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거짓으로 꾸며놓은 식민사관중에 하나라던데...고려시대 문서 다뒤져도 그런거는 사실 없고...
오히려 일본쪽에는 그런 일이 있다라는 사료가 많다고 함...
일본의 특징...지들이 하면 당연히 한국도 할 거라고 생각하고 날조를 하는데...
정말 한국인의 성향을 분석안하고 날조하는게 보임...공자가 한국사람이라거나 무에타이가 한국무술이라거나...
한국인의 성향을 안다면 이렇게 날조 안하지...한국인은 중국보다 한국유교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거나...
태권도가 무에타이를 씹어먹는다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거나...이런식으로 과장했어야지...한국인을 모름...
이것도 그런 멍청한 날조임...믿지 마셈...^^;;
shonny// 말한 대로 고려 때 까지 일반 백성들은 풍장을 했는데
그건 부모님이 죽고나서 이야기이지 죽기 전에 집 밖에 버렸다는 기록은 없어요.
충과 효는 유학이 사회의 중심 사상이던 조선시대가 아닌 고려 이전 부터 중시하던 덕목으로
고려 때 부모가 죽어간다고 아직 살아있는 부모를 산에 버리면 불효로 엄벌에 처하던 사회 입니다.
외사가 바깥채란 주장은 김수문이란 사람의 그냥 말장난인거죠.
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무지몽매한 백성이 노부모를 숨도 끊어지기전에 외사에 버린다면서 폐습이라면서 법으로 금지시킨건데..
저게 집밖이 아니라 바깥채에 격리시킨다는 주장이면... 왜 세종이 굳이 국법으로 금지시켰을까여??
그리고 고려는.. 원나라에 항복해서 왕부터 대대로 몽골왕족과 결혼하고 변발하구 몽골어 쓰던 나랍니다..
몽골의 장례방식이 뭔지좀 찾아보길... 바로 산이나 들판에 시체를 놓아서 새나 들짐승이 뜯어먹게하던 풍장이었슴.. 징기스칸이나 쿠빌라이칸도 저런식의 장례를 해서 묘도 없는판인데..
세종 44권, 11년(1429 기유 / 명 선덕(宣德) 4년) 4월 4일(기묘) 3번째기사
구습의 오점을 고치고 인효의 풍속을 이루게 하라고 예조에 교지를 내리다.
[고려 말기에 외방(外方)의 무지(無知)한 백성들이 부모가 죽으면 도리어 간사한 마음으로 즉시 그 집을 무너뜨리고, 또 부모가 거의 죽어갈 때에, 숨이 아직 끓어지기도 전에 외사(外舍)로 내어 두게 되니, 비록 다시 살아날 이치가 있더라도 마침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구절을 보면 부모가 죽어간다고 외사로 내어 두는게 고려 말에 생긴 풍속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장사지내는 날에는 향도(香徒)1343) 들을 많이 모아서 술을 준비하고 풍악을 베풀기를 평일과 다름이 없이 하니, 어찌 유속(遺俗)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아니하였는가.]
이 구절에서 고려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게 장사를 지낸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상가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술 먹고 풍악을 울리고 하던 풍습은 70년대 까지 남도지방에서는 존재하던 모습입니다.
즉 이 구절은 죽어가는 부모를 외사에 두는 것은 고려말에 생긴 악습인데 죽어가는 부모를 산에 버리는 고려장이 아니라 엄연히 장례까지 치르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단 유가 입장에서 부모가 죽었는데 풍악을 울리고 술을 마시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