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로 그대 이전 일본에서는 백성들이 영주에게 높은 세금을 바쳐도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전혀 없었다.
에도 막부 시기, 텐메이 대기근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의 대기근이 일어나면, 일본 백성들은 거의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수십만 명이 집단으로 굶어 죽었다. 봉건제도하의 일본에서는 서로 다른 지역은 다른 나라로 간주되어 도와줄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집권제도가 정착된 조선의 사정은 달랐다. 조선의 세공은 기본적으로 10퍼센트였다. 조선의 세금제도가 문란해진 조선 말기에도 조선 백성들이 내는 세금은 30퍼센트 내외였다. 일본에 비교하면 훨씬 낮은 수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항복했던 조선 백성들도, 일본군이 물리는 혹독한 세금에 반발하여 다시 의병을 일으켜 저항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과는 달리, 조선 백성들은 나라로부터 받는 혜택이 매우 많았다. 성균관과 혜민서에서 공짜로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또 아이를 셋 낳으면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노비라고 해도 나라에서 쌀 10석과 두 달의 출산 휴가를 줄 정도로 우대했다. 조선에서도 일본의 텐메이 대기근처럼 기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조선에서는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서 군량미로 비축된 쌀을 풀어 백성들에게 먹이고, 세금은 낮추는가 하면 중국에 원조를 청해 수십만 석의 쌀을 가져와 구휼 식량으로 베푸는 등의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
어메이징 한국사, 도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