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 말이 맞는 건데 무슨 일인지??
곁가지란 지나 뜻도 맞고 근대에 일본에서 중국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 맞는데?
그리고 그 근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화족 중심의 그룹이 주류 문명이 아니었던 상고 시대에도 있었던 호칭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린 거죠.
차이나가 시황의 秦의 발음 친(Qin)에서 유래한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China라는 단어발음과 支那는 관련없지만 China의 의미와 支那는 관련있습니다.
그렇게 사죄까지 하실일은 아닌거 같아요~
걍 사람들이 다양한건 좋은거죠~ 중국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미국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일본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다양하게 있는게 좋은거 아니겟어요~?
너무 심한 중뽕.일뽕.미뽕.국뽕등등 만 아니라면 괜찮은거 같은뎅~
다른분들도 다 이해하실꺼에요~
요즘들어 심한 뽕을 하시는 분들이 자주 등장해서 좀 예민해져서 그러신듯~~~
아까 댓글보니깐 일본,중국,대만 여러 국가 친구들도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 사람들앞에서도 이상한 말씀 하시고 사시나요?
반대로 일본은 고대에 우리나라의 영향과 문화권을 그렇게 크게 받고 성장해왔는데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한4군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국가가 등장했다고 하시는데
정말...................................................................
중국 사서 위략을 통해서 기원전7세기 경에는 무역을 하는 국가로 이미 조선이 등장을합니다.
하지만 중국에 단순히 알려졌다고 해서 기원전7세기 국가가 등장했다!
라고 하지않죠..
그래서 고고학이 중요한겁니다.
우리나라 청동기문화는 기원전12세기까지 올라갑니다.
솔직히 고조선2333년은 단순 자존심 세우기고요.
대략 기원전12~10세기 경에는 세력화된 체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북만주 일대에 존속했던 부여 역시 기원전4~3세기에 국제무대에 등장합니다.
기원전漢대(기원전2~1세기)에 부여가 읍루(만주족의전신)를 쳐서
서기 3세기 초반까지 세급을 공납시킬정도로 무력화되어있었습니다.
삼국사기조에 기원전6년에 부여가 기보병5만명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를 사실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고 그래도 수만명의 병력을 동원시킨다는건
부여의 군사체재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걸 증명합니다.
이미 읍루족을 지배해서 견제하고 세급을 공납한다는 부분에서
부여가 그만한 군사력이 있었다는것을 증명하는 사료입니다.
" 그 나라는 은부하여 선세이래로 적에게 파괴된적이 없다."
라고 기록될만큼 부여는 고구려에게 병합되고 4세기 이전에 여러 전란으로 휩싸이기전까지
상당히 고도화된 국가체재였습니다.
우리가 중국의 문화를 수용했던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일본처럼 직접가서 글을 알려주거나 사찰을 직접 건립해주거나
야요이시대로 흘러가는 청동기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만큼은 아니였습니다.
일본은 우리아니였으면 국가체재에도 못들어갑니다.
진짜 말그대로 석기시대였으니깐요.
일본이 왜 죠몬-야요이 시대라는 특이한 용어를 왜 사용하시는줄은 아세요???
인류의 역사흐름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인데
일본만 이상한 시대용어를 사용하죠?
일본은 신석기시대에서 갑작스럽게 청동기시대로 진입을 합니다.
무엇을 뜻하는지 아세요?
한반도인들이 열도로 넘어가서 선진문명을 바탕으로
열도 토착세력을 제압한 후 부터 일본의 역사시작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