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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5 19:50
연도별 세계 경제력 지도
 글쓴이 : 미남부자
조회 : 5,283  


 영국 셰필드대학의 '사회 및 공간 불평등 연구그룹'(SASI)은 10년 뒤 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추정,이를 영토 크기로 표현한 '세계 경제 지도'를 제작·발표했습니다. 

미국 미시간대 마크 뉴먼 교수와 함께 세계은행(IBRD),미국 중앙정보국(CIA),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유엔환경계획(UNEP) 등 9개 기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건 서기 1년경 지도인데 로마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보라색과 일부 파란색, 주황색 일부입니다. 당시 중국의 한나라는 초록색과 연두색 일부입니다. 

 한나라가 로마제국보다 경제력이 약 2.5배정도가 더 큽니다. 저기 멕시코의 마야제국과 남미의 안데스문명도 보이네요 ㅋ
 

 이건 서기 1500년경 지도입니다. 아직도 중국이 1위입니다. 저때는 명나라시기네요. 유럽도 로마때보단 더 컸네요. 아즈텍제국과 잉카도 경제력이 더 발전했네요.

 

 이건 서기 1900년경입니다. 수천년간 세계패권을 가져갔던 중국이 몰락했네요. 아메리카 대륙의 경제발전이 크군요.

 
 이건 1990년 경제력 지도입니다. 일본의 버블경제입니다.


 서기 2015년 지도입니다. 중국이 다시 왔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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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꼬이떡밥 15-02-25 19:53
   
이거 북한은 항상 하얗색
한국은 항상 분단국?
     
미남부자 15-02-25 19:55
   
아 이게 학자들이 일부러 알아보기 쉽게 하려고 현대 국가들의 영토로 설정해서 그럽니다.
     
똥침발사 15-02-25 19:56
   
과거의 지도들도 국경선은 현대의 기준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 같네요.
우리나라와 중국이 같은 연두인 건 중국=연두색 이 아니라 연두색 =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권이라는 영역으로 묶은 것 같구요. (유럽 등도 마찬가지)
레나페어리 15-02-25 19:53
   
처음엔 지도를 잘 이해 못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재미있네요 ㅎㅎ
배신자 15-02-25 19:57
   
아무리 그래도 유럽이 너무 작네요 ㅡ.ㅡ;
     
미남부자 15-02-25 19:59
   
유럽의 경제력이 동아시아를 넘은건 얼마 되지않는 기간입니다 ㅎ
     
푼수지왕 15-02-25 20:02
   
중세때까지는 유럽은 동북아에 비해서 낙후되고 미개한 지역이었음.
가생이만세 15-02-25 20:00
   
흐음...
꼬마러브 15-02-25 20:13
   
무슨 한나라시대때부터 일본이 이집트만해 ㅋㅋㅋ 아직 농사도 제대로 못짓고 나라도 못세운 놈들이 ㅋㅋㅋ
북창 15-02-25 20:14
   
서기 1세기면 일본은 신석기 시대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처구니가 없구만...
서양놈들이 동양 역사에 얼마나 무지한지 알만하네요~
     
관성의법칙 15-02-25 20:20
   
중국에 있는 각국 사신들 그림보면 일본이 저수준은 아닐텐데.. 생각했음..
     
굿잡스 15-02-25 20:33
   
서기 1년 경이면 저 당시 열도는 우리쪽(만주와 한반도)에서 흔히 나오는 도시문명이나 취

락 조차도 제대로 발견되지 않는 지역이죠.

무엇보다 저 지도가 정말 허접하다는게

6세기경에도 열도 유적으로 고분시대 가장 선진적으로 뽑는게 미츠데라 유적.(위정자의

유적들 보면 그냥 과수원 원두막 수준임)으로 과수원 수준의 목책에 주변에 고분 몇개

에 희박한 인구 밀도로 이때까지도 우리에게서 보이는 그 흔한 도시취락유적이 나오지 않는.
 
6세기 발굴된 가장 발달했다는 미츠테라 유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05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B%B6%84%EC%8B%9C%EB%8C%80&sop=and
 
 
고분시대(3~6세기) 열도의 문화 수준은

도시 인프라에서 낙후되었다는  바이킹보다 훨 낮고

고분시대(3~6세기) 열도에서는 헤데비보다 큰 취락지는 발생되지 않음.

당시는 열도를 개척하던 우리 가야 백제계의  소규모 집단의 호족들이 300개의 지역에서 분

포하면서 세력 확장하느라 정신없던 시기. 이런 나라를 무슨

당시 우리 열국시대에 저기 요하일대로 추정되는 위만 조선부터 북만주의 강자 부여 동예,

옥저, 삼한등과 비교해서 열도가 저 수준의 경제력이다???? ㅋㅋ


이건 뭔 어디 해괴한 환타지 임라일본부설에 더 오버질 들고와서 쳐빨아 올린

전형적 환타지 데이타군요.


무엇보다 저 당시 서열도는 그냥 우리의 외치 영토공간으로 보는게 더 합당(일본이라는

국호도 삼국시대 우리 백제의 지리명칭이 이후 본토 백제가 멸망하면서 지리명사가

본격적 국호로 열도에서 생겨났고) 그리고 동열도는 에도시대까지도 조몬인들은

수렵생활을 할 정도 미개했음.(1세경 동열도의 그것도 섬에 박혀 살던 미개한 조몬인들

수준을 보고 경제력 운운??하는 건ㅋ 정말 코메디임)
나와나 15-02-25 20:20
   
일본은 3세기에나 들어서야 야마토 정권이 들어서고, 1세기 당시에는 부족연맹 수준에 머무르던 시대인데 뭐가 저렇게 크죠?
굿잡스 15-02-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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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 이분은 오늘도 아이디까지 바꿔서리 열심히 서토 어쩌고임 ㅋ
     
미남부자 15-02-25 20:22
   
ㅋㅋㅋ
현진쒸 15-02-25 20:23
   
이렇게 보니 세계에 3가지 세력이 있는 느낌

북미, 유럽, 그리고 동아시아
굿잡스 15-02-25 20:23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

"동해(서토 동해안)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다”

-산해경(춘추전국시절 편찬된 지리서)



<1968년 역사학자 천판(陳槃)이 펴낸 ‘춘추대사표열국작성급존멸선이(春秋大事表列國爵姓及存滅선異)’라는 책이었다. 기존 사서를 근거로 중국 중원에 산재했던 춘추시대 170여 소국의 역사를 비정한 역사책인데, 바로 선우라는 항목이 있다.

“선우는 일명 중산이라 한다. 회남자는 우(虞)는 혹 우(于)라 했다. 선우(鮮于)는 그 선조가 자성인데(其先子姓), 기자는 조선에 봉하고(以箕子封朝鮮), 기자의 둘째 아들은 우(于·핑산으로 추정)에 봉했다. 여기서 자손들은 조선의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鮮于)씨라 했다.(子孫因合 ‘鮮于’爲氏)”(천판)>

은나라의 후예 어쩌고 금석문이 발견되었고 여기에 기자의 후예

어쩌고로 이 선우씨의 유래가 참 재미있고 눈에 확띄는 대목이 선자가 조선의 선자와 봉지의 우자가

합쳐서 나오는 말이라는.  자세한 내용과 선우중산국의 위치까지 확인 바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021738135&code=210000

그외 고죽국의 경우도 눈여겨 볼 부분인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041710515&code=210000


요서에서 발견된 두로영은(豆盧永恩)의 비문에

조선건국 고죽위군朝鮮建國 孤竹爲君’(조선이 건국을 하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
겔겔겔 15-02-25 20:23
   
남미는 동남아보다 안되네요.
러다이트 15-02-25 20:37
   
이자료가 병X같은 자료인지는 논란이 있을 과거의 지도를 제외하더라도 2015년만 봐도 알수있네요.

암만 중국이 성장했어도 중국GDP가 미국의 반밖에 안될건데 지도상으로는 오히려 미국을 능가한걸로 나오네요.

이런 자료를 만든 SASI와 마크뉴먼이라는 교수가 수준이하이거나 아니면 이 자료를 퍼온사람이 다른자료를

가지고 세계경제지도라고 말하고있거나 둘중하나겠네요.
     
미남부자 15-02-25 20:38
   
2015년거는 예측자료래요 ㅎ
          
러다이트 15-02-25 20:43
   
암만 예측이라도 중국경제가 갑자기 두배로 성장한답니까ㅋ

지금 알아보니 작년 지디피가 중국이 미국의 60%정도 규모인데 말이죠

퍼오는 자료에 대해 다 알수는 없지만 미남부자님께서는 이 자료를 보면서 의문점이 전혀 드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굿잡스 15-02-25 20:38
   
그리고 16세기도 뭔 왜가 저리 컴???

17세기 에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에도시대를 맞아야 그나마 어쩌고 할 판에.

실제 16세기 잽의 수도이면서 가장 큰 도시규모인 쿄토의 도시 크기를

보면 조선의 제2 수도격인 개경(개성)보다 훨 작구만.  고려시대고 왜 도화견문지에서

왜가 고려에 신속했는지 이런 당시 왜의 교토 수도 규모만 봐도 충분히 짐작가능.
메렁 15-02-25 20:38
   
러시아도 너무 작은것같아요
     
굿잡스 15-02-25 20:48
   
15세기까지는 루시(러시아)는 여러개의 부족으로 몽골에 지배를 받으먼서

문화적으로 군사력으로도 그렇게 세를 보이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이후 주변 지역을

병합하고 동진정책을 통해서 영토가 팽창하면서 영토도 급격히 불어난.

오늘날도 영토 크기에 비해 러사의 경제력은 그리 큰 편은 아니군요.
          
미남부자 15-02-25 20:50
   
러시아가 예카테리나때까지 몽골제국의 후예인 크림칸국에게 충성을 하고 세금을 바친게 맞습니까?
               
굿잡스 15-02-25 21:04
   
13세기 징기스칸 손자인 바투가 폴란드 러사를 대대적으로

털어버리고 독일 입성으로 본격적 유럽 정벌로 들어가려다 오고타이칸이 죽음으로서

회군하다 다음 칸 선출 소식을 듣고는 볼가강 유역에 캄차크한국을 건설. 이후

공납을 받는데 블라디미르 대공이 이런 공납의 대행권을 가지면서 이득을 얻고

기존의 키에프 지역이 주변 공격의 취약하다는 생각에 척박한 모스크바로 자릴

옮기면서 이곳을 전략적으로 키우게 된 거죠. 이게 이후 러샤가 대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된.
굿잡스 15-02-25 21:10
   
참고로 중세시절 유럽 상황을 보면 베네치아는 당시 중세

유럽에서 지금이야 지형적 한계로 작게 보여도 당시는 상당히 큰 도시로 14,5세기 초까

지 전성기를 구가한 도시국가이죠. 중세 영향력이 컸다는 프랑스조차 대표적 파리의 성곽

면적이(중세는 이런 성곽 방어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 프랑스어의 부르(Bourg)라는 말

이 성안에 있는 사람으로 이런 부유한 상공인들을 부른게 부르조아 (Bourgeois)) 2.4㎢이

고 이중에서 실제 시가지 면적은  고작 1.5㎢정도입니다. 이는 로마가 영국을 식

민지배하기 위해 세운 론디니움(런던)도 다르지 않구요. 즉 당시 도시의 크기나 부는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 대체로 이런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방의 중동과

동아시아를 매개로 해서 성장한 이탈리아반도로 베네치아등이 당시에도 상당히 큰 규모

.그리고 이런 베네치아는 역시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당시 50만의

거대 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동방원정을 통해 동지중해의 중계 무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도시의 규모도 팽창한 도시국가인데

당시 중세시절 유럽의 도시가 커니 혹은 상당한 부를 이루었니는 그 당시 중세 유럽

내에서 통용되는 상대적 부와 도시 규모이군요. 이게 동북아로 넘어오면 또 달라 진다는

말입니다. 고려는 4경체재로 전쟁없이 과장없는 전성기 100만의 거대

서라벌을 동경으로 흡수하고 고려의 개경은 이미 베네치아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

는 13세기때에는 유럽의 최대 도시라는 로마의 도시 크기를 상회하는 과장없는 50만 이

상의 거대도시를 구가합니다.(인구포화로 외성 밖으로 도시의 중심 시설인 거대 사찰들

이 뻗어 나감) 그리고 서경(평양)도 콘스탄티노플을 상회하구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정말? 언뜻 안믿거나 실감을 하지 못하죠.

그리고 이미 고려시대부터 기원하고 서양보다 200여년을 앞선 근현대적 복기부기의

원조격인 고려 개성상인의 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을 보면 회계를 좀 아시는지 모르

겠지만 이미 현금출납장부터 물품거래장에 위탁물처리장 및 어음거래를 한

어험수지장(魚驗收支帳)까지 다 들어있군요.

여기에 이런 고려 자체만 해도 당시 로마나 콘스탄티노플에 상회하는 도시들을 가진

고려의(인구를 대략 3,400만으로 보는 건 상당히 축소해서 본 것이고 이미 고려시대에는

물경 7,800만 정도로 봄) 개성은 동북아의 로마 통합 제국시절을 능가하는 송나라나

요(금), 그기에 왜국 밑 동남아,아랍까지 거래를 할 정도였고 이후 조선전기 태종이

한양에 2027칸의 거대한 시전행랑을 구축하면서 개성일대의 상업이 위축되는 듯 하지만

불과 몇년 안되어 태종 1409년 개성 유후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성은 한양과 더불어

상계의 두톱 체재로 지속적인 상업대도시로 구가를 하게 됩니다. 특히나 이 개경일대의

귀족들이 정계의 입문이 제한을 받으면서 고급 인재들이 상계로 진출하다보니 질은

더욱 높아졌고 거상들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전국적 유통망과 행상을

조직하고 신용장거래와 은행업등을 겸하면서 어음의 표권들도 유통시키고 있었고 나아가

명과 왜등에도 공사,밀무역까지 대외무역을 주도하게 되군요.

베네치아가 도시국가로 동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면서 제국 어쩌고 하는데 그 인구를

다해야 고작 150만 정도입니다. 조선은 이미 16세기경이면 인구 천만을 상회하는

세계사에서도 큰 대국이였고 그 옆의 명이나 왜,여진등과도 대외무역을 주도했든.
굿잡스 15-02-25 21:12
   
개성의] 여염집은 만 정(井)이나 되고 곡물은 백 전(廛)이 된다.

(중략) 봄바람에 술집 깃발이 펄럭이고 달 밝은 밤에 피리 소리 들린다.

민물(民物)은 풍성하여 실로 다른 고을에 비길 것이 아니고, 풍기(風氣)도 밀집하여 서경

(西京, 평양)이 견줄 바가 아니다.

-명나라의 문헌, 조선부(朝鮮賦, 1490년)-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 김양경(金良璥) 이 와서 아뢰기를,

“이제 풍덕군(豊德郡) 백성들의 상언(上言)으로 인하여 본부(本府, 개성)의 백성으

로 하여금 서적전(西籍田) 농부(農夫)에 속하게 하였는 바, 신이 보건대 본부(개성)

의 백성은 땅을 가진 자가 적고 비록 간혹 두어 경(頃)의 땅을 가진 자가 있다 하

더라도 항상 성(城)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고용(雇用)하여 농사짓고 오로지 장사

만 일삼는데, 만약 적전(籍田)에 속하게 하면 신은 〈백성들이〉 그 역(役)을

감당하지 못하여 장차 떠나가는 데에 이를 듯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9년(1478년)-


그리고 당시 조선시대 개성의 도시 전경도 그렇지만

성내의 사람들의 대다수가 상업에 종사할 정도로 개성시 자체가 당시 조선시대의

시선에서도 사대부고 백성이고 주직업이 상공업 종사자에  상업 대도시로

번성했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록입니다.(이들이 유럽으로 치면 이른바 부르조아들인

것이죠.) 이들은 거의 농사도 짓지 않고 이런 농사나 혹은 군역까지도 상업 활동을

통해 쌓은 부를 가지고 대체하는 식으로 상업에만 매진한 사람들이고 종사자들입니다.

우리가 보통 후기 개성의 송상이니 전국적 상업망에 주목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조선 전기의 개성의 상업도시의 면모에 대한 여러 연구 논문들이 나오면서 인식이 더

욱 소급, 확장되는 상황이군요. 이부분은 따로 시간되면 구체적으로 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시대 인구추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387&cid=46634&categoryId=46634
굿잡스 15-02-25 21:13
   
공경들의 저택이 10여리에 뻗쳐있는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누각은 봉황이 춤추는 듯 이무기가 기어오르는듯.

서늘한 마루와 따스한 방이 즐비하게 갖춰져 있고, 금벽이 휘황하며 단청이 늘어섰네.

비단으로 기둥싸고 채전으로 땅을 깔고, 온갖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화초들,

봄의 꽃과 여름 열매, 푸른 숲에 붉은 송이, 그윽한 향내 서늘한 그늘이 한껏 곱고 아름다움을 뽑내어오네.

-최자 [삼도부] 중에서-


그렇다고 이런 고려시대의 사회상이 조선시대보다 선진적이고 마냥 우월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괜히 귀족시대가 아니니.


축구장 규모의 고려시대 '저택' 유적지 발굴

대전 유성구 상대동서 2곳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려시대 중기 무렵 장원이나 대저택으로 생각되는 초대형 유적이 대전 유성에서 발견됐다. 그것도 두 곳이나 동시 확인됐다. 하나는 축구장보다도 크고, 다른 한 곳은 이보다 약간 작은 규모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백강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오선)은 한국토지공사가 대전 서남부지구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유성구 상대동 65-9번지 일원 20만7천㎡를 발굴조사한 결과 동서는 96m, 남북이 110-120m에 이르는 외곽에 담을 두르고, 그 안에는 각종 건물이 들어선 대규모 시설을 확인했다고 8일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2399348


이 대전 유성 일대가 고려시대 공주 유성현(公州  儒城縣)지역으로 추정되는데

도로, 연못등이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온전한 고려시대 마을유적으로 발굴된 지역이기도

한데 나름 비중이 작은 지역은 아니지만 일개 지방현에서 저정도의 장원이나 대저택

의 규모가 동시에 두개나 발굴되었다는 건 당시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나 도시의 위세

를 짐작케하죠. 또한

고려말 여러 전란이나 어수선함도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조선으로 넘어 오면서

저런 고려 수도 개경의 으리 으리한 도시 풍광은 조선초에도 그리 낯선 도시전경이

아니게 이어져 왔을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조선 이성계가 고려 도시를 엎고

완전 새롭게 리셋한 게 전혀 아니니) 그기에 이미 조선의 정치적 수도인

한양도 고려시대 4경중 남경으로 중시되면서 고려의 대도시의 면모를 이미

어느 정도 갖춘 상태에서 경복궁은 거의 1여년의 빠른 공사기간에 만들어진

5대 고궁중 최초로 천도를 한 거죠. 그러니 당시 조선 초의 도시전경이 중후기의

전란과 소빙기에 온돌 장려등으로 단층 구조 선호의 모습만으로 봐서는 곤란하겠

죠.(이런 고려시대 토착 개경이나 평양 귀족들은 이후 정치입문이 제한받으면서

고급 인력이 상계로 들어가면서 거상들이 나오고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상업과 유흥, 예술의 도시로 조선시대에도 유명세를 이어 받게 됩니다.)
굿잡스 15-02-25 21:25
   
참 울나라가 진짜 어이없는게

열도에 그것도 우리가 직접 심은 고분시대 미츠테라 유적 정도에서도 저런 뻘 환타지가 나오는 반면에

정작 국내에는 널린게 유적인지 서양업체 레고나 쳐짓으면서 별대수롭지 않게 생각, 파괴해

버리니 저런 조잡한 뻘그림이나 나오는.


무엇보다 울나라는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인구추정에서도 상당히 보수적 축소해서 보는 경향이 강한. 잽은 도리어 미화하기 위해

부풀리는 경우가 커죠. 그러니 저런 희한한 그림이 나오는.
비만 15-02-26 09:10
   
미국이 너무 작은 듯 하네요.
     
굿잡스 15-02-26 13:10
   
인디언들 살던 시기니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