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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4 13:17
국기에 대한 경례 안하다가
 글쓴이 : 세엠요
조회 : 2,230  

국제시장에 부부 싸움하다가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 장면 나온 거 있죠? 

혹시 여기 가생이에도 .... 
국기에 대한 경례 안하다가 학교 선생님에게 두들겨 맞은 적 있는 사람 있나요? 
나는 뛰어가다가 조금 늦게 했다고 학교 선생님에게 맞았음. 

당시 박정희 말기에 시골에 살았는데 .... 
학교에 갈 때 마을마다 깃발을 들고 줄 맞춰서 등교를 했습니다. 
(물론 줄 틀리면 학교 가서 두들겨 맞거나 기합 받았음)
초등학교 3학년 때 박정희가 총맞아 죽었는데 ... 그후로 깃발들고 등교하는게 없어졌죠. 

혹시 같은 경험하신 분 있나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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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랑가몰라 15-02-24 13:21
   
전 전두환때인데 대부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신경안쓰고 자기할거 하는사람 꽤 있었어요...

그냥 남 시선이 두려워서 할뿐 때리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네요..
를수현 15-02-24 13:22
   
박정희 죽은후 20년이 지났어도 경례안해서 뚜두려 맞은 애들 많았어요
     
응큼한여인 15-02-24 15:33
   
ㅋㅋㅋ
푸키 15-02-24 13:24
   
옛날엔 모르겠고,
저는 올해 남고 졸업했는데 그런건 없었네요

월요일아침마다 하긴했는데 담임쌤은 오지도 않고,
애들은 휴대폰하고, tv 혼자만 애국가 제창. ㅋㅋ
한번은

회장:  야 우리 애국 조희해야하지 않냐?  TV튼다?

반애들: 아 귀찮게, 틀지마
세엠요 15-02-24 13:25
   
혹시 학교 갈 때 삼국지처럼 깃발 들고 등교해 보신 분 ....
간다고 15-02-24 13:26
   
군부 독제라는 영향도 있을 수가 있지만.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독립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람들이 국가 애국가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쇄뇌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60~70년대 사람들 대부분이 일제치하 육이오를 겪은 세대가 실제 주축이 되는 사회라 실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개념없고 잘못됐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세엠요 15-02-24 13:29
   
동감입니다. 저도 당시엔 그게 최소한의 애국 표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시 그런 세상으로 돌아가기는 싫죠.
     
Voraussicht 15-02-24 16:54
   
동감입니다. 그당시엔 그것이 당연한거였겠죠.
서클포스 15-02-24 13:27
   
그냥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암 생각없이 다 하는 거 아님??
여우사냥 15-02-24 13:33
   
다시 국기하강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국심 고취하는게 뭐가 문제야?
세엠요 15-02-24 13:39
   
같은 시기에 도시에서 학교를 다닌 애들에게 물어보니 ...
깃발 들고 등교하는 것은 도시에서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얘길 했더니 ... 다른 사람들이 잘 믿지를 않네요.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찾는 겁니다.
아마도 1972년~1979년 사이에 초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닌 사람만 해당하는 사실일 겁니다.
     
웨이크 15-02-24 13:50
   
당시 부락(마을)마다 깃발들고 줄을 서서 등교했죠.
남자들은 앞쪽 여자들이 뒷쪽..
토요일에는 운동장에 모두 모여 각 마을마다 줄줄이 순서대로 하교했죠.
물론 깃발들고..
마을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흩어졌지만....
남자들은 보자기 가방을 엑스자로, 여자들은 허리춤에 메고 다녔죠..
가방도 없던 시대였습니다.
          
세엠요 15-02-24 13:53
   
^^;
1979년 전 얘기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거짓말쟁이 된 것 같았는데 ... 최초로 증언을 해주신 분이
웨이크 님입니다.
               
웨이크 15-02-24 13:59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안믿습니다.
제 5년 선배도 제가 시골에서 고무신 신고 다녔다고 하자 안믿더군요.
자기는 저보다 5살이나 더 많은데 그런 적이 없었다면서..
선배는 부산에서 학교 다녔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당시에는 시골과 도시의 차이는 컸죠..
도시에서 신문이 발행되면 하루 이틀 지나서야 시골에 도착했으니까요..

시골은 보자기 가방, 도시는 어깨걸이 가방
시골은 검정 고무신, 도시는 운동화
시골은 양은 도시락, 도시는 보온 도시락

서울로 전학을 와서야 문명(?)의 혜택을 가졌습니다.
시루 15-02-24 13:48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인데... 그때는 다들 5시에 애국가 울리면 길가다가도 최면 걸린 사람들 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서있었죠... 그리고 밤에 등화관젠가 한다고 아저씨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불끄라고 했던 기억도 나네요...그럼 창문에 모포같은거 걸치고 몰래 텔레비전 보고 했었는데...ㅎ
     
세엠요 15-02-24 13:51
   
그렇군요. 등화관제도 ... 얼마 동안 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집엔 전기불이 안들어 와 호롱불을 켰었죠.
1975년~1979년까지만 기억이 나는군요.
전시에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ㅎㅎㅎ ...
진짜사나이 15-02-24 14:01
   
전군대에서 국기하강식하다 가랭이 찢어질뻔  오후5시 위병소에서 국기함들고  계양대까지 각잡고 가죠  그게 무지 힘들었다능
국딩때  하곤  안해봤는데 군대가서 제대로했죠  그것도매일
중용이형 15-02-24 14:05
   
전 노태우 시기 입학해서 그런건 없었어요.
태권도장같은데선 입장시 국기에 경례하긴 했는데 불시에 경례하는건 기억에 없어요.
oldboy 15-02-24 14:18
   
맞아요.
학교하고 가까운 마을 입구에 초딩이들이 모여서 열맞춰 등교를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마을마다 깃발도 있었고요.
아마도 각 마을마다 애향단장?이란 명칭의 리더가 있었죠.
매주말에는 종례를 전교생이 연병장에서 하고 마을별로 열지어 귀가...
휴일이면 매주 동네 공터에 모여 마을 환경정비등의 봉사를 했었고요.
당근... 애향단장은 마을 초딩들이 봉사에 참여하는지의 출석상황을 기록하고 봉사상황등도 기록했어요.
ㅣㅏㅏ 15-02-24 14:19
   
박정희 죽은게 79년도니 그때 국3이면 꽤 연세가 있으시네연...
통금하고 등화관제 기억이 납니다.
낭만아찌 15-02-24 14:19
   
저도 저런 경험이 없는데;;;; 세엠요님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가????;;
깃발들고 등교라뇨??;;;; 전 서울이라서 그런지 전혀 이해 안가네요;;
하절기에는 6시에 국기하강 동절기에는 5시...
길가다 애국가 나오면 부동자세로 서있었죠...
그때는 다들 그러니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지요 ㅋㅋㅋㅋ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참.. 박통이 저 6학년때 죽었네요...그때는 뭔일인가 했었지만 ㅋㅋㅋㅋ
     
세엠요 15-02-24 14:21
   
제가 계산을 거꾸로 했네요.
제가 초딩 3학년 때 박정희가 죽었으니까 ... 저 보다 3살 많으 신겁니다.

저랑 3살 차이나는 와이프도 그 이야기하면
저를 조선시대에 온 사람으로 압니다.
아케마 15-02-24 19:44
   
수도권 도시에 살았는데 깃발들고 통반별로 모여서 등교 한적있습니다 잠깐하다 없어졌지만..
학교앞 도로에서 교통사고 나서인건지 유괴사건 때문인지 암튼 모여서 깃발 뒤따라 간적있어요.
경례때문에 맞은건 본적없고 국민교육헌장 국기에대한 맹세 이런건 암기 시험보긴했죠

파란색 모자도 쓰고 다녔는데 그것도 중간에 없어진듯하고 오전오후반도 하다 사라지고
교복도 중학교 가는순간 없어지고 고교졸업하니 생기고 ..암튼 이거저거 많이 바뀌던 세대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