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국채 발행액을 앞질렀다고 합니다. 일본 재무성이 한 달간 10조 7천억 엔
규모의 국채를 발행했는데, 일본은행의 국채매입액은 11조 엔을 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일본은행이
모두 사고 또 다른 기관이 시장에 내놓은 매물도 일본은행이 사들였다는 얘깁니다. 결국. 경제학에서 말하는 '재정 화폐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는 걸 뜻합니다.
'재정 화폐화'란 정부 부채가 너무 많아 국가 신용이 떨어지면 국채 투자자들이
줄어들고, 결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민간이나 해외 투자자가 제대로 인수하지 않아, 결국 그 나라 중앙은행이 통화를 발행해 국채를
사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돈이 시장에 마구 풀리는 효과를 냅니다. 시장에 마구 푼 돈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 통제 불가능해지면 물가가 한없이 치솟는 악성 인플레가 나타납니다. '아베겟돈'이 단정한 파국 상황도 바로 성장없는
인플레이션인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금융가에서 일했던 한 일본 참의원은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은행의 약발이 다하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2백엔, 그 이상까지 주저앉을 수도 있다"라며 일본의 '악성 인플레와 디폴트(부도)' 가능성까지 제기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부르짖으며 양적 완화에 나서자, 아마 미국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겁니다.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는 시점에
일본이 돈을 푼다고 하니, 미국으로선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게 되는 거겠죠. 일본이 돈을 풀자, 경쟁상대인 한국과 중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차례로 금리 인하에 나섰습니다. 독일도 가세했습니다. 유럽의 드라기 총재가 "자산 버블도 감수하겠다"라며
양적 완화에 들어갈 자세를 명확히 한 건 독일의 용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퇴로'입니다. 양적 완화가
성공한 뒤에는 시장에 푼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 데, 이때는 일본이 가장 취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베노믹스를 외치며 시장에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는 점과 일본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재정악화와 소비감소가 구조적으로 고착화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이 돈을 거두는 순간 일본 경제는 다시 디플레에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플레 목표치가 달성됐다고,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을 그만두면 일본은 국가부도에 이를 것이란 경고는 이런 상황을 얘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