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한국은 베트남과 공동으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를
공동 설립하고 강정구,한홍구를 중심으로한 조사에 들어간다
그동안 미국정부에 전달된 100여종의 보고서와 20장의 사진을 통해
총3건의 진실을 찾아내게 된다.
[한국군의 치욕]
1.<퐁니*퐁넛 사건:68년2월12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해병 청룡사단 제2대대 6중대가 베트콩의 마을로 오인 81mm 박격포로 마을을 포격한 사건으로 총69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원인으로는 보고서를 중심으로 기술하면
마을주변의 베트콩의 잦은 출연과 위장으로 인해 전사자3명 부상자14명이
발생할정도로 피해가 심했던점
마을 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로 인해 부상자의 속출로 인한 이성의마비
마을에 숨어든 베트콩의 저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 이로인해 베트콩마을임을 확신했던점
등이다. (국군측 사상자에는 미해병대원2명이 포함된다.)
2.<푹미사건: 쿠앙남성 디엔반현>
사상자 22명 베트콩오인으로 인한 사건
3.<홍차우사건:쿠앙남성 디엔반현>
매복중 베트콩 오인사상 한국 소환후 사형 선고 이후 감형되어 무기징역으로 15년 복역
그밖에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다는
빈호이사(131)/타이빈(380) 사건은 소문으로만 존재할뿐 사실여부를 확인할수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여부가 아닌 , 사실상 존재할수 없는 사건이다.)
(사건의 성립에서 기본적오류가 많은데 예를들어 사실을 주장하는 생존자 의 주장에만 의지하면)
(헬기로 이동하여 학살했다라는 주장/ 66년에 일어난 사건인데,한국군에 헬기가 최초로 지급된)
(연도는 68년 초반이다-"국방부 작전일지"그외에 비합리적주장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밀라이사건,기타 다국적군의 참전 등등을 감안할때 전혀 가능성이 없다.)
이에대한 한국정부의 조치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x,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하였다(이후 대부분이 형집행정지와 감형등을 받았다)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2000년 베트남 국빈방문중 국민에게 공식사과를 했다
노무현대통령은 2004년 호치민묘지를 참배하며 공식사과했다.
2004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한화갑 민주당대표는 2006년당시 베트남인에게 사과하였다
2009년도 이병박대통령이 베트남 국빈방문당시 사과와함께 베트남유공자를 한국의 참전유공자와 함께 동등대우를 한다고 했지만
당시 이를 승전으로 생각했던 베트남인들의 강력반발과 외교부의 항으로 당시 유명환장관이
직접가 베트남정부에 사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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