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이나, 기타 한류 관련 일본 방송 프로를 보면 사회자나 패널들이
곧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쇼와시대를 보는것 같다", "일본의 몇십년 전 모습같다"
사전적 의미로 쇼와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 까지의 히로히토 일왕시대
를 일컫는 말이지만, 중장년층 일본인들에게는 흔히 그들의 향수를 자극
하는 7,80년대를 가리킵니다.
활기차지만 어딘가 좀 개발이 덜 되어있고, 토속적이어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말하자면 현재보다 많이 촌스러운 그런 이미지라고 할까요.
예를들면, 일본 방송에서 부산 여행을 소개하면서 굳이 아직도 남아있는
달동네를 집중 조명하며 "이곳은 일본의 쇼와시대를 연상케 해서 감회가
무척 남다르다" 같은 멘트를 꼭 날리죠.
뭐... 그게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한국이 전체적으로 봤을때 아직 일본에
비해서 도시화가 덜 된 부분이 분명히 있죠. 일본인들 눈에는 과거 자신
들이 답습했던 모습들을 현재의 한국에서 찾아 볼 수도 있을겁니다.
우리도 중국이나 동남아의 생활상을 보며 "마치 한국의 90년대 같다"는
말을 때때로 하니까요. 그런데, 일본 방송이나 혹은 니코동의 댓글에서
쇼와시대 같다, 촌스럽다, 일본의 90년대 같다... 이런 말들을 지나치게
자주 듣다보니 슬슬 고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적어도 패션에 있어서 이제 일본과 한국은 갭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하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예를들자면, 남자들이
눈썹을 가늘게 다듬는 것은 전세계 트랜드와 전혀 동떨어진 일본만의
갈라파고스 패션입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되도록 눈썹을 자연스레
다듬는 한국 연예인들을 보며 촌스럽다고 깔깔거리죠.
모든 기준은 일본입니다. 설령 세계적인 트랜드와 동떨어졌다고 해도
일본에서 현재 유행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게 아시아에서는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오만함이 일본인들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2000년대 초반 드라마 한류가 일본에 상륙했을때, 2010년경
K-POP 붐이 불었을때, 일본인들과 일본 언론은 늘 한결 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한류의 인기비결은 일본의 과거 8,90년대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국 아이돌을 보면 마치 90년대 일본 아이돌의 전성기를 보는듯하다."
절대 한류가 유행을 선도한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과거 향수
를 자극한 것이 한류의 성공 비결 입니다. 한류는 전혀 새롭지도 않고
일본이 한때 밟아왔던 과거의 모습일 뿐입니다.
왜냐면 적어도 아시아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무조건 일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류를 인정하면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습니다.
삼성이 아무리 전세계 스마트폰 업계를 선도해도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혐한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류를 소비하는 친한 일본인들까지 그러한
마인드는 똑같습니다. 근 100여년 동안 아시아에서 누린 일본의 위상
을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의 심리가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꼈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예전과 비할바가
못되고, 한국과 중국은 무섭게 성장해 버렸습니다.
일본이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한국과 중국,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늘
아래로 깔보는 행태를 언제까지 고수할지 의문입니다.
아직까지 일본이 한국보다 몇걸음 앞서 있는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국에 아직 일본의 8,90년대를 연상시키는 미진한 부분이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이 한국을 보며 쇼와시대같다, 몇십년전의 일본
같다, 한국은 늘 촌스럽다, 이런 소리들을 지껄일 시간은 이제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믿습니다.
아침에 일본 어느 케이블에서 방송한 한국 여행 관련 방송을 보다가
뜬금없이 삘받아 쓸데없이 긴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