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누가봐도 넘버 원이고
그당시 명은 확실하게 망해가고 있었고 조선역시 명에는 의리만 지킬 뿐이었죠.
근데 그거에 분게해서 왕죽이고 명에 붙음.
그 당시 조선역기 명이 망해간다는건 알고있었슴.
미국과 중국의 비교는 메치가 안됨
오히려 냉전 당시 망해가는 소련과 미국을 비교했다면 비슷하겠네여
그러니까 당시에는 명나라가 그렇게 어이없이 멸망할 거라곤 어느 누구도 생각못했죠. 영원성 전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후금의 황제 누르하치가 전투패배의 후유증으로 앓고앓아 죽었으니 '아무리 저물어가도 청이 명을 이길날은 없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정보가 빠르게 소통되는 시대에도 누가 더 쎄고 강할지 모를판인데...현재의 시점에서 보고 이미 승자가 결정났기에 쉽게 판단하는 거지, 우리가 그 시대의 배경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그 시대로 돌아가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심지어, 청나라는 세자를 따로 세우지도 않았지요.
누르하치에겐 많은 아들들이 있었고,
신생국가인 청이 어찌될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었습니다.
희안하게 우리 한국인들은, 내부에서 책임을 찾을려고 하고,
심하면, 자기 비판을 엄청 열심히 합니다 ㅋㅋㅋ
윗분 누구는 선비병이 있다고도 하는데;;
호란도 보면, 인조탓이다는 사람은 엄청 많음.
나도 인조 안 좋아함-.-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 청나라 내부는 어떤 상황이였는가?에 대해선 아무도 말을 안함..
우리만 잘하면 전쟁이 없을꺼다?
그렇담? 왜란은 어떻습니까?
왜란이 조선이 일본에 잘못해서 일어난 것이였나요?
잘못한게 있다면 방비에 소홀했다던가. 하는 문제가 나오겠는데
사실, 당시 조선조정에서도 전쟁준비를 하긴 했습니다.
다만, 예상수위를 넘었다는거죠. 고작 많아봤자 1-2만 정도의 왜구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조의 서인정권 역시, 광해군을 몰아내긴했어도,
알려진 것처럼, 노선을 확- 바꿨던건 아닙니다.
애네들도 양측에서 물타기는 엄청 했습니다.
인조반정의 공신 김류나 최명길도, 현실적으로 청이 크고 있는건 어쩔수 없고
고려가 송-금 양측에서 살길 찾았던거처럼, 조선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구요.
인조도 금과 형제지국이 되는거까진 참았죠. 뭐, 그뒤 군신관계 나오고
청나라가 명과 국교단절되고 난뒤, 닥친 기근과 경제문제를
조선을 치는 것으로 해결보려고 했죠.
한국인의 원래 성향을 고려 시절로 가정해놓고 보면 이웃에 자원이 풍부하고 판매 시장이 크고하면 역시나 제국주의적 영토 팽창이 일어남니다 (고려 국시는 요동 정벌,고토회복 였음)
조선의 체제가 망해서 다른 체제가 들어섯다면 농본 사회적 유교 질서를 버려버렸단 이야기이고 상공업이 발전되고하면 반드시 자원수입 ,물품 판매시장 확보 필요가 생겨나죠..한반도는 농토 부족에 비좁은데다 자원이 빈약해서 그런 요구를 충족 못하고 ...그러면 해외로 팽창이죠
지금 은 평화적 준법적 국제 질서란거이가 정착이 되서 함부로 남의 나라 침략을 못하나 그시절 17세기, 18세기만 해도 무력이 강하면 누구나 이웃나라 침략하고 하는 시대 이죠,,유럽이 아시아 아프리카 침략하고 할적에는 명분 같은거가 불필요 했습니다 ..대체로 경쟁국가들이 자기가 약한 나라 집어먹는데 방해하는거만 처리하면 되던 시절였죠
당시 조선에서 청에다가 붙으면 거의 확실히 침공을 안당하는데...그런다고 무력을 육성 하지도 않았었고..병자전쟁의 발발 전까지 그냥 시간만 보내고..한마디로 국방에 무능에다 대명사대주의 이념에 너무 매몰되서 사리분별을 못한게 조선 조정대신들
청=오랑캐 하면서 배척을 하며 동시에 명만을 상전으로 받들고 ,,,,인조 취임 이후 정치가 놀라울 정도로 과오와 실패를 범했던게죠
그러니까 청에다가 조공을 받치는 것이야 당시 경제적으로 열악한 청 사정에서 불가피한게고 대조선 침공을 무턱대고는 안한다..이거지요..청은 명 정벌에다 반드시 군사 파병도 요구 해을 것이고 조선 측이 파병도 조공도 거부 ,,,이러면 청이 침공을 할것이고... 조선이 강력한 청군으로부터 침공을 안당하는 댓가로선 이정돈 준수 한겜니다
청이 북경근처 까지 진군을 해서 더 강해지면 명은 요동/ 요서를 완전히 상실을 할것이고 그이후엔 조선내 일부에서 우려하던 명으로부터 보복도 안당하는데..명이 이자성 반란에 의해 망허질 않는다 해도 이 상태가 오래 장기간 지속이라 ..그 길이 당시 조선이 취해야 할 최선책 길이라 할수가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