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뒷북이지만... 한달 전 보배의 유머자료실에 올라온 "대만이 한국에게 빡친이유"
라는 제목의 글을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조회수가 8만에 추천수도 200개 가까이 될 정도로 꽤 많은 호응을 받은 글이더군요.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은 대만과의 단교당시 일방적 통보로 대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고 엄청난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다. 그야말로 철썩같이 믿었던 친구에게 뒷통수를 맞은 격이다.
대만은 국공내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6.25 전쟁에 병력을 파병해 도와준 한국의 혈맹
으로 장개석은 한국을 지원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그런 대만을 한국이 먼저 배신했다. 어찌보면 대만의 혐한감정은 당연한 것이다.
*
뭐... 이런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읽어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달이나 지났지만 지금
이라도 반론글을 좀 써볼까 합니다.
일단, 사실과 다른 부분부터 먼저 지적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고 계시는데 대만
은 6.25 참전국가가 아닙니다. 당연히 파병한 사실이 없습니다.
UN과 미국은 당시 대만의 참전을 원했지만, 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만 내부의 복잡한 문제때문에 참전을 못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전쟁을 틈타서 대만
이 중국 본토를 수복하려는 엉뚱한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미군과 치고 받을때 대륙으로 상륙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것이죠.
결국 휴전으로 대만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지만, 당시 대만 입장은 한반도가 어떻게 되든
말든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치고받아 중국이 약해지길 바랬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전쟁 막판에 가서야 체면치례로 약간의 물자를 지원해준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대만이
6.25 전쟁때 파병을 해준 고마운 혈맹으로 둔갑을 해버렸군요.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 한국과 대만의 단교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죽의 장막을 치고 세계와 단절되어 있던 중국은 70년대에 미국과의 핑퐁외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합니다. 중국은 거대하고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또한, 미국
과 소련으로 대변되는 냉전 이데올로기 시대에 중국의 등장은 굉장히 큰 변수였습니다.
미국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양보해서라도 중국을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이
대만이었죠. 미국이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하자, 대만과 가장 사이가 가까웠던 일본도
그야말로 단호하게 바로 대만과 단교를 하게 됩니다.
일본을 형님처럼 따르던 대만입장에서는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당시 일본은 사양산업
이었던 몇가지 전자산업을 기술이전과 함께 하청으로 대만에 넘겨줍니다. 조삼모사라고...
대만은 비록 단교당했지만, 일본의 통 큰 선물에 감사하며 굽신거리게 되죠.
그리고 이맘때, 외교사에 길이남을... 대만입장에서는 엄청난 굴욕적 외교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프랑스정부가 대만과 단교를 하면서 대사관에서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던 대만 대사관
직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말 그대로 몽둥이로 내쫓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대만을 정식국가로 인정했다면 결코 해서는 안될 엄청난 외교적 결례였죠. 하지만, 대만은
이미 이 당시부터 국가로서의 자격을 국제사회에서 상실했기에 이런일이 벌어졌습니다.
어찌보면... 국제관계가 이만큼 냉엄하다 볼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대만이 자초한 일
이기도 합니다. 대만은 수차례 국제사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안보리 이사국으로서의 책임
을 등안시하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만 바빴습니다. 그 결과 신용을 잃고 중국의 등장과
함께 UN에서 축출되며 버림받은 것입니다.
어쨋든, 대만은 그렇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부상과 함께 외교적으로 점점 고립되게 됩니다.
90년대 넘어오면서 대만을 정식국가로 인정하고 수교를 맺은 몇안되는 국가중에 그나마 힘좀
쓸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도 중국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나 힘은 되지 못했죠. 결국 대만과 어쩔수 없이 단교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수차례에 걸쳐 부총리급이 대만을 방문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는 등, 외교적으로 대만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성의를 다했습니다.
그래서, 모양새도 대만이 먼저 한국과 단교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대만의 위신을
세워주기도 했습니다.
한달 전 올라왔던 "단교 당시 한국이 대만에 엄청난 결례를 저지르며 뒷통수를 쳤다"는 내용의
글은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
설령, 한국이 단교 당시 어떤 외교적인 결례를 대만에게 했다고 칩시다. 그 외교적인 결례가
가장 먼저 대만을 배신했던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심할까요? 아니면, 몽둥이로 대만 외교관
들을 쫓아낸 프랑스보다 더 심할까요?
단교때문에 한국을 미워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대만은
미국, 일본, 프랑스등은 미워하지 않을까요? 아니... 대만과 단교를 한 전세계 150개국 이상
의 국가들은 왜 미워하지 않나요?
저도 이제 한달 전 누군가가 쓴 글처럼 "대만이 한국에게 빡친 이유"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한국이 88올림픽을 유치했을 당시 가장 배아파 했던 나라는 옆나라 일본이 아니라 바로 대만
이었습니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한참 아래로 여기고 동생국가 쯤으로 생각했던 한국이 점점 부상하면서
올림픽이라는 국제대회까지 개최하게 됐습니다. 대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아니꼬와서 죽을
지경입니다.
대만의 온갖 매스컴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달동네와 난지도등을 여러차례 취재하고,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이렇게 못살고 개고기나 먹는 야만적인 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당시 대만 매스컴들이 실제로 떠들었던 말입니다. 이런 대만의 열띤 한국 까내리기 방송은
수천만 화교 네트워크를 통해서 서양에까지 널리 퍼졌고 프랑스 언론이 한국의 개고기문화
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부터 한국이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는 안좋은 이미지를
혼자서 전부 덤태기 쓰게 됐죠.
이미 단교 이전부터 대만은 한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늘 아래로보고 부하쯤으로
여겼던 한국이 점점 성장해 자신들을 추월하려하자 그때부터 한국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몇년전 대만의 혐한감정을 시사프로에서 취재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대만 언론인이 나와서
인터뷰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몸통은 대만이지만 머리는 중국이다.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대만인이 보기에
오랜기간 자신들의 속국에 불과했던 한국이 주인을 넘어서려고 하는데 어떻게 좋게 볼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대만인들의 마음 깊은곳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인을 바라보는 본심'입니다.
중화사상에 심취해 아직도 건방진 우월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한국인들을 무슨 '아랫것'
바라보듯이 하지만... 현실은 한국이 대만을 모든면에서 압도해 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런 머리속 망상과 현실간의 비참한 괴리가 바로 대만 혐한들이 생겨난 진짜 이유입니다.
"한국의 일방적이고 무례한 단교가 대만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혐한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감내하고,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도 인터넷에서 이런글을 흔히 보게 됩니다. 순진한건지, 아니면 어리석은 건지...
마지막으로, 불과 이틀전에 올라온 주 대만 한국대표부 대표(대사)의 한국일보 인터뷰
내용을 일부 발췌해 보았습니다.
--------------------------------
"한국이 20여년전 단교를 통해 대만을 일방적으로 버렸고, 이것이 지금
대만인들의 혐한을 초래했다는 속설은 완전한 허구입니다"
조백상 주 타이페이 한국대표부 대표(대사)는 대만이 한국을 미워하게
된 계기가 한국의 일방적인 단교탓이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마치 '정설'
처럼 지금까지도 시중에 떠도는 것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한국이 대만과 단교한것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고 대만정부도
이를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점점 중국에
밀려나면서 초조해진 대만정부가 자신들의 어려움을 회피하는 수단
으로 '만만한' 한국을 물고늘어진것 뿐입니다. 한국을 공격함으로써
대만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려 한것이죠. 한국이 신의도 없이 일방적
으로 단교를 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조대사는 "대만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한국을 공격하기 위해 퍼트린
헛소문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대로 믿어 버려서는 곤란하다" 고
지적했다.
http://www.bobaedream.co.kr/view?code=best&No=37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