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돈을 따라는것으로 생각하는저는 솔직히 신라는 통일전에는 문화면에서 그리 꽃피우지는 못한것 같아서요. 백제가 삼국중에서 제일 부국 이기도 했고 유물들 보면 ㄷㄷ하죠.. 백제금동향로보세요. 솔직히 저시대사람들이 만들었다기에는 너무 훌륭함.. 신라는 그에비해 통일신라가 되기 전까지는 좀 가난했죠.
저는 안타까운게... 사람들은 '신라' 그러면 고구려땅 다 뺏기고(사실 뺏겼다는 것도 웃기지만) 반쪽짜리 통일 했다는 것만 생각하지 당시 가장 약소국이었다는 것, 지진 등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았다는 것, 백제와 달리 평야지대가 거의 없었다는 것, 뒤로는 일본이 뒷통수 노리고 있었다는 것, 이 모든 핸디캡을 이겨내고 통일을 이루고 황금기를 열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게 중요하거든요... 신라는 절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상당해요.
알쓸신잡 보셨군요..당시 신라가 국제4대도시였다고 하니..
안타까운것은 황룡사9층 목탑이 지금까지 보존되었다면은
경주 랜드마크는 첨성대가 아닌 황룡사 9층목탑일겁니다..
불타서 없어진게...그리고 수로왕비가된 인도공주 허황옥 이야기도 있으니..
여러 나라하고 많은 교류가 있었을겁니다.
백제의 사울아비 고구려의 선인들 화랑같은 체제가 신라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좀... 그리고 화랑의 대한 환상이 심하신데 김유신 이전에는 연예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의 백성을 위한 보여주기식 쇼였죠. 당시 화랑의 선발기준에 미모(남잔데 ㅡ.,ㅡ;;)와 출신이 가중 중요했다는건 아십니까? 그걸 개혁한게 가야계 김유신이었습니다.
님 말이 맞기도 해요. 그런데 통일신라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앞서 말했다시피 김유식이 개혁하기 이전까지 화랑은 연예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귀족의 자제들중 미모가 출중한 자를 뽑아 홍보용으로 쓰였죠. 기록을 봐도 김유신 이전 수장들은 꽃에 비유하며 아름다운 미모를 칭송하기 바쁘다가 김유신에 이르러 최초로 태양과같은 얼굴로 표현하여 남자다움을 표현하죠. 그리고 개혁된 화랑의 힘을 기반으로 김유신이 통일에 일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화랑이 미모가 뛰어나야 했는가는 홍보목적도 있지만 당시 신라의 성 문화마 매우매우매우 개방적이었다는 겁니다. 골품제로 운영되는 신라귀족 여자들이(특히 공주) 아무 남자하고 잘 순 없고 그 역활을 하는게 화랑이었죠. 조금 상스럽게 표현하자면 기쁨조?
아무튼 그런조직을 개혁하고 개편하여 훌륭한 전투조직으로 탈바꿈 시킨 김유신도 대단한 수완가였음은 분명합니다.
맞죠..상당부분 많은 사람들이 싸울아비를 백제 화랑처럼 여기는데..싸울아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신라 화랑이 고구려 선배제도를 따라한것이라 고구려에 나온 백제도 분명히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무사집단 이름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죠. 삼국사기에서 일본 닌자같은 음자가 활동했다고 하죠.
저도 이말에 공감..고구려 백제 신라중..신라는 천년의 도시 경주가 있기에..
많은 보고 듣고 합니다만..백제는 아닙니다..신라보다 확실히 저평가된 느낌이죠.
오히려 백제역사가 잘되어있는게 바로 일본입니다. 근초고왕비롯한 4대 백제왕을 모시는
신당도 있고 의자왕 바둑판도 있고...
사실 신라가 백제의 신의를 저버린 점과 당나라를 끌어들인 점은 못마땅한게 사실이나
만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컸겠죠..
그런 점에서 신라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영토가 극도로 줄어든 건 정말 아쉽지만 말이죠..
지금 무자원 국가라고 금을 수입해서 썼다고 하는데 한반도 엄연히 금광 있는 땅이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다 캐서 고갈됐을 뿐이죠. 구한말에 광산 규제가 풀리고 20세기 초에
너도 나도 부자가 되겠다고 온 나라가 금맥 찾기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당시에 그런 배경을 바탕을 둔 소설도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