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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13 21:27
충녕이 세종이 안되었더라도 한글은 만드는데 별 지장은 없었을듯
 글쓴이 : 페레스
조회 : 862  

어차피 혼자서 다 만들었고 조수역할은 자식들이 했다고 하는데

어차피 왕족이니 왕이 안되었더라도 혼자서 훈민정음을 만들어서 왕에게 바치는 그런 모습도 가능했을듯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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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맛치킨 18-08-13 21:28
   
글쎄요 한글만들었을때 신료들부터 해서 양반들이 언문이라고 모욕하고 반대해왔었죠 충녕이 왕이안되었으면 아직도 한자쓰고있을거라 생각함
뚱쓰뚱쓰 18-08-13 21:28
   
말도 안돼는...세종대왕님이 왕이 었는데도 반발이 어마어마 했고 실제로 쓰지도 않았음...그냥 대군이었으면 만들었어도 말도 못꺼냄..그야말로 유학자들한테 다구리 맞고 숨소리도 못내고 살았을꺼임..그나마 왕이었으니 반포할수 있었다고 생각함..
페레스 18-08-13 21:29
   
세종이 왕의 신분으로 만들었어도 어차피 한글은 구한말까진 그냥 부녀자들이나 평민들이나 쓰는 언문였었죠
왕이 만든 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자가 잘 쓰였습니다
즉 왕의 신분으로 만들었던 왕족의 신분으로 만들었던 어차피 구한말까진 한자의 보조로밖에 쓰이지 않았을거란거죠
칼까마귀 18-08-13 21:31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글 창제 하나만으로 용서가 되는 나라임
개병x이 천지 삐깔 이였지만요.
     
페레스 18-08-13 21:35
   
이방원이 고려말에 이미 세종 엄마인 원경왕후하고 결혼을 한 상태였으니 충녕대군은 태어날수 있었는거고 왕족이 아니였어도 열심히 공부했을거고 대학자가 되었을 겁니다 솔직히 조선이 안 만들어졌어도 훈민정음은 나올수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왕이 아닌 신하의 신분으로 고려왕에게 훈민정음을 만들어 받치는 그런 모습이 되었겠지요
          
칼까마귀 18-08-13 21:40
   
이 방원이 아들을 위해서 청소를 해주지 않았다면 전 세종대왕이
신하의 반대에 한글 창제를 못했을걸로 생각이 듭니다. 다들 개국
공신들인데 이 방원이 청소를 화끈하게 해주었으니 세종대왕의 정책을
펼치기 쉬웠다고 생각 합니다.
               
페레스 18-08-13 21:42
   
그거하고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정사를 다 돌보면서 틈틈히 비는 시간에 세종이 자식들 데리고 만든거 아닙니까
qufaud 18-08-13 21:32
   
직접 만들었기에 애착도 컷겠지요 반드시 세상과 백성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각오도 강했을 거고요
세종이 왕이 아니었으면 장애물이 엄청 많았을 거라는 유추가 가능하고
자고로 대부분의 왕은 지보다 똑똑한 신하나 형제를 가까이 두기를 꺼려했다죠 권력의 속성이 그런거라
에1리언 18-08-13 21:36
   
왕이 아닌 상황에서 만들어서 왕에게 바쳤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 죽음을 면하지 못했겟죠.
     
페레스 18-08-13 21:38
   
그건 아닌듯 ... 그정도로 죽을 이유가 안됩니다
무슨 왕권을 위협하는 역모의 그런것도 아니고 맘에 안들면 안쓰면 그만인걸 굳이 죽일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모니터회원 18-08-13 21:43
   
왕이었음에도 당시 신하들이 세계질서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당시 사상(유교적 관점)으로 왕이 아니었다면 대역죄인으로 몰려 죽을만한 명분이 됩니다.
조선시대 각종 사화들의 명분만 봐도 얼마나 어이없는 이유들이 많았는데...
저건 스스로 죽여달라고 명분을 만드는 꼴 이었을겁니다.
               
페레스 18-08-13 21:49
   
그건 아닌듯 그정도로 대역죄인으로 몰지는 않습니다 그당시에는 태조부터 명나라한테 요동 뺏어올 궁리를 하고 있을정도로 사이가 안좋은 상태였는데 한자와 다른 문자를 만들었다고 대역죄인으로 몰아서 죽일만큼 그정도로 명에대한 모화사상이 강하진 않았습니다
                    
모니터회원 18-08-13 22:05
   
한자는 명과 관련없어요. 명 이전부터 존재하던 문자였으니...

문제는 조선은 유교국가였고, 공자의 사상을 가장 중심으로 여겼다는 부분이죠.
그정도로 관대했다면 왕에게 신하들이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하지도 않았겠죠.

절대왕권 국가에서, 상명하복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유교국가에서
신하가 왕에게 대들 정도로 반대한 사건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듯 하네요.
그루메냐 18-08-13 21:38
   
이성계가 조선을 안 세워도 훈민정음은 만들어졌다는 말과 뭐가 다른지...
     
페레스 18-08-13 21:39
   
그렇죠 어차피 충녕대군 혼자서 원맨쇼하고 자식들을 보조나 조수로 쓰면서 만든거였기땜에 굳이 왕이 아니더라도 만들수 잇었을거라고 봅니다
          
그루메냐 18-08-13 21:41
   
집현전 학자중에 왕자 출신 있어요? 금시초문...
               
페레스 18-08-13 21:43
   
집현전하고 협동작업이 아니라 원맨쇼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종이 얼마나 천재였는지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지요
                    
그루메냐 18-08-13 21:50
   
님 한글이 단순히 ㄱ, ㄴ, ㄷ으로 표현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문법부터 각종 소리의 조합까지 그걸 혼자 어떻게 만듭니까... 어디 초딩용 위인전에 세종대왕이 문듯 밤에 창틀의 문양을 보고 창안했다는 걸로 얘기하시나 본데 원맨쇼는 코메디지 실화가 아닙니다...
                    
모니터회원 18-08-13 21:50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7600&cid=58840&categoryId=58856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집현전 학자들중 성삼문, 박팽년 등 보필하며 같이 만든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최만리등 집현전을 책임지는 핵심 학자들이 극렬히 반대해서 거의 혼자 작업한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겠지만요.
                         
페레스 18-08-13 21:57
   
혜레본이라면 일종의 설명서인데 설명서를 만들었다고 훈민정음을 같이 만들었다고 하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국사 교과서에도 훈민정음을 세종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 세종과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만들었다는 주장, 세종과 여러 왕자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주장들이 있지만 신하들하고 같이 만들었다는 얘기는 없다고 합니다
                         
모니터회원 18-08-13 22:00
   
같이 만들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히 설명합니까?

사용 설명서는 개발자가 만드는게 보편적인 인식이죠.
                         
페레스 18-08-13 22:05
   
훈민정음을 일단 다 만들어놓고 신하들한테 이 글자는이렇게 저렇게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따서 만든거고 저 글자는 다른 발음기관을 본땃고 그런식으로 설명을 했겠지요
그걸 듣고 신하들이 차후에 해례본같은 설명서를 만들었구요

훈민정음 아니더라도 조선후기에 유명한 유학자들이 주자의 서적애 대한 주석을 만들어서 설명하는 책을 내기도 하고 훈민정음의 해례본같은 역할을 하는 책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었지요

설명서는 일단 기본서가 있어야 나오는거고 그 기본서를 세종 혼자서 만들었다는게 중요한 거죠
CowBoy 18-08-13 21:38
   
만들순 있겠으나 반포는 힘들듯...
가새이닫컴 18-08-13 21:38
   
왕권으로 한글창제 프로젝트 강행
왕자였음 귀양가서 사약예상
모니터회원 18-08-13 21:40
   
오히려 왕이 아니었으면 역적 누명쓰고 완성도 못했겠죠.
당시 왕족은 사소한 시비거리 하나로 언제든 죽을수 있는 하루살이 인생이었습니다.

혼자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방대한 타국의 언어학과 금석학 자료들은 누가 구해다 주나요?
신하들이 반대했어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편찬한 장소가 '집현전'이었습니다.
왕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들이죠.
     
페레스 18-08-13 21:46
   
왕이 아닌 상태로 만들었다면 만들어서 왕에게 받치고 그냥 왕실의 창고속에서 묻혀 있었겠지요 그러다가 구한말쯤 되서 슬슬 사용되기 시작하는 그런 모습였을 겁니다 뭐 왕의 신분에서 만들었어도 비슷한 모습였구요

언어학과 금석학 자료들은 왕이 아닌 상태였어도 높은 신분인건 맞으니 어떤식으로든 구했을거라고 봅니다
          
모니터회원 18-08-13 21:58
   
똑똑한 왕자는 평범한 왕자보다 수명이 더욱 짧은 법입니다.
양녕대군이 괜히 자유분방한 행동을 하며 전국을 떠돌아 다닌게 아닙니다.

권좌를 차지할 명분을 타고난 왕자들은 사소한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죽을수 있었어요.
자리에 욕심없던 안평대군도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킬때 같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었죠.

세계질서(유교질서)에 반하는 한글창제를 단순히 왕족의 신분으로 진행했다면
당시 우민화 정책이 일반적인 전제국가 상황에서 역적으로 몰려 죽기 딱 좋은 상황이었을 겁니다.
조선말기 동학 농민운동을 집권자들이 괜히 탄압한게 아니에요.
시루 18-08-13 21:42
   
왕이였으니까 많들어서 반포까지 했지 왕이 아니였다면 모함을 받아서 죽었을듯 하네요.
검푸른푸른 18-08-13 22:02
   
애초에 왕이니까 한글을 만들 생각을 했지.
왕이 아니었다면 한글만들 생각조차 안했을거 같은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사람은 자리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기 마련.

왕이 아니라 도적떼였다면 도적질 생각만 했을것이고.
왕이니까 하층민 백성들의 고충이 무언가 고민했을거라 생각하는데.
akanechang 18-08-13 22:38
   
당시에는 나라의 도량형 달력 조차 중국이 하사하면 조공국들이 받아 썼어요. 하물며 글자인 한자 대신 다른 걸 쓰자고 했으면 걍 얄짤 없이 사문난적으로 몰리던 시절이죠.

그나마 조선 유학이 훨씬 배타적인 교조적 성향이 강한 성리학이 유행 하기 이전 시절에도 반발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조선의 전무후무한 성군(-많~~~~~이 착각 하는 부분이 현대의 성군과 조선의 성군은 그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 유학자들이 바라 보는 성군은 공자 왈 맹자 왈 하면서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학문으로 백성들을 교화 하는 이들의 수장을 말합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 한 걸 발명 해서 백성들 생활을 개선 시키는 건 유학자들 눈에는 성군이 아니라 사문난적 내지는 폭군으로 봤고요-)이라서 세종이 남긴 한글도 덩달아 같이 살아 남은 겁니다.
백테클퇴장 18-08-13 22:41
   
국가 정책으로 채택 시행, 공문서 사용 과 안된것은 역사적으로 평가 자체가 틀림
유일구화 18-08-13 22:52
   
웅녀랑 범녀랑 둘다 얻어쓰면 엄청나게 조았을 겁니다.
애니비 18-08-14 01:31
   
충분히 혼자 만들었을 법은 한데
다들 그 생각도 못했고 못받아 들여서 찾다찾다 기껏 나온게 자식들 도우미썰 정도니
왕이라도 경연에서 신하들을 압도하던 위엄이 아니면
더욱 전 계승순위권 신분였음 올커니 하면서 사문난적쯤 되지않았을지
회색달 18-08-14 03:51
   
뭐 굳이 바쳤다해도 곳간에서 썩다가 숙종이라면 꺼내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세종이니까 백성에게 글을 남긴것이지 다른 왕들은 과연 반포라도 했을까싶네요
권력이란게 백성들은 까막눈인게 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