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사람은 많고 먹을 것이 적어서, 흔히 노비를 팔아 먹고 있어 혹 남의 자제들을 훔쳐다 팔기도 하는데, 이는 허다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국왕의 답서
통신사 박서생(朴瑞生)이 일본에서 돌아와서 일본 국왕 원의교(源義敎)의 답서(答書)를 바쳤다. 그 글에 이르기를,
“금년 여름에 전위(專爲)하여 보내신 사신이 이르렀고, 살피건대 지난해 섣달에 발송하신 바는 대대로 닦아 온 우호(友好)를 잊지 않으시고 이웃 나라를 비호하는 데 힘쓰시기를 이와 같이 하시니, 어찌 그렇게도 위대하십니까. 누방(陋邦)은 부형(父兄)의 기업(基業)을 이어받으매, 책임은 중하고 힘은 미약하여, 국내의 조그마한 치무(治務)에 급하여 미처 국외와의 수경(修敬)에 미치지 못하였던 바, 먼저 예명(禮命)이 욕림(辱臨)하니 기쁘고 위로됨을 어찌 다 술회하오리까. 보내 오신 글에 이르기를, ‘잘 이어받고 잘 준행하며, 역대의 우호를 돈독히 하여 양국을 복되게 하라.’ 하셨으니, 지극하옵신 말씀입니다. 다시 어찌 더하오리까. 거의 이 교훈을 잊지 아니하고 길이 우호를 보지(保持)할까 하나이다. 내려 주신 보배로운 물건들을 일일이 영수하였사오며, 박소(薄少)한 물품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사오나, 보답(報答)이 되지 못겠습니다. 혹 먼 데서 온 것이라 하여 윤허해 받아 주시겠습니까.”
하였다. 예물은 채선(彩扇) 1백 자루, 장도(長刀) 2자루, 주칠 목차완(朱漆木車盌) 대소를 합하여 70개, 주칠 천방분(朱漆淺方盆) 대소를 합하여 20개, 휴칠 목통(髹漆木桶) 2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