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제목에 이순신장군의 성생활?을 보시면 이렇다는것이 나오네요 네어버 블로그에서도
충무공 관련한 역사 전문가인 이용호 박사는 진작부터 오역설을 주장해 왔다. 그는 ‘석세(石世)를 돌세로 읽는 것처럼 충무공은 이두(吏讀)를 많이 사용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봐서는 안될 전쟁터에서의 기록에 본인만 알 수 있도록 이두로 적은 것이며 이후 정조 때 판각에서는 후대의 오역을 막기 위해 아예 지워버렸다’라고 주장했다. 정조 때 판각은 <이충무공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용호 박사는 충무공이 여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나의 군대(진영)’이며, 여진 20, 여진 30은 20명의 군사, 30명의 군사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즉,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다른 곳을 방문해 거기 함께 묵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용호 박사는 연세대에서 <난중일기 영역본>을 출간하면서 이 여진이라는 말을 ‘the night with chin(친과 함께 자다)’과 ‘spent the second night with chin(친과 함께 두 번째 밤을 보냈다)’라고 해석하면서 오역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네요.
이게 진실이다.... 제발 선동에 낚이지말자
그거올린새끼는 꽃한송이씩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