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4-05-27 20:03
임진왜란의 실제 전투 양상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2,624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VS 일본군 전적 (65:40)


임진왜란때 승패의 전적이 정리된 사이트가 있어 다시 재 정리했으니 보시기 바랍니다

임진왜란은 오직 명군과 의병의 활약으로 이긴 것으로 기억되고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통계를 보고 그런 생각이 바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임진왜란 기간 중 벌어진 크고 작은 전투는 약 105회로 집계됩니다. 이 중  조선군이 공격전을 벌인 게 68회,

방어전을 벌인게 37회로 조선군이 훨씬 공격적 이었습니다. 조선군의 승리가 65회, 패배가 40회로 조선군의

우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승전 65회의 전투 중 조선 관군의 단독전이 38회로 압도적이었으며 의병의 참전 아래 관군이 주도한 전투가 11회, 그리고 의병 단독전은 10회, 관군의 참전 아래 의병이 주도한 전투는 6회였습니다.이 통계로 보아 관군이 전투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도별로는 개전 첫해인 1592년 9개월동안 70회가 집중적으로 벌어졌는데 이 가운데 조선군의 공격전이 43회, 방어전이 27회, 승리 40회, 패배30회로 평양까지 몰린 개전 초기를 제외하고는 첫 해부터 승세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그 다음해부터는 조선이 일방적인 공격을 가했으며 명군 참전은 105회의 전투 중 8회에 그쳤습니다.>

 

좀더 흐름을 설명하면 1592년 4.14부터 5.2까지 한달까지만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만

이후 1592년9월까지 전세가 역전이 되어 31승 19패의 전적으로 거의 앞서다가

1592년 10월 이후부터 1593년까지는 거의 전승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1593년 1월의 평양성 탈환은 조선의 승전분위기 속에서 일으난 하나의 승전일 뿐입니다

다시말해 명의 평양성탈환으로 전세가 역전된것이 아니라 이미 전세는 역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1594~1597년까지 큰 전투한번없는 소강상태이다가 정유재란 발발한
1597년에는 거의 4:4정도로 승패 우위가 없다가 1598년에는 또 일방적인 조선,명군 연합군의 승리입니다



상처뿐인 승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일본은 초기 1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방적인 수세에

몰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의병의 역할이 그렇게 큰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요 전투는 거의 조선육군이 담당하고

일방적인 승리를 했던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실제와는 다르게 조선군은 무력했다는 선입견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것 같습니다



승리한 부대 승리 회수
조선 육군 22
조선 육군,의병 10
의병 10
명군  1
조선 수군 12
조선육군,수군 1
일본  40

 

 

 

구분/연도별 1592 1953 1957 1958 계
전투횟수 70 17 10 8 105
조선측 승리 40 14 5 6 65
일본측 승리 30 3 5 2 40
관군 단독전 19 8 5 6 38
의병 단독전 9 1 - - 10
관군主 의병助 6 5 - - 11
의병主 관군助 6 - - - 6
朝-明 연합전 -1 -2 -2 -3 -8

 

 

 검은색이 승리한 국가, 붉은색이 패배한 국가입니다

 

회차 년 월일 전장 공격군 주장 구분 방어군 주장 구분 결과 승리
1 1592 4.14 부산진성(경상) 고니시 일본 1군 정발 조선육군 부산진성 함락 일본
2 1592 4.15 동래성(..) 고니시 일본 1군 <st1:personname w_x003a_st="on">송상현</st1:personname> 조선육군 동래성 함락 일본
3 1592 4.18 밀양성(..) 고니시 일본 1군 박진 조선육군 밀양성 함락 일본
4 1592 4.19 김해성(..) 구로다 일본 3군 서례원 조선육군 김해성 함락 일본
5 1592 4.21 경주성)..) 가토 일본2군 박의장 조선육군 경주성 함락 일본
6 1592 4.24 상주성(..) 고니시 일본1군 이일 조선육군 상주성 함락 일본
7 1592 4.26 문경(..) 고니시 일본 1군 <st1:personname w_x003a_st="on">신길원</st1:personname> 조선육군 문경 상실 일본
8 1592 4.28 탄금대(충청) 고니시 일본 1군 신립 조선육군 충주성 함락 일본
9 1592 4.28 추풍령(경상) 구로다 일본 3군 조정.정기룡 조선육군 추풍령 돌파 일본
10 1592 5.2 한강(경기) 가토 일본 2군 <st1:personname w_x003a_st="on">김명원</st1:personname> 조선육군 서울 함락 일본
11 1592 5.7 옥포(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등당고호 일본수군 일 전함 26척 격파 수군
12 1592 5.7 합포(..)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5척... 수군
13 1592 5.8 적진포(..)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11척 수군
14 1592 5.16 해유령(경기) 신각 조선육군 와키자카 일본육군   육군
15 1592 5.18 임진강(..) 가토 일본 2군 <st1:personname w_x003a_st="on">김명원</st1:personname> 조선육군   일본
16 1592 5.29 사천(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일 전함 13척 격파 수군
17 1592 6.2 당포(..)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21척... 수군
18 1592 6.5 당항포(..)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26척... 수군
19 1592 6.5 용인(경기) 이광. 윤선각 조선육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서울수비대 5만군사 1600명 에게 분산 일본
20 1592 6.5 회양성(강원) 모리 일본 4군 김연광 조선육군 회양성 함락 일본
21 1592 6.6 무계(경상) 김면. 정인홍 조선 의병 모리휘원 일본 7군   의병
22 1592 6.7 율포(..)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내도통구 일본수군 일 전함 7척 격파 수군
23 1592 6.1 여주(경기) 원호 조선육군 모리길성 일본 4군   육군
24 1592 6.11 동대원(평안) 고니시 일본 1군 송언신 조선육군   육군
25 1592 6.12 철령 모리길성 일본 4군 이혼 조선육군   일본
26 1592 6.14 왕성탄 고니시 일본 1군 고언백 조선육군 평양성 함락 일본
27 1592 6.15 예천(경상) 모리휘원 일본 7군 우복룡 조선육군   육군
28 1592 6.? 마탄(경기) 원호 조선육군 모리길성 일본 4군 한강수비대 급습 육군
29 1592 6.19 금화(강원) 원호 조선육군 모리길성 일본 4군   일본
30 1592 6.25 운암(전라) 양대박 조선의병 ? ?   일본
31 1592 6.7 초계(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손인갑</st1:personname> 조선의병 모리휘원 일본 7군 일본군 수송대 기습 일본
32 1592 7.8 웅치(전라) 소조천융경 일본 6군 정담 조선육군 웅치 돌파 일본
33 1592 7.8 이치(..) 소조천융경 일본 6군 권율.황진 조선육군 이치 사수 육군
34 1592 7.8 한산도(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일 전함 56척 격파 육군
35 1592 7.9 금산성(전라) 고경명. 곽영 조선 의병.관군 소조천융경 일본 6군 전라도 방어 성공 일본
36 1592 7.1 안골포(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구괴가륭 일본수군 일 전함 20척 격파 수군
37 1592 7.10(?) 우척현(경상) 김면.김성일 조선 의병.관군 소조천융경 일본 6군 매복전으로 일군 격퇴 육군,의병
38 1592 7.17 평양성(평안) 김명원. 조승훈 조. 명 육군 고니시 일본 1군 최초의 연합전 일본
39 1592 7.18 해정창(함경) 가토 일본 2군 한극함 조선육군 조선군 전멸. 일본
40 1592 7.27 영천(경상) 권응수. 박진 조선 의병.관군 복도정칙 일본 5군 영천성 탈환.  육군,의병
41 1592 7.? 의령(..) <st1:personname w_x003a_st="on">곽재우</st1:personname> 조선의병 소조천융경 일본 6군 기강. 진 유격전 의병
42 1592 7.? 현풍(..) <st1:personname w_x003a_st="on">곽재우</st1:personname> 조선의병 우시수승 일본 9군 현풍성 탈환. 의병
43 1592 7,? 영산(..) <st1:personname w_x003a_st="on">곽재우</st1:personname> 조선의병 우시수승 일본 9군 영산성 탈환. 의병
44 1592 7.? 안성(경기) <st1:personname w_x003a_st="on">홍계남</st1:personname> 조선의병 복도정칙 일본 5군 유격전 전개 의병
45 1592 8.1 평양성(평안) 김명원. 이원익 조선의병 고니시 일본 1군 평양성 탈환전 일본
46 1592 8.1 청주성(충청) 조헌. 영구 조선육군 복도정칙 일본 5군 청주성 탈환 육군
47 1592 8.2 경주노곡(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김호</st1:personname> 조선 의병. 관군 복도정칙 일본 5군 언양 주둔 일군 기습 육군,의병
48 1592 8.3 거창(..) 김면. 김시민 조선의병 소조천융경 일본 6군 사랑암에서 조우전 의병
49 1592 8.18 금산성(전라) 조헌. 영규. 양응춘 조선 의병. 관군 소조천융경 일본 6군 조선군 700 전멸.. 일본
50 1592 8.2 경주성(경상) 박진. 정세아 조선 관군. 의병 복도정칙 일본 5군 조선군 전멸 일본
51 1592 8.21 성주성(경상) 김면. 정인홍. 남간 조선 의병. 관군 모리휘원 일본 7군 성주성 탈환 실패 일본
52 1592 8.22 봉화(경상) 한효순. 유종개 조선육군. 의병 모리길성 일본 4군   육군,의병
53 1592 8.25 영원산성(강원) 모리길성 일본 4군 김제갑 조선육군 김제갑 전사. 일본
54 1592 8.28 연안성(황해) 구로다 일본 3군 이정암 조선의병 일군 공격 격퇴 의병
55 1592 9.1 부산포(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모리휘원 외 일본육군.수군 일 전함 100여척 격파 수군
56 1592 9.8 경주성(..) 박진 조선육군 복도정칙 일본 5군 경주성 탈환 육군
57 1592 9.11 성주성(..) 김면. 정인홍. 배설 조선의병. 관군 모리휘원 일본 7군 성주성 탈환 실패 일본
58 1592 9.16 경성(함경) 정문부. 정견룡 조선 육군 가토 일본 2군 경성 탈환 육군
59 1592 9.2 인동(경상) 장사진 조선의병 복도정칙 일본 5군 일군 수비대 기습 의병
60 1592 9.27 창원성(..) 진주성 공격군 일본육군 유숭인 조선육군 노현에서 저지전투 일본
61 1592 10.1 진주성 외(..) 진주성 공격군 일본육군 유숭인 조선육군   일본
62 1592 10.1 진주성(..) 진주성 공격군 일본육군 김시민.곽재우 조선육군. 의병 진주성 방어 성공 육군
63 1592 10.18 상녕(경기) 모리길성 일본 4군 심대 조선육군 심대 전사 일본
64 1592 10.3 길주성(함경) 정문부. 한인제 조선의병. 관군 가토 일본 2군 일군 보급대 섬멸 육군,의병
65 1592 11.1 함흥(..) 성윤문 조선육군 가토 일본 2군 함흥 주둔 일군 기습 육군
66 1592 11.12 이원(..) 이성임 조선육군 가토 일본 2군 이원성부근 기습 육군
67 1592 11.? 상주 용화동(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정기룡</st1:personname> 조선육군 복도정칙 일분 5군 일본 보급대 기습 육군
68 1592 12.? 중화(평안) 고니시 일본 1군 임중량 조선의병 의병 기지 습격 일본
69 1592 12.1 길주 쌍포(함경) 정문부. 정견룡 조선육군. 의병 가토 일본 2군 길주성 주변 토벌 육군,의병
70 1592 12.14 성주성(경상) 김면.최경회. 정인홍 조선의병 복도정칙 일본 5군 성주성 수복 의병
71 1592 12.? 독성산성(경기) 우기다 일본 8군 <st1:personname w_x003a_st="on">권율</st1:personname> 조선육군 일본군 격퇴 육군
72 1592 12.? 함창(경상) 정기룡. 정경세 조선육군. 의병 모리휘원 일본 7군 일본군 습격 육군,의병
73 1593 1593.1.9 평양성(평안) 김명원.이여송 조.명 연합군 고니시 일본 1군 평양성 탈환 조,명
74 1593 1.19 길주 남문밖(함경) 원충노 조선의병 가토 일본 2군 일군 기습 의병
75 1593 1.23 단천(..) 구황.강찬 조선육군. 의병 가토 일본 2군 일군 기습 육군,의병
76 1593 1.27 벽제관(경기) 이여송.고언백 조.명 연합군 우기다 일본 육군 일본군 역습 일본
77 1593 1.28 백탑교(함경) 정문부. 한인제 조선육군.의병 가토 일본 2군 길주성 수복 육군,의병
78 1593 1.3 죽산성(경기) 변이중 조선육군 복도정칙 일본 5군 공격 실패 일본
79 1593 2.12 행주산성(..) 우기다 일본육군 권율. 처영 조선육군 행주대첩 육군
80 1593 2.3 죽산. 음죽(..) 황진 조선육군 복도정칙 일본 5군 죽산.음죽성 탈환 육군
81 1593 3.6 웅천(경상)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협판안치 일본수륙군 일 전함 10척 격파 수군
82 1593 3.27 노원평(경기) 이시언.고언백 조선육군 우기다 일본육군 일 보급대 소탕 육군
83 1593 6.29 진주성(경상) 우기다 일본육군 최경희.서례원 조선육군 조선군 전멸 일본
84 1593 8.6 경주성(..) 가토.모리길성 일본 2.4군 고언백.왕필적 조.명 연합군 일군 공격 격퇴 조,명
85 1593 9.29 함안.웅천(..) 선거이.최강 조선육군.의병 고니시 일본 1군 일군 보급대 소탕 육군,의병
86 1593 10.27 영선(..) 이빈 조선육군 고니시 일본 1군 일군 보급대 소탕 육군
87 1593 12.2 안강(..) 고언백.오유충 조.명 연합군 가토 일본 2군 일군 보급대 소탕 조,명
88 1594 1594.3.4 당항포(..) 이순신.김덕룡 조선수륙군 복도정칙. 5군 일본수륙군 일전함 31척 격파 육군,수군
89 1597 1597.7.16 칠천량(..) 원균 조선수군 와키자카 일본수군 朝 전함 전멸 일본
90 1597 8.15 고령(..) <st1:personname w_x003a_st="on">정기룡</st1:personname> 조선육군 소조천수추 일본육군.재침군 일군 일부 격퇴 육군
91 1597 8.16 황석산성(..) 가토 日육군우군 곽준 조선육군 산성 함락 일본
92 1597 8.16 남원성(전라) 우기다 日육군좌군 이복남.양원 조.명 연합군 남원성 함락 일본
93 1597 9.7 직산(충청) 구로다 日육군右군 해생 명군 일 선봉 격퇴 명군
94 1597 9.14 금구(전라) 원신 조선육군 우기다 일본육군.左군 일군 기습 육군
95 1597 9.16 명량(..) 와키자카, 가릉가명 일본수군 <st1:personname w_x003a_st="on">이순신</st1:personname> 조선수군 朝전함13척,일군 전함 200척 격퇴 수군
96 1597 12.28 광양(..) 이광악.김응서 조선육군 고니시 일본육군 보급대 공격 실패 일본
97 1598 1958.1.4 울산(경상) 권율,양호 조.명 연합군 가토 일본육군 울산성 탈환 실패 일본
98 1598 3.24 삼가성(..) 정기룡.하생 조.명연합군 소조천수추 일본육군 일군 격퇴 조,명
99 1598 4.8 무주성(전라) 이광악.이령 조.명연합군 도진의홍 일본육군 일군 격퇴 조,명
100 1598 4.2 함양(경상) 정기룡.이령 조.명 연합군 도진의홍 일본육군 함양 사근역 일군 격퇴 조,명
101 1598 6.? 순천(전라) 이광악 조선육군 고니시 일본육군 순천부근 日 격퇴 육군
102 1598 9.25 울산(경상) 김응서.마귀 조.명 연합군 가토.구로다 일본육군 연합군 총공격 조,명
103 1598 10.1 사천(..) 정기룡.동일원 조.명 연합군 도진의홍 일본육군 연합군 총공격 조,명
104 1598 10.24 순천(전라) 권율.유정 조.명 연합군 고니시 일본육군 연합군 총공격 조,명
105 1598 11.19 노량(..) 이순신.진린 조.명 연합군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cticguy&logNo=50165479298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굿잡스 14-05-27 20:05
   
임진왜란 시기에 초기 한달 여간 잽의 파죽지세의 형상이 드라마등에 의해 대규모로 각인되다

보니 마치 육진에서 조선군은 완전 캐털린 듯 보이지만 실제 기록은 그렇지 않음.(물론 이순신 제독이

이끄는 수군의 활약이 조선군의 전황 분위기를 바꾼 분기점이긴 하죠)

우선 임진왜란시기 조선의 제승방략체제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해 보이군요.

이건 기존의 각지역 수령들 자체방어의 진관체제에서 일정전략 거점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수령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중앙지휘관이 내려오면 함께 힘을 모아 집중력을 발휘하는 체재로 바꾸었는데

문제는 기존의 해안가 소수양아치 정도의 수적질을 하던 왜구로 안이하게 대처하다보니

대규모 기습전에서는 상당한 취약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임. (물론 조선의

정예병도 남부보다는 여진등 북쪽 방어에 몰려 있었고)

앞선 설명에도 알겠지만 이런 제승방략체제는 일정 거점으로 모여야 하는

시간부터 다시 중앙지휘관과 군대를 기다려 합류해야 하는 점등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리다 보니

경상도등 남부지역에서는 왜구의 대규모 기습전에 매우 빠른 속도로 밀려버리게 된 것이죠.


그러나 윗 실제 기록에서도 보이듯 이런 조선의 제승방략체제가 대규모 기습전에

허점을 보였음에도 어느 정도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병력이 모이게 되자 왜구도 초기 이외에는

별다른 승과를 내지못하고 조선의 실제 정예병과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자 밀리면서 수세적으로 이후 남부에 내려가 왜성을 쌓고 수비방비만 쳐하면서

전황이 거의 소강상태로 지지부진해지게 됨.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그 인근지역의 왜군의 약탈부터

아직 안정화되지 않는 민심과 생활상에 일년만 제대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논밭에 잡초가 자라면서 농사

짓을 토지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는 거죠.(기타 제대로 시신을 장례 치르지 못하면서 생기는

각종 전염병등)
환영행사 14-05-27 20:05
   
결국 임지왜란은 명군의 파병이 있었기때문에 우리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죠.
     
굿잡스 14-05-27 20:07
   
결국 임지왜란은 명군의 파병이 있었기때문에 우리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죠. >??

명군 파병 어쩌고 한거랑 우리가 변명 어쩌고랑 뭔상관 ㅋㅋ 웃긴 ㅋㅋ

본래 고대에는 미개하고 호전적일 수록 대체로 전투력은 높았음 ㅋ

(사무라이 어쩌고 하는 백정 양아치들도 할 줄 아는게 칼질 뿐이니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사는 직업이였고 ㅋ)
          
굿잡스 14-05-27 20:11
   
조선 수군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왜 왜구를 일거에 쓸어버릴 수 없었는가?

여기에는 제승방략체제가 가지는 이런 단점속에서 초기 너무 급격히 밀리다 보니 선조가 몽진을 택하고

이후 너무 빨리 명에게 군사요청을 한게 도리어 임진왜란을 초기에 끝낼 수 있었던 부분을 지지부진하게

한 또다른 요인이 됨.


무슨말인가 하면 조선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호남쪽에는 임진왜란 시기에도 평작의 소출이 가능했고

점차 모인 대규모 군세를 통해 조선의 군사력이 결집되면서 급격히 북진하면서 고립된 왜구를

일거에 물리칠 수 있었음에도 도리어 명군은 왜구에 대한 적극적 종결보다는 전쟁을 조선내로 국한

시기는 소극적 협상으로 고립된 왜군들은 너무도 쉽게 남부로 내려올 수 있었고 무엇보다

명의 대군은 따로 자체 식량을 가져 오지 않다보니 조선에 결집된 군대를 도리어 해산시키고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해야 된 상황이였음. 그렇다고 명나라가 조선을 위해 왜와 적극적으로 전쟁을 치룬것도 아니고

도리어 조선내에 왜 못지 않게 마을 여기 저기에서 악랄한 행패를 보이고

왜에 뇌물까지 쳐먹으면서 번번히 조명 합동군사작전에서 시늉만내다보니 수군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하면

서 전황이 질질 길어지는 양상이 된 것임.
     
구경꾼 14-05-27 20:59
   
'조선은 오래전부터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뒤떨어진 나라였다.'
이게 기본 전제고

'명군이 없었으면 조선은 왜구에 복속당했을 것이다.'
이 말이 하고 싶으셨던 거죠?

스마아아트한 한국어 통역
     
ultrakoo 14-05-27 21:03
   
명군의 파병이 있던것에


우리의 변명드립이 왜 나오나요 ???

이 뭔 희대의 강아지소리지 ;;;;
굿잡스 14-05-27 20:06
   
화살과 화승총 격발 실제 비교 영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military&wr_id=13279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B4%9D&sop=and

윗영상비교를 보면 알겠지만 뭔 잽극우 무식한 것들은 당시 조총위력이 무슨 현대 핵무기급 어쩌고 헛소리

까지 하던데 ㅋ 당시 조총의 장점이라는건 궁사보다 습득기간이 짧고 관통력이 높다뿐 실제 빠른 연사력도

매우 저급한 수준이고 도리어 울나라 편전보다 유효 사거리가 짧고 그기에 뭔 습할때는 제대로 쏴지지도

않는등 도리어 단점이 많았음. 그리고 잽 역시도 이런 조총이 대규모 주력도 아니였고.


이런 조총 정도의 위력은 이미 선조등 조정내에서도 알고 있던 상황으로 딱히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지도

않았던.(물론 적을 안이하게 본건 분명 실책임)

 16세기 임진왜란 시기에는 이미 조선내에서는 왜구가 조총 정도에 국한된 것에 비해

각종 다양한 근대적 개념의 발달한 첨단 화약무기들을 발명 구축해 놓을 만큼 높은 수준의 문

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음.

수군에서는 이미 다들 알 듯 거북선같은 세계최초의 철갑선이 등장해서 종횡하고 근대적 함포해전

양상이 임진왜란을 관통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 수군을 통해 세계최초로 완전히 재현된 상황이였음

(이 당시 서구의 해전양상이라는 건 그냥 철공을 날리는 수준에 백병전이 여전히 주류였던데 비해 이미 우리

는 고려말 진포대첩에서 세계최초의 근대적 화약 무기해전을 통해 대승을 거둔 전력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수군은 강력한 근대적 함포공격력을 자랑)

그외 육군에서도 우리가 잘아는 행주대첩 역시 조선 기술력의 총아를 보여주는 전투양상이였죠.

단순히 민간아낙네들의 자발적 행주치마뿐 아니라 고작 민관 2300여명이 3만의 왜군을 단지 하루 7차례

의 격전속에서 전멸시킨 배경에는 이미 세계최초의 2단 로켓의 원형인 오늘날 다연장포같은 신기전부터

세계최초의 시한 폭탄인 비격진천뢰,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같은 대형대포 및 중완구, 조화란등 다양한

첨단 화약화력 무기를 통해서 이루여 낼 수 있었던 대승임. 이를 통해 이치 전투, 수원 독왕산성 전투, 행주대

첩에 이르기까지 잇따른 승리를 거두면서 조선총사령관에 오른 인물이 육군의 권율장군이죠.


이중 세계최초의 시한폭탄격인 비격진천뢰는 경주성 탈환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무기로 왜구들에게는

일명 귀신 폭탄으로도 불린 위력적 무기였음


비격진천뢰 실물사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078&cid=1608&categoryId=1608
생마늘님 14-05-27 20:09
   
굿잡스님 -  내가 이싸움을 끝내러 왔다 -
스코티쉬 14-05-27 20:12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가시네
풉쉬 14-05-27 20:14
   
임란초기 개털렸던이유는 지방방위체제가 부실했던이유도 컸던것같아요
임란전에 제승방략체제(현재의 동원예비군 성격)때문에 
군인들이 신속하게 집결하지 못했고 일본군에 각개격파당한게 컸죠
뭐 후에는 속오군체제로(진관복구) 바꿔서 전세는 역전됨..
나도답답 14-05-27 20:15
   
어그로는 군사력 약했다고 송나라가 미개하다고 할 기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원사냥 14-05-27 20:21
   
굿잡스님이 그렇다면 그렇다는 겁니다.
LikeThis 14-05-27 20:24
   
이순신 장군이 전라도로 내려간 다음부터 서해로 올라가던 왜구들의 보급선이 끊겨,
그후 왜구들은 연전연패 했음...
나와나 14-05-27 22:54
   
왜군들은 함경도 등 조선의 정예군들이 주둔해있는 북부 지역에 가자마자 순식간에 쓸려나갔죠 ㅋㅋㅋㅋㅋ
정말 왜군들에 쫄아 명나라에 피난가려한 선조가 우습네요 ㅋㅋㅋ
고프다 14-05-28 12:52
   
역갤놈 패~!

굳좝스님 또 1승 추가~!

여태껏 제가 본것만 역갤 똘마니들 0승 100패 굿좝스 100승 0패 쯤 될겁니다.
멀리뛰기 18-06-10 11:42
   
임진왜란의 실제 전투 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