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는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미추 이사금 치세의 신라로 망명하여 지리산에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로 후손들이 신라에서 벼슬을 하거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등의 변천사를 겪다가 21대손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 때 공식적으로 귀화하여 우리나라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중국 본토의 제갈씨보다도 더 정통성이 있는 셈이다.
촉나라 승상을 지낸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고 있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신라 미추이사금 때 신라로 망명하여,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고려 고종 때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 형제가 형인 제갈홍은 제씨(諸氏)로 하여 낭야군(瑯琊君)에 봉해지고, 아우 제갈형은 갈씨(葛氏)로 하여 남양군에 봉해지면서 성씨가 나뉘었다. 조선 고종 때 성씨 복원운동으로 제씨와 갈씨 일부가 제갈씨로 복성(復姓)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