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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8-24 20:11
병자호란 전에 청나라 황제가 조선에 보낸 편지
 글쓴이 : 며미미
조회 : 1,652  

정축년(1637) 1월 2일 홍서봉(洪瑞鳳), 김신국, 이경직이 적의 진중에 가서 청 태종이 이종에게 내린 조서를 받아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대청국(大淸國)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는 조선국왕에게 조서를 내려 깨우치게 한다.

 



우리나라 군사가 지난해 동쪽 우량하(兀良哈)를 칠 때, 


너희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격(邀擊)을 한 뒤에 또 명나라와협조하여 우리나라를 해쳤다.


 그러나 이웃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기를 생각하여 끝내 개의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요동(遼東)을 얻게 되자 너희는 다시 우리 백성을 불러다가 


명나라에 바쳤으므로, 짐(朕)이 노하여 정묘년에 군사를 일으켜

너희를 정벌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어찌 강함을 믿고 약한 자를 능멸하여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할 것이냐?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후로 거듭 너희 변방 신하들을 타이르기를, 


‘정묘년에는 부득이 잠시 기미(覊縻)를 허락한
것이다. 


이제 정의로 결단을 낼 때이니 경들은 각기
여러 고을을 타일러 충의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책략을 본받게
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원해서 종군하게 하라.’ 등등의

말을 하느냐?

 





이제 짐이 친히 너희를 치러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 


너(爾)는 어찌하여 지모있는 자가 책략을 본받고 용감한
자가


종군하게 하지 않고서 몸소 일전을 담당하려 하느냐? 


짐이 강대함을 믿고 추호도 서로 범하지 않았는데, 




너희는 약소국으로 
도리어 우리의 변경을 소란하게 하며, 
산삼을 캐는 자․사냥을 하는 자를 어찌하여 짐의 도망한 백성이라 하여 데려다가

명나라에 바치느냐? 


또 명나라의 공․경(孔耿 : 청나라에 투항한 명나라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을 말함) 두 장수가 귀순하여 짐의 군사가 가서 
그를 응접하려 하는데, 너희 군사가 대포를 쏘아 방해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것은 함부로 전단(戰端)을 
일으킨 실마리를 또다시 너희가 연 것이다.

 





짐의 아우와 조카 등 여러 왕이 너희에게 글을 보냈는데 
어찌하여 종래에 서로 글을 통한 예가 없다고 하였느냐?
 정묘년(1627)에 
너희를 정벌하러 오자, 너희는 섬 가운데로 달아나 
오직 사신을 보내 강화를 빌었는데, 그때 글이 오고간 상대는 여러 왕이 아니고

누구였는가? 짐의 아우나 조카가 어찌 너만 못하냐? 또 외번(外蕃)의 제왕(諸王)이 글을 보냈으나 너는 끝내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들은 곧 원나라 황제의 후손인데 어찌 너만 못하냐?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보낸 글을받지 않은 것은 너의 어리석고 교만함이 


이에 이르러 극에 달한 것이다.


 너희 조선이 요․금․원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신하를 일컬었지, 


옛날부터 언제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냄을 얻은 일이 있느냐?

 





짐이 이미 너희 나라를 아우로 대접했는데 너는 더욱 더 배역하여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도성을 포기하고 대궐을 버려 처자와 떨어져서 서로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겨우 한 몸이 산성으로 달아나 비록 천년을 산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정묘년의 치욕을 씻는다고 눈앞의 안락을 깨뜨리고 화를 스스로 불러서 후세에 웃음거리를 남기려 하니,


 이 치욕은 또 장차 어떻게 씻으려 하느냐?

 




이미 정묘년의 치욕을 씻으려 생각했으면, 


어찌하여 목을 움츠려 나오지 않고 여인의 처소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달게 여기느냐?

 




네가 비록 이 성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생각은 욕되게 살기를 바라지만,


 짐이 어찌 너를 놓아줄까 보냐?


짐의 여러 내외 왕과 문무 모든 신하들이 짐이 칭제(稱帝)하기를 권고하였음을


 네가 듣고는,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君臣)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느냐’ 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황제를 일컫는 것이 옳고 그름은 너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시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화를 주시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산골구석 궁색한 기와 밑에 앉아있는 너 따위가 감히 천하의 천자를 점지하느냐? 




뿐만 아니라 
맹약을 배반하고 성을 쌓았으며, 


사신 대접하는 예가 갑자기 못해졌고, 


또 사신을 보내서 너희 재상을 만나보게 했더니 계교를 꾸며

쳐서 사로잡으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명나라를 아비로 섬기고 우리를 해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러한 것들은 특히 큰 죄 
몇 가지를 든 것이고, 


그 나머지 소소한 혐의는 이루 다 들어 말하기가 어렵다.

 




이제 짐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희 八道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어버이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어떻게 너희를 구원하는가

두고 볼 것이다. 


자식에게 위험이 절박했는데 
어찌 구원해 주지 않는 아버지가 있으랴. 


그렇지 않으면 이는 스스로 백성을 물불
속에 빠트리는 짓이니 
억조(億兆) 중생이 어찌 너에게 원한을 품지 않겠느냐?


네가 할 말이 있거든 분명히 고하라, 막지 않을 것이다.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보낸 글을받지 않은 것은 너의 어리석고 교만함이 


이에 이르러 극에 달한 것이다.


 너희 조선이 요․금․원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신하를 일컬었지, 


옛날부터 언제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냄을 얻은 일이 있느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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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5-08-24 20:22
   
?? ㅋㅋ며미미 > 이 님은 이런 글을 왜 올리실까?(동게도 올렸구만 ㅋ)

요나라 시절 짱개 송나라는 연운 16주 빼앗기고 조공국으로 전락했고

고려는 요나라와 3차대전을 가면서 3차에서 요나라 정예 10만을 궤멸시켜 이름하여 귀주대첩이라.

이후 고려에 의해 폭주하던 요나라는 위축되어 100여년간 동북아 3강 체재의 안정기를 주도했고

고려는 동만주 일대 여진족(당시 후발해민)을 직간접 관할 아래 두면서 세력권이 상경용천부 일대까지 팽창.


요나라 정예10만의 궤멸과 고려의 팽창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1567&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B%A0%A4+%EC%83%81%EA%B2%BD%EC%9A%A9%EC%B2%9C%EB%B6%80&sop=and
굿잡스 15-08-24 20:28
   
그리고 신라계황제와 반요사상의 (후)발해민 연합의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켜 버리고

이후 송나라까지 멸망. 짱개 송나라황제인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을 만주로 압송하고 생볼모로 지내다 켁.

이를 이름하야 지들이 붙인 이름이 정강지변(靖康之變)이라.

당시 금나라 국무총리격인 고구려계 장호가 서토를 적극 지배, 기어내려가 세운 남송 공략을 위해

북경에 중도를 건설. 100여년간 동북아 패자로 군림.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B%84%EB%B0%9C%ED%95%B4&sop=and
 

원나라 시절 남송까지 멸망. 짱개는 가축같은 사고 팔리든 최하위 노예 등급.



대몽항쟁이 본격화 되자 당시 무신집권기로 정치가 이원화되어 있던 상태라 아예 고려조정은 몽골과

화친해서 무신집권기를 끝내려는 형태로 선회. 이후

고려 충렬왕이 쿠빌라이 딸인 쿠툴룩켈리쉬(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한 사위였고

충선왕은 쿠빌라이 외손자. 몽골 징기즈칸의 황금씨족 직계 대우를 받았던 사람이 고려

왕계.그기에 후사가 없던 성종 사후 충선왕이 직접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서 무종을 옹

립한 일등 공신이 되면서 세계를 경영하던 원제국 몽골 황제 다음 권력 2위 자리인 개

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올랐던 막강한 권력자가 되면서 고려왕이 심양왕을

겸직.요동일대는 다시 남국 고려의 70여년간 자치권 아래 놀던 상황.


-- 짐이 보건대 지금 천하에서 자기의 인민과 사직을 가지고 왕위를 누리는

 나라는 오직 삼한(고려)뿐이다. 우리의 선왕 때로부터 그 후 거의 100년 가
 
 까운 기간에 부자가 계속 우리와 친선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서로 장인과 사
 
 위관계로 되었다. 이미 공훈을 세웠고 또 친척이 되었으니 응당 부귀를 누려
 
 야 할 것이며 어떤 나라보다 먼저 국교를 맺었으니 추숭하는 예절을 어찌 늦
 
 출 수 있겠는가 --


앞서 금나라 시절 고구려계(후발해민)들이 상경용천부가 외곽 동만주로 치우쳐

있어 관리가 안되니 요나라가 수십만을 이곳 발해 외곽 심양일대로 대대적 이치를

시키면서 이곳의 발해민과 동만주 일대 후발해민 그리고 신라계 아골타가 연합해서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요양일대가 대금의 수도가 됨.

이후 서토공략을 본격화하면서 북경에 고구려계 장호가 중도 건설을 하고 다시

이곳으로 상당수를 세금감면등을 통해 이동시키는데 금이 무너지자 이 요양일대를

다시 남국의 고려민들이 차지하게 된 것임(학계 최소 3,4만에서 최대 8,9만정도로

상당한 인구가 흘러들어갔다고 보는)

이때문에 이후 원말기 고려 공민왕이 원잔재를 청산하면서 요양일대 고려 백성을

안정시키기 위해 1차 요동출정.(조명시기도 명의 내지는 산해관 이서, 요동변경

관할의 실질적 위치도 요동 고구려 봉황성 이서쪽)
아침잠마나 15-08-24 20:30
   
맛나 맛나 냠냠
굿잡스 15-08-24 20:34
   
그리고 울나라의 남북국 즉 북방과 남방은

서로가 힘이 득세하는 상황에 따라 상호 보완적으로 위치가 바뀌기도 했지만(삼국시대도

먼저 백제가 전성기를 이후 고구려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동북아 최강대국 위치로 올라섰고)

 흑수말갈이야 앞서 고조선부터 부여 천년사직 고구려의 휘하 부용세력으로 복속된 신민이였고 이후

발해가 약화되는 시기에 신라에서 고려로 왕조 교체기에 일단의 신라계무리가 이런 흑수부 일대로 들어가

통합 이후 발해민까지 아우려고 나온게 여진족이라는 족명.

이후 북국 세력이 강할때는 역으로 북국쪽이 태왕의 위치로 신라 발해시기에는 신라가

태왕의 위치에서 초기 입김이 더 강했고

조선 초중기때야 여진족은 조선의 직간접 세력권 아래 존속. 이후 임진왜란 시기의 동북아 대전을 틈타

세력을 키우면서 발호.

청제국은 이민 만주족이 서토 짱개들 수백만을 도륙질하며 변발과 만주복장, 무기 소지시등에는 가차없이

즉결 참살. 만주족 청은 초기부터 말기까지 만주본위 서토인 차별의 이원 정치 지배체재.

쑨원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울때 엄연히 이민족 정복사라 멸만흥한을 외치고 나온 국호.

무슨 짱개들이 역사에 뭘 부심질 쳐하시남요?ㅋ

우리부터 여러 동이족, 북방 민족에 이리 저리 개털리면서 나라 잃고 노예로 산 세월이 수천년이구만.ㅋ
굿잡스 15-08-24 20:39
   
위에도 올렸지만 금나라 시절 송나라 멸망시키고 볼모로 짱개 군주들

데러가서 당시 이런 짱개군주들 데려오기 위해  송사신이 10여년간 만주 금나라에  머물면서

직접 보고 쓴  송막기문(松漠紀聞)에서 왈

女真酋長乃新羅人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지배 강점을 밥먹듯 하던 서토사 짱개들이 역사에서 부심질 쳐하기는 요원.

향후로도 더욱 요원.

뭔 미국이 G2어쩌고 립싱크질 해준거지 지금 짱국 경제 꼴라지 보라지.

이미 미국이라는 새로운 더욱 강한 제국이 들어선 상황에서 그나마 노예질 밥먹듯 하든

서토 짱개들이 인구발로 어쩌고 일부 부심질 쳐하든 그나마 시간도 더 이상 나올 시대는 저 멀리~~
굿잡스 15-08-24 21:29
   
근자에 고려가 표문을 상주하는데 언사가 많이 부실하여 짐이 이미 담당 관청에 이를 규명하도록 명했다. 듣자하니 그들은 수도 개경으로부터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요충지에 비축하는 군량이 매 역마다 1, 2만서 혹은 7, 8만석 혹은 십수만 석에 이르며 사람을 보내 동녕부의 여진을 유인하여 국경을 넘어오게 하고 있으니, 이는 그 뜻에 반드시 깊은 음모가 있는 것이다...(중략)...지금 요동은 군량이 모자라 군사들이 굶주리고 고단한데, 만약 즉시 사령창의 식량을 내어 그들을 구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고려로 하여금 도망병을 꾀어 드이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니다. 만일 고려가 20만 군대를 내어 쳐들어오면 여러 부대는 어떻게 막겠는가. 이제 건축과 보수를 잠시 정지하고 임시 막사를 지어 10년 간 거주한 후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라. 옛 사람의 말에 사람이 수고로우면 화란의 근원을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태조고황제실록 1395년(위화도 회군 7년후) 4월.


태종 9권, 5년(1405 을유 / 명 영락(永樂) 3년) 6월 27일(신묘) 1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평양 부원군 조준의 졸기


정축년에 고황제(高皇帝)가 본국(本國)의 표사(表辭)500) 안에 희모(戲侮)501) 하는 〈내용의〉 글자[字樣]가 들어있다 하여, 사신(使臣)을 보내 그 글을 지은 사람 정도전(鄭道傳)을 잡아서 경사(京師)로 보내게 하였는데, 태상왕이 준(浚)을 불러 비밀히 의논하니, 대답하기를 보내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다. 도전(道傳)이 그때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로 있었는데, 병(病)을 핑계하여 가지 아니하고 음모하기를, 국교(國交)를 끊으면 자기가 화(禍)를 면할 것이라 하고, 마침내 건언(建言)하기를,
  “장병(將兵)을 훈련하는 것은 군국(軍國)의 급무(急務)이니 진도 훈도관(陣圖訓導官)을 더 두고, 대소(大小) 중외(中外) 관리로서 무직(武職)을 띈 자와 아래로 군졸(軍卒)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습하게 하여 고찰(考察)을 엄중히 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고 남은(南誾)과 깊이 결탁하여 은(誾)으로 하여금 상서(上書)하게 하기를,
“사졸(士卒)이 이미 훈련되었고 군량(軍糧)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동명왕(東明王)의 옛 강토를 회복할 만합니다.”
하니, 태상왕이 자못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은(誾)이 여러 번 말하므로, 태상왕이 도전(道傳)에게 물으니, 도전이 지나간 옛일에 외이(外夷)가 중원(中原)에서 임금이 된 것을 차례로 들어 논(論)하여 은(誾)의 말을 믿을 만하다고 말하고, 또 도참(圖讖)을 인용하여 그 말에 붙여서 맞추었다
 
天順三年,邊將奏,有建州三衛都督私與朝鮮結,恐為中國患

명사

천순3년(1459년 조선세조 제위당시) 변경장수가 보고하길 건주삼위의 도독이 몰래 조선과 결탁하였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중국이 병이 나다.


세조실록
 
야인과 왜인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이고 우리의 신민이니 왕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 하여 혹은 무력을 사용기도하고,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아니다. 흑룡강, 속평강, 건주위, 올량합, 이만주 동창등 심처 야인과 삼위 달자가 관문을 두드리고 입조하기를 청하거든, 그 종인을 줄여서 후대하여 올려보내라
 


세조실록
 
누가 조선을 일컬어 예의를 아는 나라라고 하였는가? 이 일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뛰는 따위가 아닙니다. 어찌 무례하기가 이와 같습니까?
 
(명나라 사신이 조선한테서 박대받고 한 소리)
 

단종 10권, 2년(1454 갑술 / 명 경태(景泰) 5년) 1월 6일(무오) 5번째기사
김우을두합 등이 야인들이 세조를 알현하고자 원함을 아뢰다
 

요동 도사(遼東都司) 왕상(王祥)이 말하기를, ‘요동사람들이모두말하기를,
 
「수양대군(首陽大君)은 대장(大將)의 의모(儀貌)가 있었는데, 이제과연 발란 반
 
정(拔亂反正)2142) 하였다.’ 하고 탄상(嘆賞)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그때 세조(世祖)가 농사에 힘쓰고 학교를 일으키고 군사를 양성하기를
 
일삼아서, 궁병(弓兵) 백만을 길러 오랑캐[夷狄]를 제압하려고 결심하고 진법(陣
 
法)을 익히고 군사를 훈련하니, 왜인과 야인들이 모두 위덕(威德)을 흠모하여 다
 
투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세조 40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11월 2일(경오) 3번째기사
 
시무8조에 관한 대사헌 양성지의 상소문
 
우리 나라의 인민(人民)은 무려 1백만 호(戶)나 되는데 그 중에서 활을 잘 쏘는
 
병졸이 30만 명이고, 정예(精銳)한 병졸이 10만 명이며, 용감한 군사가 3만 명입
 
니다.
관성의법칙 15-08-24 23:24
   
그래서 한족이여? 만주족이여? ㅋㅋㅋ

출신도 없는 호로새낀가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