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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1 15:14
현대의 시점에서 예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글쓴이 : 보나베띠
조회 : 415  

현대의 시점에서 과거의 부분적 사실들을 조합, 추리해 보는 인간 예수의 삶



예수가 태어나기 전 이스라엘은 수 세기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조껀적인 탄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모두의 자유가 구속되고, 재산을 빼았기고, 믿음을 강요 받았다면 몰라도 그러한 대부분의 자유를

로마가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지배를 하였기에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은 지배를 받기 이전이나 식민지

상태나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로마의 지배에 대한 독립의 절실함이 적었고,

장기간 식민지배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수세기 동안 마냥 조용히 지배를 받고 수그리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식민지배 이후 두번의 큰 유대 독립전쟁을 치렀는데 그때마다 독립전쟁에서 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그 독립전쟁이 실패한 결정적 이유가 무었인가를 되집어 보니 전쟁을 이끌었던 각각의 유대교

종파가 힘을 합치지 못하고 각자가 따로 움직여서라고 보았습니다.

당시에 유대교의 종파는 바리새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열심당의 파벌이 서로 아웅 다웅하던 시기

였고, 이스라엘의 가장 큰 힘을 가진 유대교를 로마가 굳이 박해하지 않은 것도 실상은 유대교의 종파

간의 깊은 불신을 알기에 이들이 결코 힘을 합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로마에 우호적인 협력을 통해 자신의 부를 축척하려는 종파도 있었기에 로마로썬 큰 문제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 예수가 등장했습니다.
예수는 태어나지 전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이미 자신의 운명이 정해진 인물입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내용은 여기선 지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가 죽은 뒤 백년이 지난 시기에 그를 믿는 종교가

만들어지고 그들에 의해서 명명된 것이니까.

이스라엘의 독립을 국민들은 간절하지 않았지만 종교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추구하는 소망이었습

니다. 국가가 없는 지금에 국민의 힘을 가장 모을 수 있는 마지막 힘이 종교였고, 그런 유대교의 교인을

통해 독립운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무턱대고 3차 이스라엘 독립운동을 하기엔 이전의 수많은 피를 흘린 사례들을 통해 가장 큰 문제

점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 종파간의 화합이었죠. 
그 화합의 성공 가능성을 가장 이끌 수 있는 인물로 어린 예수가 지목 되었다고 가정 해 봅니다.


그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예수를 당사자로 점 찍은 이유는 그의 신분이 특출났었기 때문인데 예수를

그냥 목수의 아들이라고 설명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왕의 직계 후손이라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도 결국 일개 가난한 목수가 아니라 다윗의 직계 후손이죠.

다만 요셉을 내세우기엔 당시의 유대교 종파간의 대립이 심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오랜 앙금을 풀기엔 시간이 촉박했고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기에 요셉이 아닌 그의 아들이 자라는 동안 정도의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하였던 겁니다.

나라 자체가 없었지만, 이스라엘의 백성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뿌리에 해당하는 다윗의

혈통에 대한 경외심이 남달랐을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더구나 왕족의 핏줄이 이어짐에도 이스라엘 왕을 로마인이 행사하고 있다는 것에서는 누구나 심적으로

불만스러운 내용이었으니까요.



간난아기 예수가 다른 갓 태어난 다른 아기들이 무참히 죽어가던 상황에서 무사히 외국으로 밀입국하고

장기간 교육까지 받아 돌아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종교 지도자의 철저한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내용

이었는데 어린 예수를 그러한 종파간의 화합하는 대표자로 내세울 것이라는 내용을 어렴풋히 전해듣게

된 당시의 대립하던 상대 종파에서 그 내용을 로마에 고자질을 합니다.


로마로써는 종파간 화합이 곧 쿠테타나 전쟁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기에 당연히 이런 불씨를 제거하려고 움직였고 이 내용을 역시 로마에 심어 놓은 종파의 협력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지도자는 어린 예수를 외국으로 먼저 도피를 시켰기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9년후 예수는 국내가 잠잠한 시기에 다시 돌아옵니다.
예수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오자마자 랍비의 신분이 되어 설교를 시작 하였던 내용을 근거로

볼 수 있는데 당시의 설교는 받아쓰기가 아니라 말로써 전하고 귀로써 듣는 방식이었으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 쉬운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파피루스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는 것은 그가 그 유년기 동안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정도의 교육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내용들을 설교하고 전달하는 특수 교육을

받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예수는 설교를 하면서 뜬금없이 바닷가의 가나안 지역과 갈릴리에서만 열 두명의 제자를

모아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들은 전부 어부이며, 같은 지역 혹은 같은 형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은 예수를 추종하는 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예수를 통해 종파 화합을 이끌

려는 예수를 피신시키고, 교육시킨 종교 지도자에 의해 그를 따라서 최종 목적을 이루도록 돕는 역할을

위해 파견된 종파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만난 세례 요한은 내용에서는 예수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그날에 처음 만난 사람처럼 행동

하지만 실제 요한은 예수와는 잘 아는 사이였으며 사촌지간입니다.
예수와 요한이 사촌이라는 내용은 마리아가 요한의 죽음을 예수에게 전하는 내용에서 언급되어 있으며

검색으로도 쉽게 찾아 집니다.

그는 사실 예수가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예수를 대신할 대타로 준비된 인물이었는데,

예수가 무사히 돌아오는 바람에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도 다윗의 자손이었지만 예수와는 달리 직계 자손이 아니었기에 일차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다가

예수가 외국에 피신한 시기가 길어짐으로써, 만약을 대비해 준비된 인물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예수가 돌아

오지 못했다면 요한이 그 역할을 수행하게끔 미리 부족한 인지도를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방법 등으로

만회하며 준비중이었던 인물이었죠.



결국 예수를 만나고나서야 자신에게 임무가 맡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고, 그 에게 주어진 두번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두번째 임무란 예수를 통해 종파간 화합을 이끌 것이라는 의심에서 예수가 사라진 후 그 역할을 대신할

유력한 인물로 예수의 친인척이 의심의 물망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상대 종파의 감시가 이루어져 있었죠.


그 와중에 예수가 남몰래 귀국을 하였고 예수의 존재를 모르는 상대 종파의 입장에선 예수를 대신할

후보만 감시 대상자가 죽어버리면 모든 상황은 끝나는 겁니다.
즉, 그 후 예수는 아무런 감시가 붙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런 감시자로 하여금 모든 의심을 풀어버리게 하는 역할을 유다는 실행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굳이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간 이유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움직인 이유는 그곳에서 상대 계파의 인물들을 만나기로 사전에 미리 약속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는 중간마다 관중들을 모아 놓고 설교를 했던 이유가 그가 랍비의 신분으로 설교를 통해 혹시나 그 목적

을 의심할 남아 있을 감시자를 속이기 위한 연막인 셈이죠.

그 중간에 유다가 합류를 합니다.
유다는 사실 예루살렘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자신의 종파로 부터 내용을 전달받아 그 상황을 예수에게 전

하기 위해 사전에 상대 종파에서 보낸 연락책입니다.
예수도 공식적인 직책은 랍비, 유다도 상대 종파에서 파견한 랍비 신분이었습니다.
같은 직책을 가진 서로가 누구의 제자로 들어간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죠.


성경에는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다가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전에 자신의 종파 지도자

로부터 이 만남이 무산되었음을 예수에게 전하고 자신의 종파로의 복귀를 명령받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자신과는 다른 종파의 더구나 에초에 누구의 제자같은 종속 관계가 아닌 같은 신분의 상대를 굳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예수를 부인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그 모든 소식은 예수의 입장에서는 절망 그 자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죠.
자신이 교육받고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 유대교의 화합이었고 그것만을 위해 교육을 받고 그것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기다리고, 심지어 희생까지 하였는데 그 모든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면 그

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고개 숙여 돌아 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하였을 겁니다.



예수는 한때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에서 독립을 꿈꾸는 이의 소망을 종교라는 힘

으로 뭉쳐 실패했던 두 번의 종교전쟁을 성공시키기 위해 움직인 이스라엘 왕의 후손...일 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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