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십여 세가 되자 뛰어나고 영리하며 몸가짐이 조신하였다. 6부의 사람들이 그의 출생을 신비롭고 기이하게 여겨 높이 받들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임금으로 삼은 것이다. 진한 사람들은 박[匏, 조롱박]을 ‘박(朴)’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의 커다란 알이 마치 박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그의 성을 ‘박’으로 한 것이다. 거서간은 진한의 말로 임금을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조 혁거세 거서간 [始祖赫居世居西干]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진한 땅에는 예로부터 여섯 마을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 양산촌으로, 남쪽은 지금의 담엄사이며, 촌장은 알평이라고 한다. 처음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는데, 이 사람이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둘째는 돌산 고허촌으로, 촌장은 소벌도리라고 한다. 처음 형산에 내려왔는데, 이 사람이 사량부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남산부라 하며, 구량벌・마등오・도북・회덕 등 남촌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무산 대수촌으로, 촌장은 구례마라고 한다. 처음에 이산에 내려왔는데, 이 사람이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장복부락 하며, 박곡촌 등 서촌이 이에 속한다.
넷째는 자산 진지촌으로, 촌장은 지백호락 한다. 처음 화산에 내려와서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으며, 지금은 통선부라고 한다. 시파 등 동남촌이 이에 속한다. 최치원은 이 본피부 사람으로, 지금의 황룡사 남쪽과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다. 이것이 최치원이 옛 집이라는 설이 거의 확실하다.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으로 촌장은 지타라고 한다. 처음에 명활산에 내려왔는데, 이 사람이 한기부 또는 한기부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가덕부라고 하는데,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 동촌이 이에 속한다.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으로, 촌장은 호진이라고 한다. 처음에 금강산으로 내려왔는데, 이 사람이 습비부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임천ㅂ로, 물이촌・잉구미촌・궐곡 등 동북촌이 이에 속한다.
위의 글을 살펴보면, 이 여섯 부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다. 노례왕 9년(132)에 처음으로 여섯 부의 명칭을 고쳤고, 또 여섯 성을 주었다. 지금 풍속에 중흥부를 어머니, 장복부를 아버지, 임천부를 아들, 가덕부를 딸이라 하는데 그 실상은 자세하지 않다.
전한 지절 원년(B.C. 69) 임자년 3월 초하루에 여섯 부의 조상들은 각기 그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 남쪽 언덕에 모여 다음과 같이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위로 군주가 없이 백성들을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리고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옆에 번갯불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우고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그곳을 찾아가 보니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뜨려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모습과 거동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빛이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아졌다. 그래서 혁거세왕이라 이름하고 위호는 거슬한이라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다투어 축하하며 말하였다.
“이제 천자가 이미 내려왔으니, 덕이 있는 황후를 찾아 맺어드려야 한다.”
그 날 사량리 알영정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얼굴과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부리와 같았다. 월성 북천에서 목욕을 시키자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으므로 그 시내의 이름을 발천이라 하였다.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를 받아 길렀다. 남자아이는 알에서 태어났는데, 그 알이 박처럼 생겼다. 향인들이 바가지를 박이라 했기 때문에 성을 박씨로 하였다. 여자아이는 태어난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두 성인이 나이 13세가 되는 오봉 원년 갑자에 남자아이를 왕으로 세우고, 여자아이를 왕후로 세웠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 혹은 사라 또는 사로라 하였다.
처음에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으므로 계림국이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자,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국호를 고쳐 계림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세에 이르러 국호가 신라로 정해졌다.
박혁거세는 6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후 시신이 땅에 흩어져 떨어졌고,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한곳에 장사를 지내려 하자 큰 뱀이 쫓아다니며 이를 방해하였다. 그래서 머리와 사지를 제각기 장사지내 오릉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사릉이라고도 한다. 담엄사 북쪽의 능이 바로 이것이다. 그 후 태자 남해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