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저우언라이는 9.18 수복 이후
유엔군과
한국군이 계속 북진하자
미국에 여러 번 경고했다. "이 전쟁은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홀로 북진하는 것은 무방하나(즉 중국이 개입하지 않겠다),
미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겠고, 이후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여러 번 경고했다. 결국 당시 중국의 참전 의사를 경시한 UN군이 그대로 북진하자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이란 미명하에 참전을 개시하게 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출병에 앞서 저우언라이는 마오와는 달리 한반도 출병에 반대했다고 한다. 저우언라이는 국가를 재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출병하면 많은 자원이 그 쪽으로 전용되어 재건이 늦어지고,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망하더라도 외교를 통해 미국의
중국 진공은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요지. 그러나 마오쩌둥과
펑더화이의 강경론이 득세했고, 결국 중공군 참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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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군만 북진했다면 중국은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마오쩌둥도 주은래 무시하며 출병하기 어려웠을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