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4-07-24 02:32
오랜만에 소설을 끄적이고 있습니다.
 글쓴이 : TheCosm..
조회 : 570  

한동안 정신없이 쫓기다, 최근들어 여유가 생기니...
한참 전에 쓰다가 내팽겨친 소설이 다시금 떠오르더군요.

취미 생활로 시작한 건 좋았지만, 워낙 글재주가 없었는지 진행은 더디기만하고...
쓸 땐 만족스럽다가도, 다시금 되돌아보면 고치게 되는 것이 글이더군요.

:3 헣헣... 그래도 모처럼 다시 잡았으니... 여유가 있을 때 열심히 작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잡담 게시판에 잘막하게나마 소설을 올려보아도 될까요? 왠지 눈치가! XD


Dies Irae

 

Asperatus Prelude - Prologue

 

가느다란 백발을 가지런히 넘긴 노인이 침상에 기대듯 걸터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동이 터 오르기에 아직은 이른 새벽. 황혼녘에서 여명으로 넘어갈 무렵의 하늘은 짙은 어둠이 장막처럼 내리워있었다. 그런 어두운 풍경을 한없이 바라보는 노인의 푸른 눈은, 마치 그 장막의 너머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직시하고 있었다.

 

물결처럼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구름의 무리와 그 사이에서 미약하게나마 비치는 달빛 아래로 우뚝 솟은 형세로 펼쳐진 대지와 거대한 도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창을 가득 메운다. 화려하며 웅장하고도 드높은 것들과 오래되어 허름하고 초라한 것들, 과거의 위대했던 누군가를 기리는 것과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이들의 자취.

 

노인은 누구보다도 이 도시의 많은 것들이 보이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선 어떠한 희원(希願)조차 찾을 수 없이 비애감만이 엿보였다. 반지조차 헐렁일 만큼 마른 손으로 창 밖을 향하지만, 열리지 않는 두꺼운 창유리에 가로막힌다.

 

아직은 봄이 오지 않았기에,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유리에 닿은 노인의 손은 곧 온기를 빼앗겨 불그스름해졌다. 노인은 그 시림에 손을 내맡기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곤 붉게 달아오른 손을 매만지며, 몸을 돌려 과거에는 화려했었을 빛바랜 회색의 방으로 향한다.

 

경첩의 소음 없이 조용히 열리는 옷장 안에는 하나같이 값진 실크와 리넨을 사용하여 호화스럽게 치장된 옷들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노인의 손은 그런 옷들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이윽고 한참을 어지러이 움직이던 손이 멈추며 다른 옷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은, 정갈하게 개어있는 한 벌의 의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든다.

 

환복을 위해 입고 있던 궁정 외투를 벗어보려 하지만, 노인이 걸치고 있는 팔루다멘툼paludamentum*은 그 화려함만큼이나 홀로 벗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 와중에 방을 가볍게 울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조용히 문이 열리며, 방 안의 노인처럼 회색의 두발을 가지런히 넘긴 정정(亭亭)하여 보이는 환관이 조용한 묵례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노인의 뒤로 자연스럽게 돌아가 의복을 갈아입는 것을 도우려 하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벼운 체념의 미소를 짓고는 양팔을 좌우로 들어 올린다.

 

환관의 능숙한 손길로 금세 의복을 갈아입은 노인의 모습이 커다란 벽 거울에 비쳤다. 수수하며 흔한 장식조차 없는 의복은 노인의 창백한 안색과 어울러, 초췌한 수도자나 병자를 연상하게끔 했다. 하지만 그의 맑고 푸른 눈동자와 오랜 세월을 대변하듯 깊게 팬 보조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구도 쉽게 평가내릴 수 있을 만큼 초라하여 보이진 않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노인이 만족한 듯 몸을 돌리자, 환관은 언제 가져왔는지 곱게 뻗은 목제 지팡이와 깃이 달린 작은 챙의 모자인 페타서스petasus*를 고개 숙여 받들고 있었다. 거기에 노인은 오른손을 뻗어 지팡이를 붙잡지만, 모자만큼은 가벼운 손짓으로 사양한다. 그리곤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의 하늘만큼은 담아두고 싶다네. 이 모자는 자네에게도 어울릴 테니 잘 간직하게나."라며 속삭이듯 말한다. 이에 환관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지만 모자를 든 손만이 조금씩 흔들렸고, 그런 그의 어깨를 노인은 가볍게 토닥이고는 홀가분해 보이는 듯한 발걸음으로 내실을 나선다.

 

또각. 또각.

 

누군가 돌아다니기에는 너무나 늦으면서도 이르러서인지, 복도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오로지 복도를 내딛는 노인의 지팡이와 발소리만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곤 있지만, 그 울림은 얼마 못 가 적막(寂寞)에 파묻힌다. 위광(威光)을 과시하기 위해, 또는 더 많은 이들이 거닐게끔 만들어진 이 복도는, 한 명의 노인만이 걷기에는 너무나도 넓고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러한 것에 눌려 굽어지지도 굳어지지도 않은, 느리지만 올곧은 걸음으로 나아갔다.

 

복도의 끝에서, 굳건히 닫혀있는 커다란 청동 문에 이르자 노인의 걸음이 멈춘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문은 무수한 손길에 닳고 닳아있었지만, 그 전체를 채우고 있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판화는 약간의 흠에는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웅장하였다. 그러나 어지간한 장정의 키를 넘어서는 그 너비에도, 노인의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뚜렷이 담기지 못하는 듯 몇 걸음을 물러서며, 먼 곳의 전경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태양과 초승달, 별과 구름이 나란히 존재하는 공존하는 낮과 밤의 하늘.

등대와 신전, 대궁전과 의회, 광장과 항구 등의 거대한 건축물과 시설들이 가득 들어선 우뚝 솟은 형상의 대지.

격랑을 상징하는 거친 물결무늬와 그에 가로지르는 갤리들로 수없이 메워진 드넓은 바다.

 

하나의 도시와 세계를 옮겨 담으려 한 판화는 언뜻 내실에서 바라본 밖의 야경과도 닮았으나, 그 장대한 표현이 현실의 야경보다도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노인은 그 모든 것들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으로, 오래 시선을 두지 않으며 그 아래의 흐릿한 글귀만을 오랫동안 주시한다.

 

'인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오롯한 도시이자, 신들과 황제에게 바치는 거룩한 영광의 증표.'

 

한참을 그 글귀만 바라보던 노인은 피로한 낯빛으로 주름진 눈가를 누르며, 이내 그 굳건한 청동 문으로 다가선다. 가벼이 한 손으로 밀어보지만, 문은 조금의 밀리는 기색도 없이 완고하기만 하였다. 이에 노인은 곧장 망설임 없이 어깨로, 곧이어 몸으로도 기대어 밀어붙인다. 위태로워 보일 만큼 안간힘을 쓰는 노인의 몸짓은 판화와 어울러, 도시를 떠받치는 신화 속 인물과 같이 비쳤다.

 

그러한 노력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굳건하던 문이 조금씩 요동치며 밀려나고, 드넓은 판화의 사이가 갈라졌다. 그 열린 틈 사이로 차디찬 냉기가 쏟아지듯 불어와 노인의 두발을 흩날리고 자세를 흐트러트리지만, 그럼에도 문은 소음과 열렸다.

 

지친 기색으로 들어서는 노인의 앞으로, 복도에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거체의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드넓은 회관이 펼쳐졌다. 자못 수백에 이르는 인원마저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 세상 각지에서 가져다 놓은 진귀한 대리석과 뛰어난 조각으로 장식된 화려함은 분명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수한 경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의 인기척도 보이지 않는, 등불과 화로의 불빛조차 없이 어둠 속에 잠겨있는 이 순간에는, 그 모든 웅장함과 화려함이 빛을 잃은 채 버려진 치미테로Cimitero*처럼 비추어질 뿐이었다.

 

두꺼운 청동 문이 천천히 기울어지다 닫히며, 그 소리가 회관 전체를 가득 울려 퍼질 즈음. 달빛을 가리던 먹구름이 걷히기라도 한 듯, 기둥의 사이사이로 투명하면서도 우윳빛과 같은 빛살이 회랑을 비추었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무수한 창은 보석과도 같은 색채의 색 유리들을 짝맞추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로, 비록 그 옅은 빛과 단조로운 형식에 회관 전체를 밝히기에는 부족하였지만. 그러한 어스름만으로도 이곳의 분위기는 지하세계의 치미테로에서 천상의 판테온Pantheon*으로 격상된 듯 달라졌다.

 

그 갈무리된 온화한 분위기에서 노인은 주위를 감상할 새도 없이 또다시 걸음을 옮긴다. 정갈히 할 새도 없이 나아가는 그의 이마에는 한겨울이 무색할 만큼 많은 땀이 흘러내리며 채 식지 않았고, 올곧던 걸음은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흔들렸다. 그럼에도 노인은 이전보다도 더욱 서두르며 가로질러 향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신비로운 빛 사이로, 거체의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대한 벽면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봐도 전부를 담기 어려울 만큼 드높은 천정으로. 언젠가 이곳을 거쳤을 앞선 황조들의 황제와 황후의 모자이크가, 또 그들을 보위하며 따르던 조신(朝臣)들과 장군들의 그림이, 그 모두를 칭송하며 우러러 바라보는 무수한 상민(常民)들을 본뜬 벽화가. 지금은 안식을 취하고 있을, 과거엔 이 드넓은 홀을 주관하고 자리했을 무수한 인물의 시선이 모두 노인을 향하여 내려보았다.

 

그들은 역사. 과거의 인물. 그럼에도, 이 빛 무리에 자리하고 있는 그들 모두는 저마다의 영광과 위업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모자람 없이 휘광(輝光)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강력한 군세로 외적들을 몰아내고, 무수한 민족과 드넓은 세계를 상대로 정복하고 평탄하며, 제도와 체제를 정비하여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아, 사회의 안정을 흔드는 부족함과 위기를 타파하였다. 그 모두는 찬란하고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들이며 오랫동안 이어져야 할 무언가를 상기시키기 위해 이곳에 자리하였지만, 이 모든 것들에 둘러싸인 노인은 그들 하나하나를 마주하는 것조차 괴로워하는 낯빛으로 지나치고 또 지나친다.

 

자신을 얽매여오는 듯이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향한 곳으로, 홀 전체를 아우를 만큼 높게만 느껴지는 옥좌의 그림자가 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드높은 단상 위에 있지도 않은 화려하기만한 옥좌이건만, 그 그림자는 마주하는 노인에게 있어선 드높은 심판대처럼 서슬 퍼렇게 비쳤다. 이를 피해 돌아가려 몸을 돌려도, 주위로는 무수한 이들이 노인을 둘러쌓는다. 더는 피할 곳이 없는 그 자리에서,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는 듯 노인을 내려다보는 그들에게로. 노인의 얼굴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모멸감과 자괴감으로 가득 일그러진 채 그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친다.

 

"나를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뇌성과도 같은 고함. 구름에 가려 기울어지는 빛. 반복되는 반향과 침묵 속에서, 노인은 노여움 섞인 목소리로 성토한다.

 

"그대들은 위대한 업적으로 성인의 반열에서 나를 비난하겠지만. 신들과 그대들은 우리를 심판하려 할 뿐, 그 누구도 우리를 돕지 않았다."

 

지팡이를 휘둘러, 회관 전체를 가리키는 노인. 가리키는 곳마다, 위대한 위업과 영광들이 그늘에 가려 비추어진다.

 

"과거의 영광과 미덕이 무너져, 썩은 과실과 같이 무수한 것들을 불러 모으고. 이 위대했던 도시가 비추는 그 미약한 빛에 온갖 흉보(凶報)가 날아들어 온다."

 

강철과도 같은 영혼의 소유자들은 부러지고 녹슬어 모두가 대지에 묻히고. 무력하고 심약한 이들만이 살아남아 목숨만을 애걸하며 그대들에 기도한다.”

 

성토의 끝과 함께 찾아온 침묵으로, 회관의 빛은 천천히 사그라지며 어둠으로 채워졌다. 그와 함께 회랑을 가득 메우던 무수한 인영은 저마다 그 형체를 잃고 흩어진다. 그러한 그들에게, 노인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다시금 크게 성토한다.

 

"수없는 도시가 불타오르고, 요새는 허물어졌으며, 선민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갖고 굴종한다."

 

다시금 연달아 내려치는 지팡이 소리. 그 끝에서 울려 퍼지는 울림은 거대한 군세의, 신화 속 거인의 거동을 상기시킬 듯이 필사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대들은 들리는가. 저 너머에서, 이곳을 탐하기 위해 다가오는 그들의 발소리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그대들이 사랑했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갈구하는 그들의 함성이!"

 

힘이 다하도록 내려치고 성토하는 그 호소, 하지만 그 앞에서 노인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노인에 답하는 것은 그 누구도 남지 않은 회랑의 고요와 멀리서 되돌아오는 잔향(殘響). 노인을 에워싸던 이들은, 하늘을 묘사한 드높은 천장과 모자이크와 회화로 어느샌가 되돌아가 자신들의 위광을 재고 있을 뿐 그 무엇도 답하지 아니하였다. 그 아래, 아무도 없이 홀로 남겨진 노인은 천상의 그들을 올려다보며 쓸쓸히 독백한다.

 

"무력하고, 부족한 헌신으로……, 무너지는 하늘을 붙잡고 흔들리는 대지에 굳건하려해도…… . 거짓된 황제로서 그 무엇도 바랄 수 없구나……."

 

그 떨려오는 맺음과 함께, 노인은 자신을 추스르며 고고히 빛나는 옥좌를 비켜 간다. 담담하고 초연하게 회랑을 등지는 그 모습에는 조금 전과 같은 격정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저 너머를 향하는 그의 푸르른 눈엔 불안과 근심으로 가득히 비추어졌다. 이윽고 어딘가로 이어진 오동나무문 앞에서, 말없이 문고리만을 바라보던 노인은 아무도 없을 회랑을 미련이 남은 듯 뒤돌아본다.

 

빛이 없어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회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로 되돌아간, 과거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 변함이 없는 그 광경에 노인은 조용히 문고리를 당기고 그 너머로 발걸음을 옮긴다. 쉽게 열리는 오동나무문 너머로 노인은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채 닫히지 못한 문 사이로는 노인의 지팡이 소리만이 다시금 외롭게 울려 퍼졌다.

 

또각. 또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뿌후니 14-07-24 03:37
   
자기만족에 충실한 글이군요.
재흙먹어 14-07-24 11:28
   
너무 어렵게 쓰시려고 하시는듯
예전에 떳던 이우혁씨처럼 쉽게쓰면서 스토리를 치밀하게 엮거나 발상이 참신하면 술술 읽히죠
문장자체가 너무 길어요 소설치고는  읽는 사람이 장황하다고 느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