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명월관에 기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음식들은 실제 궁중음식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게 맞음.
열구자탕 (신선로)
열구자탕은 화로 모양의 신선로(神仙爐)에 여러 가지 어육(魚肉)과 채소를 넣어 끓인 음식으로 다채로운 색까을 띠고 있으며, 맛이 좋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열구자탕을 소개한 책자들은 『소문사설(謏聞事說)』,『송남잡지(松南雜識)』,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해동죽지(海東竹枝)』,『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책 외에도 의궤나 등록으로는 1765년(영조 41)의 행사를 기록한 『(乙酉)受爵儀軌』과 『경현당수작시등록(景賢堂受爵時謄錄)』등을 들 수 있으며, 이후 『園幸乙卯整理儀軌』, 『內外進宴謄錄』,『高宗壬寅進宴儀軌』 등 다수의 의궤에도 등장한다.
열구자탕의 이치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이치를 이용하여 화로를 만든 것으로,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넣어 익혀 먹는 것이다. 이를 만든 이가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간 뒤에 세상 사람들이 그 화로를 신선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열구자탕이 등장하는 빠른 의궤의 기록은 1765년(영조 41)에 등장하고 있다. (출처링크)
탕
평채
탕평채(蕩平菜)는 청포묵과 쇠고기, 미나리, 숙주, 달걀 등이 들어가 영양소도 고르게 들어있고 오색의 고명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음식이다. ‘탕평채(蕩平菜)’라는 이름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탕평평(蕩蕩平平)’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조 때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명물기략(名物紀略, 1870년경)」에 보면 “사색인(四色人)의 탕평(蕩平 :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을 바라는 마음에서 갖은 재료를 고루 섞은 묵나물에 탕평채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출처링크)
누름적 (화양적)
- 조선시대 의궤 16책에 수록되어 있는 궁중음식 중 화양적(花陽炙)에 대하여 문헌 고찰하였다. 황적과 잡적이 어우러진 화양적이 35.2%로 가장 높았으며, 황적화양적 16.7%, 생복화양적(生鰒花陽炙),과 락제화양적(絡蹄花陽炙) 이 각각 11.1%, 어화양적(魚花陽炙) 9.3%, 동과화양적(冬苽花陽炙) 5.6%, 천엽화양적과 양화양적(羘花陽炙)이 각각 3.7%, 계란화양적과 압란화양적이 각각 1.8% 순으로 나타났다.
이건 무슨 경양식집 주방장이 김밥천국 차려서 돈까스 팔았다고 김밥천국이 돈까스의 유래라고 할 판임;;
-한국학 중앙영구원 교수의 반박.-
황교익 "장어 보양식, 일본 풍습 영향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어를 안먹었다. 뱀장어로 이름이 붙은 이유도, 생긴 걸 보니 뱀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장어에 대한 애착이 크다. 여름이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었던 풍습이 영향을 미친 것"
"그래서 고기 대용으로 장어를 즐겨먹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먹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팩트는...
'동국세시기'열왕세시기'경도잡지' 등 세시기에도 여름철 보신음식으로 오늘날 삼계탕과 같은 초계탕이나 육개장 팥죽 등이
개장국과 함께 등장하며 양반들은 임자수탕이나 깨국을 즐겨 먹으면서 피서를 즐겼다.
일반 백성들은 여름 보신음식으로 잡아 올린 장어를 이용한 장어국이나 장어백숙을 많이 먹었는데
남도 일부 지방에서는 여름철 보신탕으로 장어와 함께 열무 우거지와 마늘,향신채인 방아잎을 뜸뿍 넣어 고춧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장어국을 끓여 먹었다.
'식료찬요'라는 고서에 의하면 연산군이 장어요리를 즐겨먹었고. 고종황제는 장어백숙을 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고기란 단어 자체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결국 불고기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기보다 일본과 공동으로 발전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팩트
과거 일본은 1872년까지 육류 섭취를 금지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 들어온 서양인이 자국민들보다 체격이 월등히 크자
일본 왕실은 육류 섭취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 전격적으로 육식 해금령을 내렸다.
일본의 요리나 음식관련 고서나 고대 기록물에 전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대한 기록인 전무한 상태다
조선시대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에서는 ‘소고기를 저며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뒤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기름과 소금을 발라 충분히 스며들면 숯불에 구우면 연하고 맛이 좋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며
“이 음식은 설야멱적으로 불렸는데 설야적, 설리적 등으로 칭하다가 너비아니구이로 발전했으며
오늘날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http://m.mk.co.kr/dbplus/mzine/2915
야키니쿠가 생겨난 데는 서글픈 유래가 있다. 과거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눌러앉은 한국인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은 전후 경제 사정이 나쁜 일본에서도 특히 가난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살코기만 먹었기 때문에 도축장 혹은 정육점에서 버리거나 돈을 받지 않고 주는 내장 부위를 한국식으로 양념해 구워 먹으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호르몬이란 ‘버리는 것’을 뜻하는 일본말인데 이런 축산 부산물로 요리를 하면서 ‘호르몬야키’라는 이름의 식당 메뉴가 탄생됐고 나중에 살코기 부위가 더해지면서 야키니쿠가 됐다.
그런데 일본에서 김치는 ‘기므치’로 통하는데 불고기는 왜 ‘야키니쿠’가 됐을까? 당시 한국인을 무시하던 일본에서 한국말을 쓰면 일본 손님들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불고기라는 표기를 하지 못하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뜻의 일본어 야키니쿠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이처럼 야키니쿠는 재일교포들의 눈물과 한이 서린 우리 음식이다.
황교익 曰
"일본은 한국에서 다광을 단무지를 바꿔부르는데 뭐라하지 않는데
한국사람들은 김치를 기무치로 부르는것은 뭐라고 한다."
일본이야 말로 문화적 우위와 우월감을 갖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무치에 뭐라고 하는것은 스스로 자존심 상해야하는일이다.
?
팩트는...
일본이 김치를 kimuchi로 영문 공식 표기해서 codex에 조리법이나 재료 지들 방식으로 규격화 시켜 국제식품화하려고 함.
양국의 김치대첩의 발단은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치가 공식 식품으로 지정되자 일본은 ‘기무치가 김치의 원조’라며 대내외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1993년 일본을 방문 중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공식 만찬에서도 기무치를 선보였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25년간 세 차례의 김치전쟁을 벌였다.
1차는 1996년 김치의 국제 표기가 도화선이 됐다. 일본은 국제식품규격 표준으로 ‘기무치(kimuchi)’를 등록하기 위해 국제심사단에 로비를 하는 등 갖은 노력을 벌였지만,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결국 ‘종주국’인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CODEX는 2001년부터 일본도 김치를 수출할 때 ‘kimuchi(기무치)’가 아닌 ‘kimchi(김치)’로 표기하도록 했다.
2차는 김치의 규격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젓갈을 넣고 발효’시키는 한국의 김치가 표준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의 발음법상 한국을 간코쿠라고 부르던 입니다를 이무니다라고 하던 개의치 않음.
유독 김치의 기무치라는 발음에만 민감해 한 이유는 이때부터라는게 팩트.
황교익 떡볶이는 맛있는게 아니라 맛있다고 세뇌된 맛없는 음식이다.
과연 그럴까?
레알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식품공학자 최낙언.
“학습하지 않고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느끼는 맛의 감각은 5가지 뿐”이라며 “맛이라고 하는 게 대부분 학습의 결과다. 태어나자마자 맛있다고 할만한 것은 단맛, 감칠맛, 적당한 짠맛, 고소한 향, 잘 익은 과일 정도”라고 밝혔다.
떡볶이의 매운맛과 쫀득한 식감을 좋아하는 애호가의 취향은 학습된 것이 맞다.
문제는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굳이 떡볶이와 치킨을 걸고넘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이다.
학습된 맛이라는 것에 떡볶이의 맛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돈가스, 카레, 제육볶음 등 우리가 먹는 모든 맛은 학습된 것이다.
최 대표는 “찰기가 없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 사람에게 우리 쌀을 주면 목에 걸릴까 무서워 먹지 못한다. 서양인은 우리가 당연히 맛있다고 느끼는 참기름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겨레 ESC 팀장이자 맛 전문기자 박미향
“궁중음식이었던 떡볶이는 신당동의 마복림 할머니가 고추장을 쓰고, 길거리에서 팔기 시작하기 시작한 이후 서민에게 깊숙하게 자리 잡은 친근한 음식이 되었다”며 “특정한 음식이 널리 팔린다고 해서 그 세대가 세뇌당했다고 해석하려면 한때 유행했던 찜닭이나, 대패 삼겹살, 벌꿀 아이스크림 등도 치킨이나 떡볶이처럼 살아남았어야 한다. 철저하게 시장 경제의 논리로 돌아가는 외식의 발전 과정을 두고 세뇌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
이탈리아 음식 주점 ‘로칸다 몽로’의 박찬일 쉐프
“온갖 먹거리가 새로 나오고 시장을 주도하지만 여전히 우리 간식은 떡볶이와 순대, 어묵꼬치가 선두를 달린다. 세대가 바뀌어도 유혹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음식들이기 때문”
“세뇌는 누군가가 강요했다는 뜻인데 떡볶이가 맛있다고 느껴야 한다고 누군가 강요했다고 보기 힘들다. 치킨이 맛있는 이유는 백지상태인 닭에 염지를 하고 소스로 맛을 내 조화가 잘 됐기 때문이다. 떡볶이가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 역시 단맛 짠맛 감칠맛이 다 들어있기 때문”
특히 1960년대 있었던 ‘무미일’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는 2018년 현재 10대들이 떡볶이 맛을 즐기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최낙언 대표는 “딸을 키워보니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 시킨다고 먹지 않는다. (떡볶이의 맛이) 사회적으로 세뇌되었다고 말할 만한 증거가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황교익 평론가가 인문 사회적 맥락에서 한 발언일 것”
황교익: "서울의 일본 음식은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웬만큼 한국화한 일본 음식과, 최근 일본에서 직수입한 일본 음식. 한국화한 일본 음식은 가난한 한반도에서 버티느라 싸구려에 촌스럽게 변했으며, 직수입한 일본 음식은 세계 으뜸의 경제대국을 이룬 국가에 걸맞게 비싸고 샤방샤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