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허상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에 문제가 있었겠죠.
유교가 억압이란 그릇된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런 식으로도
보이겠죠. 부자유친이니 장유유서니 하는 것의 본 뜻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죠. 장유유서가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자애로
대하라는 것이지, 줄서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란 것이죠.
ㅋㅋㅋ 진짜 어이없는 예시군요.
그것은 유교탓이 아니죠.
저 집안의 예시가 유교의 그릇된 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란 것이죠.
그 집안의 잘못된 점을 유교탓을 하고 있죠.
님은 유교의 잘못된 점을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것은 유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저 집안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그리고 아비의 눈에 차는 자식이 얼마나 될 것이라 봅니까?
훈육의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비의 잘못이지, 유교 탓이 아니죠. 돗자리깔고 머리 풀고 꿇어앉아 있다고 석고대죄가 아닙니다. 석고대죄의 대상은 불효와 불충으로 인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지요.
그냥 끌어다 붙인다고 석고대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벌을 서고 있는 것이죠.
성리학을 받아들이는 초기엔 이것도 소장파 지식인들의 진보적인 사상이었음..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할 사상이었는데..
성리학 신봉자들이 기득권 세력이되면서 변질되어감..
억압받던 자들을 널리 이롭게하라고 예수가 믿고 따르라 했더니..
개독으로 변질되는것과같이..
사상을 신봉하는 자들이 기득권력을 추구하는 순간 부조리해지고 부패되는건 만물의 이치같음..
문제는 도덕적인 잣대가 우리는 유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죠.
유럽이나 미국의 도덕적 잣대는 성경이듯이 말이죠.
학문적으로든 통속적으로든 어쨌든 그런 잣대 역활을 한 것엔 변함이 없죠.
문제는 그런 잣대로서의 역할에 왜곡된 시각이 첨가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죠.
유교나 성경이 잘못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아마 유교란 것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죠.
도덕적 잣대를 유교 대신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한 유교란 것에서 벗어나긴
힘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