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4-10-04 14:22
불멸의 이순신의 동명이인 입부 이순신
 글쓴이 : 용팔이
조회 : 1,084  

9대손이 이승만이군요

허허...

그런 호국의 위인의 9대손이 국민 버리고 야반도주한 x라니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ddd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하린 14-10-04 14:27
   
입부 이순신....

젊었을 적 그 양반도... 대쪽같고 꺾일 줄 모르는 성품과, 왕실 종친이라는 신분이 겹쳐져...
상당히 어깨에 힘주고 다니길 좋아했던 양반이었다고 하네요...

다만 그것이, 원래 성품이 청렴강직한 쪽이라서...
부정부패라든지 나쁜쪽으로는 흐르지는 않았는데...
생색내기 좋아하고 공치사 좋아하는 측면은 좀 있어서...
초반엔 충무공 장군과 많이 좀 부딛혔다 하더라구요...

나중에 전란을 거치면서는 많이 유화되고 융화되어 고쳐지긴 했지만요...
     
용팔이 14-10-04 14:28
   
그렇군요
근데 몇번 뇌물수수혐의로 탄핵되었다는말도 있어요 ㅋ
          
하린 14-10-04 14:31
   
뇌물 수수가 아니라... 명나라에 바치는 조공 뇌물을
자기는 못바치겠다고 베짱 부리다가 괴씸죄로 두번 탄핵된 적은 있어요...
               
용팔이 14-10-04 14:33
   
그런가요~
근데 엔하에 찾아보니
지금의 회계직?을 맡다가 비리에 연루되어서 탄핵 되었다고 하던데요
명나라 조공 관련 일로 탄핵되었다는 소리는 첨 듣네요

위키 엔하에는 몇번 탄핵되었다고 적혀 있으니 명나라 조공건만의 일이 아닌듯요
                    
하린 14-10-04 14:43
   
1580년(선조 13)에 북방 오랑캐를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죄를 물어
탄핵을 받고 선전관에서 파직되었으나 그 해 겨울 다시 복관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82년(선조 15)에 비국랑(備局郞)을 겸임하고 이듬해 4월에 강진현감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강진의 지역 토호 호족(豪族)과 부자들에게는 강경책을 펼쳐,
그들과 마찰을 빚어 모함을 받아 1585년(선조 18)에 파직당하였다.

1588년(선조 21)에 부친상을 탈상하고 의주판관(義州判官)으로 발탁되어 명나라 사신 수행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때 사절단의 행차시 뇌물을 요구하는 것을
노자돈만 주고 모르는 체하자
명나라 사절단이 귀국길에 문책하려 함에
군무를 잠시 떠났다가 탄핵당하여 파직됐다.

1589년(선조 22)에 함경도 혜산진첨사(惠山鎭僉使)에 임명되어 여진족의 침략을 막으러 나갔으나 부임 도중 발병하여 적군이 관하(管下)의 운총벽(雲寵壁)을 네 차례나 침입함을 막지 못하여 함경도 조방장 한극성(韓克誠)의 문책을 받았으나 선조가 특별히 그가 병중임을 감안하여 은전을 베풀어 감율(減律)을 명했다.
그러나 전 상사인 한극성과의 계속된 불화로
부하관과 함께 삼수(三水)로 가게 되자 선조는 그를 파직하여 귀양보냈다.

====================

명나라 조공 뇌물 건 일도 있었고...
아무튼... 본인이 너무 곧이곧대로인 성품이다보니...
상관이나 주위 유력자들과 자주 대립해서 파직당하는 스타일이었죠...

비리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는 것도...
주위 사람들 다들 뇌물 주고 받고 있는데, 자기혼자 고고한 척 딱 버티고 있으니
괴씸죄로 모함받아 털린거죠...

실제..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기록을 보더라도...
[ 입부는 성격이 지나치게 강직하고 타협을 모르기에, 오히려 그것이 그의 발목을 잡게될까 걱정이 된다. ]
는 표현이 등장하곤 합니다.

강직함의 표본인 충무공께서 그정도로 표현할 정도니...
말 다 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