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사진기가 있었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말한 주장은 조선시대때 양반들은 독상문화 였을 거란 것이죠.
그래서 시대가 변화고 사진기도 들어 올 때쯤 서민들도 독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실록에 그런 역사적 사실이 기록이 되어 있다면 더 정확하겠군요.
사진으로 그렇다고 하기에는 100년 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황교익 맞는말인데? 우리나라 전통 밥상에 수십가지 반찬 오르는게 없는데? 슈라상도 저리 안오르고 가당 화려한 상이 젯상이라면 이해할까? 우리나라는 잔치도 각자 소반에 받아 상받은거로 아는데 왜들 욕할까. 나 어릴때 외가집가면 소반이 광에 잔뜩 있었고 아님 마을 창고에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나만 그런가?
나 어렸을 때는 시골 외갓집 가면 광에 나무로 만든 채, 키, 광주리, 소반 등이 가득했지요. 너무 시골이라 우물에서 물 길어 마셨습니다. 넓은 마당에 토끼, 닭 , 오리, 돼지 다 키우고요. 옛 것을 잃어가면 전통이고 뭐고 없습니다. 할머니, 어머니가 아는 지식도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전 어머님의 김치담구는 법을 배우고 싶네요. 김치맛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향기가 예술이거든요.
일본에는 메이지유신 전까지 육식 고기먹는 것이 흔치 않고,
또 고기에 양념을 할 줄 몰라 비려 맛이 없다는 조선통신사의 기록도 있습니다.
불고기를 구울때 사용하는 연기배출 석쇠를 재일교포가 먼저 사용한 것을 마치 일본의 전통적인 고기굽는 방식과 상호 크로스 라이센스를 했다고 오해하겠네요.
막걸리 또한 그 자체가 옛날 탁주. 그것을 맑게한 것이 청주. 이러한 술 빚는 문화도 일본으로 건너가서 사케가 된거죠. 누룩균(효모)을 일본 것을 썼다?
확실히 공장형 막걸리는 십수년전까지 수입산 효모를 쓰는 경향이 있지만, 그걸 안쓴다고 전통 막걸리를 못만드는 것이 아니죠. 오리지날 누룩이 있는데.
현대식으로 유통기한을 늘리고, 과학적으로 동일한 품질로 찍어내기 위한게 특수 효모인데...
지금은 자체 효모도 많이 배양하여 막걸리나 빵에도 쓰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31/2017053102970.html
그리고 팥을 먹는 문화만 해도
한국의 동지때 마다 먹는 팥죽, 팥을 이용한 각종 시루떡 일본보다 오래전 부터 있었어요.
김에 밥을 싸 말아 먹는 것은 과거 조선시대 부터 충무김밥과 같은 형태가 있었고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노리마키와 같은 형태의 영향을 받아 현대식 김밥이 된 것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김밥 속에 여러가지 넣고 마는 문화는 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후토마케에 영향을 주었답니다. 보통 일본식 김밥은 오로지 오이 하나 참치회 하나 이렇게 마는게 보통이었으니까요.
노리+마키 입니다. 김+감싸다.
원래는 다시마마키, 미역마키였습니다.
원래는 마키가 아니고 위에 덮는 것입니다.
1960년대(1950년대?) 영국여자가 김종자를 개발하여 대량생산하게 된것입니다.
이여자 신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일본은 평민이 김을 먹기 시작한것이 이여자 덕분입니다.
그전에는 너무비싸서 싸서 먹는 것은 꿈도 못꾸고 사 먹어도 잘게 잘라서
뿌려먹었습니다.
우리는 1901년 독일기자가 금강산 산골 절에서 식사대접을 받는데
상에 김이 나왔다고 써있습니다.
노리마키는 60년대 이후에나 나오는 거지 1900년 초기에는 꿈도 못꾸는 음식입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는 금강산 산골에서 먹는 김을 일본은 [행운풀]이라고 했을까요.
김을 채취하게 되면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자연에 의지해서
언제나 채취할수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 오이하나 넣는 김밥을 최초로 만들게 된 계기가 된것 대화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960년대에요. 자신이 원조라고 엄청자랑합니다.
후토마키는 부두의 노동자들이 창녀에게 한번에 먹게 했다 하는데
그것 거짓말입니다. 일본이 거짓을 말할때 꼭 그렇게 말합니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런사실이 있었다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오사카에서 이러이러해서 후토마키를 먹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확실하지 않다는 기억하지 못하죠.
김발도 원래는 김을 싸려고 만든것이 아니라
계란말이를 둥글게 말려고 만든것입니다.
겉에 올통볼통 모양도 내구요.
일본요리사를 봐도 1950년대 까지는 계란말이가 주류였었다가
영국여자에 의해서 김이 재배되는 1960년대 이후에나 노리마키가 주류로 변했다라고
써있습니다.
간지, 이빠이, 노가다, 츤데레 ... 평상시에도 젊은이들이 쓰는 일본말, 건설 현장 가면 어지간한 용어는 다 일본어이죠. 대학교 때 교수님이 일본 교수 데리고 건설현장 갔는데 하도 일본 말이 많아서 일본사람이 일부러 나 들으라고 쓰는 거냐? 물어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네요. 황교익 욕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할 줄 알아야지 황교익이 뭘 잘못했나?
우리는 1인 일상 문화죠.저는 이 글을 읽고 우리 것을 찾는데 게을리하지 안했나 함 생각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일반 식당이야 환경이 변해서 힘들지 모르지만 전통 음식점 같은 경우는 노력을 해야되지 않을까요?
사진속 한정식이 꼭 우리 전통문화다 고집 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 한민족의 우수하고 화려한 반상문화를 부정하는 자는 매국노이고 반드시 솎아내야하는 처단대상입니다.
뭐 기생집? 일본 문화?? 어디서 개같은 유언비어를 날립니까? 수천년 우리민족의 자랑스런 서민적이고 다정한 요리문화의 정점이 바로 한정식인데 감히 이것을 왜색이다? 추잡한 기생년과 쳐먹는 요사스런 것이다?
이런 쳐죽일놈을 봤나
ㅎㅎ 한정식이 꼭 조선시대에서부터 나와야할 이유도없고 한정식에 무슨 교과서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옛날 떵떵거리고 잘살던 부자들은 그럼 잔치상에서 뭘 먹었답니까 꼭 저치는 한식이나 한국역사를 상놈역사로, 죄다 일본강정기 영향받고, 버리는거 줒어먹던 찢어지게 가난한 조선 노예들만 등장한다는.. 그리고 보면볼수록 같은 말을 해도 재수없다는게 저사람 재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