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는 이렇게 주입하고 있죠.
혐오를 말하는건 세련되지 못한 무식하거 띨띨한 인물들의 전형.
포용과 화합 이런걸 떠들며너 배우고 유식하며 생각있는 사람들의 세련됨.
글쎄요. 혐오주의가 옳니 포용주의가 옳니를 떠나서 사람은 늘 양자를 택할 수 있고 어느것이 더 우월하다고 자연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어요. 문제는 미디어에 의해서 연출된 작업들이 마치 포용, 화합 이런건 세련되게 포장을 했었고, 혐오주의는 어두움, 불결함 이런식으로 묘사를 했기 때문이죠.
진짜로 문제인건 혐오주의가 나쁜게 아니라 혐오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설픈 도덕이 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태가 국가나 사회로서는 최악의 상황일 뿐이죠. 우리나라는 어떤 유교자뻑이나 도덕적인 진리공방에 좀 지나치게 파뭍이는 경향이 있는데 국가나 사회로서는 자기보다 더 하층민들에게 분풀이를 하는게 최선일 수 있습니다. 이걸 나쁘다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이 아니라 도덕몽상에서 사는 사람이고요.
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 불쌍하다고 포장질하는 외노자들. 정말로 차별만 받고 살까요? 예를 들어서 베트남노동자, 베트남 본국에서는 자기보다 더 가난한 라오스, 캄보디아노동자를 차별합니다. 사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도덕세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한국만의 판타지일 가능성이 더 크죠.
아무리 일본보고 혐한정서니 어쩌니 하면서 비웃어봐야 일본은 그런대로 잘 살아갑니다. 1930년대 일본이 그렇게 삽질을 했지만 보란듯이 성공했으니까 말이죠.
어차피 기대도 안하지만 한국인들에게서의 탈도덕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숙제인듯 합니다. 전 억지로 도덕적이지 않을려고 노력하는데 말이죠. 강자존, 약육강식 이런 원칙부터 이해를 해야 도덕이 읽히는 법입니다. 한국사회는 이를 반대로 보고 있죠.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아요. 일종의 속박과도 같은 꼴인데 혐오를 막아버리는 사회는 어딘가의 기형적인 무언가가 튀어나오게 됩니다. 차라리 혐오를 받아들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