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5-03-29 14:41
청나라가 전성기때 그렇게 강했나요?
 글쓴이 : 덕국중전차
조회 : 2,827  

솔직히 상상도 안갑니다만... 프랑스의 몇십만 대군인지는 모르겠는데 천하의 그 나폴레옹도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지마라,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진짜인가요? [어쩌다가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릅니다.]


뭐 나폴레옹 시기때면 확실히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이 시기이긴 한데[청나라 마지막 최전성기]... 그래도 청나라가 19세기 말에 아편 전쟁부터 시작하여 유럽에게 탈탈 털린것 말고는 생각나는게 없는지라[일본에게도 털렸군요]... 솔직히 얼마나 강한지 감이 안잡히네요.


혹시 자세한 정보 아시는 분들 있나요?

제가 못찾아서 그런거일수도 있지만 청나라가 쳐들어온 병자호란이나 정묘호란조차 자세한 장보가 없으니...


p.s: 진짜 의문인게 있는데요, 병자호란은 도대체 왜 그렇게 조선이 깨진건가요? 왜군에게 입은 피해가 크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 전쟁으로 강병들이 많이 생겼을 것 같고, 전쟁 중 만들어 놓은 물자도 제법 됬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남한산성에서 40일간 우주 방어하다가 결국 항복했잖아요. 이유가 궁금하네요... 조선은 산악지대라 청나라 기병들이 별로 힘도 못 쓸 지역 같은데... 몽고처럼 말임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이어진.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ultrakoo 15-03-29 14:47
   
청나라 전성기 강했던것 맞습니다.

병자호란 전에 조선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의 여파로 역대 최악의 국난을 겪은후로 회복을 하기도 전이였고

특히나 정치상황역시 엉망진창이였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북방을 수비하는 군이 난을 일으켜서 하이패스 고속도로를 만들어주고
청나라가 처음부터 적대시 했던것이 아니라 조선과 외교를 아쉬워했는데...
외교 자체도 무례할정도로 못했던 조선이였습니다.
노홍철2 15-03-29 14:49
   
나폴레옹 얘기는 잘못된 얘기 아닌가요?
나폴레옹의 최대영역권이 청에 인접했던 것도 아니고 기껏해봐야 러시아 영국 제외한 유럽인데 한참 떨어진 나라 상대로 그런 얘기를 굳이 했을리가..
     
덕국중전차 15-03-29 14:50
   
엄청 유명한 말이에요. 그런데 저도 왜 이 말이 나온지 몰라요. 넵.
     
덕국중전차 15-03-29 14:52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그 사자가 일단 깨어나기만 하면 세계가 진동하리라"

1816년 나폴레옹이 한 말이라고 하네요.
          
노홍철2 15-03-29 15:13
   
몽골(원나라)한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잇는 유럽이라 여진족(청나라)도 그정도까지 성장할까봐 쫄았었나보네요..
늑대의이빨 15-03-29 14:51
   
공자왈 맹자왈하던  실리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던  사림들이  임진왜란으로 불에한번 데였다고  정신차렸을 꺼라곤전혀 생각이 들지 않네요..  거의 종특으로 자리 잡힌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인데..  청나라를 거쳐  일제시대를 거쳐서도  나 양반입네하고  거들먹 거리던 인간들이  부지기수 였던 나라입니다  그대 당시는 더했겠죠  그 종특은현제 까지도 이어 지고 있는데.. 지금  6.25 겪은지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사회 분위기 보세요  부패이기주의vs
실속없는  유토피아 논쟁  예전 붕당정치때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가가맨 15-03-29 14:54
   
청나라가 ㅈㄴ 센거 맞지만

계집애가 나라말아먹고 부정부패....한족특유의 군사적역량때문에 훅간나라임..
돼지콜레라 15-03-29 15:03
   
16세기 조선의 인구가 1천만명 정도인데 임진왜란으로 죽은 병사가 공식적으로 7~8만명
전쟁시 사망자는 군인 보다는 민간인이 몇배 많고 전쟁후 기아나 질병으로 죽은 자 까지 감안하면 100백만명이 임진왜란으로 희생당했다는 설이 있죠.
두번의 왜란으로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기간시설이 파괴되고 군인들 태반이 죽고 회복의 중심이 되어야 할 젊은이들이 전인구의 10%나 죽어나갔으니 국력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죠.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다면 병자호란은 애초에 없었겠지만 조선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점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봅니다.
떠오르는 강국이고 명나라를 정복하고 기세가 한껏 오른 청나라가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던 조선을 이기는건 쉬웠을겁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경신대기근 이게 16~17세기 100년간 조선에 닥친 큰 사건들인데 이 후유증이 조선역사 전체를 어렵게 했죠.
토마토짱 15-03-29 15:13
   
1600년대에 인구가 왜란의 폐허를 단기간에 복구할만한 숫자는 절대 아니었고 호란은 청나라의 태평성대에 일어난게 아니라 여진족이 중국통일하기 전인 후금시대에 일어났고 기마병이 아니라 낫자루만 들고 내려왔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겁니다. 조선에 실질적으로 군대다운게 없었으니까.. 아편전쟁도 만약 태평성대에 일어났다면 결과는 모를겁니다. 산업혁명전의 유럽이 정치,경제,문화,군사등 동아시아보다 선진적일게 별로 없어보이고 오히려 아편이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팔기군은 세계역사상 가장 강한 기병이고
만주쪽 지형이 한반도보다 험하므로 조선땅에서의 기병전도 수월했을겁니다.
     
바랑기안 15-03-29 19:12
   
아편전쟁 이전에 이미 산업혁명이 진행되어 이미 구미대륙은 제국주의 열강반열에 오른 상황이였습니다 -_-;;
산업혁명이 무슨 하루아침에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중국이 제자백가 이후로 학문과 사상발전이 지진하고 경제력 역시 송나라때 최전성기를 맞은이후 정체될 동안 유럽은 합리주의의 토대가 된 1215년에 대헌장이 나왔고 명예혁명(1668)으로 권력이 왕에서 의회로 이동되었고 권리장전은 근대적인 인권선언으로 근대 헌법의 기초가 됩니다. 이건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 인권선언의 기반이 되죠, 같은기간 조선이 예송논쟁(1659)같이 정말 아무런 하등 국가나 국민에게 쓸모없는 논쟁으로 국력을 소모하는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17세기엔 해외식민지 개척에 뛰어들어 삼각무역을 시작했고 이는 조선술 항해술 천문기술 금속가공 설계등의 연계발전을 이뤄냈고 이는 뉴턴,갈릴레이,데카르트,케플러같은 과학적 수학적 산업혁명의 결정적 토대가 되는 과학혁명이 일어나게되는 원인이 됩니다. 1776년엔 산업혁명의 바이블이라 할수있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등장하고 칼 맑스는 "100여년간 일어난 일대 문명과 생산력은 이전 모든 역사가 창조한 전체생산량보다 많은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시기의 대량생산의 요구는 결국 무엇을 초래하게 되냐면 수차 방직기 (사실 이것만으로도 가내수공업에서 굉장한 발전;;)->수차방직기가 강의 하류에만 공장을 세울수 밖에 없는 한계점 때문에 등장한 "증기기관" 또한 이런 지식을 보호해줄 지적재산권, 증기기관을 응용한 대량생산기계와 노동자의 분업화, 이 모든게 단계별로 등장.발전했기에 마지막 단계인 산업혁명이 완성된겁니다. 가만히 아시아보다 열등하기만하고 농사만 짓다가 산업혁명이 터진게 전혀 아니에요
바랑기안 15-03-29 18:30
   
군사적으론 청나라는 엄청났죠. 제정러시아도 발라버린게 청제국이였으니까요. 근데 경제적 전성기는 송나라였습니다. 군사적으로 문약했던 송나라는 당시 전세계 인구의 30%,  GDP의 50%를 혼자 생산 할 정도로 경제부국이였죠. 청나라의 경제력은 그정도 수준까지 압도하진 않았습니다.
러다이트 15-03-29 18:35
   
만주하면 평야를 생각하겠지만 건주여진이 위치한데는 산악지형이 많은곳이라 기병들이 산을 잘탔죠.

그리고 병자호란 전에 이괄의 난이 터지면서 북방방어 시스템이 초토화 되어 복구가 안되었다고 하더군요.

만주팔기면 사실상 기병의 완전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