀신이 보인다고 외상후 스트레스가 심하던

임금, 광해군이라면,, 사실 인조나 별반 다를바는 없었을 확률이 높죠.

우리 교과서에 삼배고두례하던 왕이 인조가 아니라, 광해군의 모습으로 남아있을듯...


왕 자신의 재능도 뛰어나야 하겠지만, 당사자가 즉위하던 시대의 타이밍이란 요소도 참 중요하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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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전문 15-07-08 16:14
   
광해군과는 상관없이 역대급 무능왕 인조가 없었다면, 역사는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mymiky 15-07-08 16:18
   
그러니까 어떻게 바뀌었을꺼라고 써야죠 ㅋㅋㅋ
무턱대로 역사가 바뀐다니 뭔 소리임?

솔빠, 그렇담 인조가 아니라, 다른 왕이 까였겠죠. 무능하다고 ㅋㅋㅋ
뭐, 저당시 왕되면, 세종이 와도 무능하다고 까였을듯?
일품다시마 15-07-08 16:16
   
인조 보다야.........백만배.......잘했을듯...
이쉬타르 15-07-08 16:17
   
전쟁을 해도 띁기고 전쟁 안하고 띁기고 할것임.... 전쟁은 안하는게 순리이죠,,한편 조선자체는 물자가 풍부하거나 군사가 강하질 않아서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어도 직접 먹어봐야 청에게는 대단한 도움이 안되지라
     
mymiky 15-07-08 16:21
   
네, 그래서 호란때 청도 항복만 받고, 금새 물러놨지요.
애초 목적이, 자국내 경제파탄 지경에 약간의 목마름 해소? 차원이였거든요.
아직, 명이 건재했기에, 청태종이 조선에 내려올때도
수도비울때 후방치기 당할까봐 청나라 관료들이 반대했다고 함.
청태종은 도박을 한 셈인데, 능력빨+운빨 시너지 작용이 잘된 케이스..
mymiky 15-07-08 16:17
   
이런 최악의 경우를 잡을려면,
역시 청나라를 초반에 잡아어야 하지만

그동안 명-조선이 여진족들을 컨트롤하던게
왜란때 제코가 석자라 신경 못 쓸때
그때 큰 사람이 누르하치인데,

후금이 커지니, 잡겠다고 명나라 조정이 재정이 딸리니 돈 좀 풀라고 하지만
자기 비자금을 알토란 같이 지킨다고 쌩까버린 만력제 ㅋㅋㅋㅋㅋ 고려천자시고..

명이나 조선이나 내부 집안정리 하기도 바쁘다보니,,
여진이 금새 커졌음.

그뒤, 그동안 쌓인 여진인들의 한풀이 시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삼이 15-07-08 16:18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정묘,병자 호란때를 보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몰린게 아니라고 봅니다.
이긴 전투도 있어요. 준비를 잘한 장수가 이끈곳은 이기고 아닌곳은 개박살 났습니다.
인조반정후 이괄의 난으로 이어진 조선 북방군의 괴멸이 청나라의 공세에 맥을 못춘 이유라고 보고요.
인조반정 이괄의 난 이후 장수들의 질도 많이 떨어졌고요.
조선 스스로 화를 부른셈이라고 봅니다.
광해군이 계속 있었다면 청이 배후에 명을 두고 장기적으로 조선공략을 시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시도해도 병자호란때처럼 단기적으로 승부를 볼텐데 왜란이후 조선도 준비를 잘하고 있어 병자때처럼 조선이 허무하게 항복은 안했겠죠.
     
아뒤도업네 15-07-08 16:33
   
우선 그 이괄부터 포섭못했다는 거 자체가 광해군의 한계가 아닐까요?
건달 15-07-08 16:18
   
지도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 건데요
더구나 요즘도 아닌 왕정시대의 왕의 능력의 차이라는 건 결과가 뒤바뀔수도 있죠
광해군의 임진왜란때의 공을 보더라도 전쟁에서도 훨씬 더 잘했을 것같네요
     
건달 15-07-08 16:20
   
요약하면 외교력으로 전쟁이 안났을 수도 있고
전쟁이 나더라도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겠죠
          
mymiky 15-07-08 16:26
   
광해군의 외교력?
그거 거품 많다니까요 ㅋㅋㅋㅋㅋ
솔빠, 광해군의 정책 대부분 인조정권도 그래도 받아들인 면도 많아서;;
전, 회의적입니다.
이쉬타르 15-07-08 16:19
   
인조 시절 북방 기동군 육성한거는 다 아실테고 그게 전원 기마병 체제에다 1만 2천명인가 그랫죠 그러나 북서 벌판에서 양측이 붙으면 10에9로  1격에 여진 기마병들..그 유명한 팔기에 그냥 당합니다
당시에 만주 팔기가 동아시아지역 최강인 시절이죠
     
문삼이 15-07-08 16:22
   
그거 이괄의 난때 다 날라간거 아닌가요? 아닌가?  쩝 있어도 청 10만 기병에 대적은 어려웠겠죠. 차라리 병자호란때 광교산 전투때처럼 철저히 숙영지를 건설하고 조총과 활로 기병들 견제하는 전략이 좋았겠다 봅니다. 이곳에서 청태종 사위가 사망한곳이라죠.
이쉬타르 15-07-08 16:25
   
이괄 반란으로 북방 기동군이 사실상 무너진 상태에서 청에다가 공략을 당한것인데 이 북방기동군이 건재 한다한들 못 당하고 ,,고려 조선의 전통적 전법이 청야 입보 전술인데 몽골 침략시절에 이게 무력한거가 드러났고,,아마 광해군이  실각 안당하고  재임 했더라면 ..전쟁의 어려움을 몸소 체헴헤본 한 인물이라  내외 반대 무릅쓰고 대청 군신 관계 승인으로 갔엇을게죠,,대신 반대가 강하여 이게 안되면 친위쿠테라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래서 군주 직할 체제에서면 대신들 반대가 사라졌을것이고 왕실하고 백성을  전쟁으로부터 보호할수가 있었죠
     
mymiky 15-07-08 16:33
   
근데, 불행히도, 광해는 친위쿠테타도 할 형편이 못 된다는거-.-
애초에, 정통성 딸리시던 분이라,, 재위기간 내내 소수의 대북파들 하고만 정치 한 왕인데;;

그 소수의 자기 편인 대북파 마저도,
청나라에 붙자는 사람들이 아니죠.

화정에서도 나왔지만, 이이첨, 정인홍 모두 명나라 도우자고 하지, 청나라 돕자고 안함.

뭐, 당대 청나라에 붙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최소 양다리 간보자지.
그건 광해군도 마찬가지였고.. 근데, 그정도는 훗날 욕듣는 인조도 했다는거 ㅋㅋㅋ
          
이쉬타르 15-07-08 16:42
   
친위쿠테타는 임금 의사를 지지하는 무관을 중심으로 벌이는 것이라 당시 여당이랄  대북파 반대 한것도 문제는 아닌데..즉 대북파는 멀리하고 임금에 무조건 충성을 받치는 친위세력을 육성후에 쿠테타를 일으키는것이 순리이고 이것은 에지간함 광해군 정도 지혜이면  아는 것이라 그런데 광해군이  조선이란 국가 체제를 뒤업는 급인 그런 쿠테타를 벌일 배포나  결단을 할 인물이 아니였을거라는 점이라
주말엔야구 15-07-08 16:31
   
제 생각엔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조선은 제2의 도약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군요
당시 청은 명과의 전쟁에 온 신경을 몰두하고 있었고
청이 조선에 요구한건 명과의 교류를 끊고 자신과 교류하자는거지 조공을 받치라는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또한 조공도 서양과는 다르게 당시 강대국과 이뤄지던 무역의 일반적인 방법이였으니
강대국을 자처하는 청나라에 조공만 하고 받아먹을것이 없엇을 것이라건 쫌... 청나라 영토가 중국영토인데
왜 받아 먹을게 없엇을까요
또한 소현세자의 경우까지 보자면
인조가 없었다면 서양문물이 더 빨리 조선에 들어왔을 것이고 이는 조선후기에 더 빠른 개화를 불러왔을지도 모르지요
마지막으로 인조가 없음으로 호란또한 없고 조선의 백성들이 청으로 끌려가지도 않았겠지요
     
mymiky 15-07-08 16:34
   
청나라가 요구한건 황제인정과 조공 맞는데요-.-

그리고, 청나라 영토가 중국영토라니요?
지금 말하는 청나라는 후금입니다.
중원에 입성하고 난뒤의 청나라가 아니라요.
명과 대치하고 있을때, 만주벌판에 세워진 후금이요.

소현세자 운운 그 이하의 이야기도 괴상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해야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말엔야구 15-07-08 16:42
   
님아...하.....
님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인조대신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이죠?
그럼 정묘호란 이전부터 따져야지
왜 정묘호란 병자호란 다 건너띄고 말하십니까...
정묘호란때 인조에게 청이 요구한게 형제국과 화친인데
이게 무슨 황제인정과 조공입니까...
광해군때 후금이 인조때 갑자기 망해서 청으로 바뀐것도 아니고 연장선상의 나라인데
그걸 분리해서 이야기하시면 안되죠....
               
mymiky 15-07-08 16:49
   
일본도 조선 잡아먹을때 처음부터 잡아먹진 않았어요.
차차 조금씩 알금알금 시작하는거죠.

정묘호란때 형제국과 화친 그담에 군신관계? 아니였습니까?

인조말고, 광해군이 계속 즉위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청이 첨엔 형제국과 화친 주장했겠죠. 인조는 이것까진 꾹 참고 했습니다.
광해군도 다를바는 없겠죠.

그뒤 군신관계, 이건 인조가 얻어터지고 했고
광해군은 달랐을까요?

운이 좋게 가정하면, 안 얻어터지고 자연히 넙죽했을 가능성.
둘째는, 인조처럼 얻어터지고 했을 가능성 이 2개인데

광해군이 계속 즉위해 있었어도, 인조와 크게 다른 카드는 못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거죠.

후금이랑 청은 국명이 같지만, 중원에 입성하기 전과 후는 차이가 많이 나는 나라입니다.
그 점 주의하세요.
                    
주말엔야구 15-07-08 17:02
   
다르죠
인조는 그냥 대놓고
명이 좋아요~ 청나라 오랑캐 꺼져라 명을 도와 청을 치겟다
라고 외치고
광해군은 우린 님과 싸울 생각이 없어요
친하게 지내요
라는게 가장 큰 차이죠
청이 조선에 강하게 나오는건 인조의 반청과 관련이 있지요
청은 명나라와의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와 대립 대만정벌 등 외적으로 일이 많은데
굳지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나라에까지 칼날을 세울 일이 없죠
그리고 님이 내건 조건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입니다.
그렇다는건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없엇을 수도 있고 또한 조선과 청이 계속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이뤄냇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근데 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왜 발생했는가는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둘은 그냥 기정사실화하고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 광해군이 계속 집권한다면 두번의 호란을 피하고 청과의 우호적인 관계속에서
청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드릴 수도 잇다고 말하는데
님은 제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듣고 소현세자는 논할 단계가 아니라는 둥 하시면서
사람은 아주 개무시 하시는군요
제가 소현세자 이야기를 꺼낸건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잡혀있으면서 서양인들과 교류하며 서양의 문물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왓지만 인조가 이를 금서로 지정햇고
이후 정조때나 되서 그 금서들이 풀렸다는것을 들어
인조가 없었다면 더 이른시기에 서양문물이 들어올 수도 있었다는 건데
왜 소현세자 이야기가 괴랄하고 논할 단계가 아닌지 설명부탁드립니다
                         
mymiky 15-07-08 17:08
   
님-.- 대체 뭔 말을 하시는건지;;

러시아와 대립, 대만정벌? 이게 왜 나옵니까?
이건 강희제때나 되서야 나오잖아요?;;;;

중원에 입성한[뒤]의 청나라가 아니라,
후금때라니까요-.-
청 초기-중원 입관[전] 말입니다.

광해군-인조때의 청나라 초기요.

조선과 청나라와 제일 미묘한 시점때를 이야기 하는데,

왠 서양문물이 나오고, 대만정벌이 나오고 하는겁니까?
왜 님혼자 딴소리심?
                    
주말엔야구 15-07-08 17:11
   
그리고 인조가 청의 형제국 요청에 꾹 참지 않앗습니다
아니 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대놓고 친명배금정책을 펼치는데 그게 어떻게 후금의 요구를 꾹 참고 들어줫다고 볼 수 잇는거죠?
                         
mymiky 15-07-08 17:15
   
형제국까진 인조가 해줬어요. 형제국 의식도 다 치릅니다. 흰소와 검은소를 재물로 제사도 지내고, 뭐 하여튼간 인조도 그 의식에 참석했구요.
그자리에 앉아있는 인조의 개인기분이야 뭐 내가 알바가 아니지만 ㅋㅋㅋ

인조의 쿠테타 명분이 폐모살제와 재조지은 모른다고 광해를 내 쫒았기 때문에
간판은 친명배금이라고 걸긴 했는데, 일단 1차목표 광해군 퇴위는 그걸로 성공했고
이제 차차 현실을 보니, 청나라가 크고 있는게 뻔히 보이거든요.
그래서, 광해군의 정책 대부분은 폐기하지 않고, 인조정권에도 넘어갑니다.

뭐, 현재도 어떤 당의 프랜차이즈는 거창한 법이죠.
선거때만 되면, 군대의 기간을 줄이겠다는둥, 반값 등록금 해주겠다는둥..
말은 거창하지만 ㅋㅋㅋㅋㅋㅋ 일단, 선거만 이기면 그담엔 현실적으로 재정이 없다는둥, 변명을 하듯이 말입니다.

인조정권도 그런 면이 다분해요.
인조아들 효종의 북벌론도 걍.. 간판만 걸어논게 크고..

뭐,, 명분이야, 거창하면 보기엔 좋은거니까요 ㅋㅋㅋ

친명배금은 국내언플용일뿐입니다. 백성들에게 가오잡기, 면피용..

하다못해, 병자호란때도,
인조가 청나라와 다시 사바사바 해보겠다고 사신을 보내는 중에
청나라군이 내려왔죠 ㅋㅋㅋㅋㅋ
꾸우엑 15-07-08 16:39
   
자신의 오랑캐라 무시하고 적대하는 이웃나라의 임금과 자신에게 호의적인 이웃나라 임금과 대우자체가 다르지요
고기다가 청나라 황제의 성이 애신각라(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 괜히 후금(金)이 아니죠
임진왜란당시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보냈지요. 물론 조선의 입장에선 후금의 정병이 들어오는것에 믿음이 없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후에 정묘호란 병자호란 두번의 전쟁에도 알수 있듯이 왕을 폐위시키고 완전히 복속시킬수 있음에도 그냥 왕권을 유지시켜주죠. 이것만 봐도 임진왜란 당시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일종의 동맹관계를 원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즉 조선이 누루하치를 인정하고 좋은관계를 가졌다면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겠지요.
이괄의난으로 북방군이 괴멸하지도 않았을테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광해군이 집권을 했더라면 일단 조선을 망하게한 근본적인 원인이 양반세도정치가 없었을수도 있죠. 청의 지원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또한 청은  양반세도가와 유학자와 상극이죠 ㅎㅎㅎ

그리고 가장중요한건 세상이치를 아는 군주와 우물한 개구리인 인조와 조선양반과는 하늘과 땅차이
     
mymiky 15-07-08 16:57
   
애신각라가 신라 사랑한다는 것은 환빠들이나 믿는 개소리일뿐이고-.-

누르하치가 부모의 나라 운운하는건 립서비스입니다.
조선도 명나라에 부모의 나라 운운 좆나 많이 했습니다. ㅋㅋㅋ
하물며, 왜란때 원군 청할때도, 명나라는 조선의 부모의 나라인데, 효자인 조선이 이리 당하는걸 보고 있느냐?고 탄원했지요.

왜란 당시에, 과연 누르하치가 조선 도울 입장이 되는건지도 의문인게..
누르하치가 제아무리 건주여진의 족장이나, 명의 컨트롤을 받던 입장이였고
당시엔, 아직 여진족 군대가 크지 못 했습니다.
왜란때, 조선군들이 일본군과 싸우면서도, 동시에 또 여진족 부락 간간히 털었어요-.-

누르하치가 진짜 어떤 생각으로 이빨을 깠는지 모르겠지만..
속내는 진짜 조선이 덜컥 받아들이면 어쩌지-.-? 난감했을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아마? 이럴 확률이 대단히 높음.

또한, 누르하치는 온건파 인물이고, 조선의 동맹을 원한건 맞습니다.
누르하치의 원 목적은, 대륙을 손에 넣는다가 아니라, 명나라에 조선처럼, 조공받치고, 만주에서 독립국가 만드는게 목적이였던 사람이라..

다만//
문제는, 아들인 청태종은 강경파 인물로, 아버지보다 더 야심 만만했던 자이고
제2의 쿠빌라이를 꿈꾸던 양반이라는거죠.

조선이 누르하치 인정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아들이지-.-

세도정치 이야기는 여기서 나올 부분이 아니예요-.-;; 왜 19세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청의 지원으로 왕권을 강화한다?
세상에 외세로 왕권을 강화한다는게 말이 되나요? 그거 하다가 고려왕조-원나라 꼴 나죠;;

세상에 공짜 없습니다. 외세가 선의로 도와준다? 택도 없죠;;
이쉬타르 15-07-08 16:48
   
남한 산성에서 항복을 한 인조 나 조선 중신들  백성들에다 홍타이지가 상당한 혜택을 베플고한게 사료에 다 나옴니다
여진인들 자체가 조선에 대한 호의가 강했었고 ..전쟁 이전부터 청측은 조선- 여진간 민족 융화 성향이 컷엇죠
     
mymiky 15-07-08 17:05
   
홍타이지 자체가 병주고 약준 인물이라.. 상당한 혜택 ㅋㅋㅋ
뭐, 확실히 종묘사직 보존은 해줬죠.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밟을 능력을 되었지만, 그걸 곤고히 지배할 능력은 못 되었거든요.
침략과 지배는 또 별개의 문제죠.

당시, 청태종은
조선관료들이 명나라를 두고, 재조지은이라 왜란때 은혜를 입어서,
의리를 지키는거니까.

이번엔, 내가 니들한테 재조지은을 다시 해줄테니.
이정도에서 물려나는 나를 관대하다고 생각하고, 이제부터는 명이 아니라
우리 청을 재조지은으로 섬겨라고 했죠.
멍게 15-07-08 16:53
   
그렇게 까이는 선조도 아마 일찍 죽었으면 선조 오래 살았으면 임란 쉽게 막아냈을 것이다라는 평가 받았을 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죠
     
mymiky 15-07-08 16:59
   
선조 재위 초반은 엄청 잘했던 왕임 ㅋㅋㅋㅋㅋ
전란만 안 만났으면, 조선 성군 탑 5에 들 양반이라고 우스개 소리가 있죠 ㅋㅋㅋㅋㅋ
남아당자강 15-07-08 17:25
   
드라마나 영화 때문에 광해군의 이미지가 좋은듯 한데요. 광해군도 인조 못지않은 암군이였습니다.
주말엔야구 15-07-08 17:26
   
조선과 청나라와 제일 미묘한 시점때를 이야기 하는데,

왠 서양문물이 나오고, 대만정벌이 나오고 하는겁니까?
왜 님혼자 딴소리심?
   
=============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아니 스스로 인조말고 광해군이 집권했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잇잖아요
그렇담 그 두시기를 묶어서 그 이후까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 봐야죠
그런데 님은 자꾸 편협하게 딱 인조반정 과 두번의 호란시기만을 생각하시는지 모르겟군요
역사 그리고 사건이 앞뒤 다 짤라내고 볼 수 있는것도 아니고 편협하게 자꾸 님의 주장을 정당화할려고
그 시기를 자꾸 축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군요
     
mymiky 15-07-08 17:28
   
아니요. 편협한게 아니라,
저의 원래 스레 자체가

광해군-인조 교체기/ 조선중기
청태종/청초기

이 시기에 한정해서 스레 올린겁니다.
님이 뭔가 오해한거 같네요.

정확하게, 후금시절.
아직, 명과 대치중이던 청나라 초기,
명-조선-청이 있던 딱 그 시기 말입니다.

순치제와 섭정 도르곤이
중원에 들어가서
어쩌고 지지고 볶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말엔야구 15-07-08 17:37
   
인조없이, 광해군이 계속 즉위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님이 올린 글 제목입니다.
광해가 계속 집권했다면??
입니다.
이 제목 어디에서 광해군 인조 교체기 한정이라고 볼 수 있나요?
제목뿐만이 아닙니다 글 내용에서도 그 시기를 한정했다는 내용은 없고 그렇게
생각되는 부분도 없습니다.
첨부터 확실한 시기를 명시적으로 한정하신것도 아니였습니다.

광범위한 주제를 던지고 님이 원하는글이 아니라고
괴랄하고 이상한 글 취급하는건 옳다고 보십니까?
               
mymiky 15-07-08 17:43
   
남들은 다 알아듣고 잘 쓰시는데.
님만 뭔가 삐긋한거 같습니다.

제가 위에서도
여러번, 청초기, 중원입관전의 후금의 이야기라고 몇번이나 이야기 해 드렸는데요?

그럼 시기적으로, 언제겠습니까?

스레의 요지는,
인조반정없이 광해군이 계속 즉위를 했다면?
청나라의 호란이 과연 없었을까?가 주제입니다.

소현세자 이야기는 안 맞죠;;
광해군이 재위했다면, 당연히 광해군 세자가 보위에 오르지, 소현세자가 세자 될일도 없고
청에 포로로 갈 일도 없으니까요.
러시아니 대만이야기도 너무 멀리 나가신거구요.
                    
주말엔야구 15-07-08 17:53
   
하....
진짜...
몇번을 말합니까...
제가 소현세자 이야기를 꺼낸건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잡혀있으면서 서양인들과 교류하며 서양의 문물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왓지만 인조가 이를 금서로 지정햇고
이후 정조때나 되서 그 금서들이 풀렸다는것을 들어
인조가 없었다면 더 이른시기에 서양문물이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겁니다
광해군이 청나라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자연스레 교류가 이뤄지며 청의 문물과 함께 서양의 문물이 들어 올 수 잇을 것이다
고로 인조가 없었다면 더 빨리 서양문물이 조선에 들어왓을 것이다 입니다.
설마... 소현세자가 인조의 왕세자라는걸 모르시는건 아니겟지요??
                         
mymiky 15-07-08 18:00
   
그러니까,
님이 저의 글을 오해한거 같다고 말씀드린겁니다.

사실, 서양문물 흡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서양문물을 흡수한다고 근대화가 빨리된다는?것은 또다른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렇게 따지면, 일본 메이지유신보다 청이 근대화가 빨랐어야 하죠;;)
(게다가, 개혁군주라고 대중들에게 잘못 이해되는 정조또한 서양문물을 일부 받아들였으나, 결코 개화군주는 아니였습니다-정조와 가장 비슷한 유형은 흥선대원군임.)

그보다 앞서, 후금시절, 청태종때, 조선의 운명? 이게
제가 이 글을 쓴 배경이라는 겁니다.

워낙, 광해군이 중립외교다 뭐다하고 인조가 쌍+놈의 최악의 군주란 인식이 많은데,
그럼, 인조말고, 광해군의 치세가 계속 되었다면, 호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정말로 없었을까? 가 주제예요.
북극곰돌 15-07-08 17:49
   
인조하면 생각나는게 반정,영정법,연분9등법,전분6등법,서인 등등 외우고 지나갔던 기억이....
     
mymiky 15-07-08 17:53
   
암기교육의 폐해죠-.-
배경지식없이
무작정 달달달.. 외우기..

저도, 어릴때는 흥선대원군이 쇄국파, 명성황후가 개국파..
따라서, 흥선군은 나쁜 할배이고, 명성황후가 좋은 여자인줄 알았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
광해도 중립외교
인조는 병자호란 개 쌍+놈 ㅋㅋㅋㅋㅋ
이렇게 외우고 있는 학생들 많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