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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0 21:20
삼국이 완전히 해체된 이후 한반도에는...
 글쓴이 : 마마무
조회 : 1,240  



백제계 사람이 많았을까요??

고려계 사람이 많았을까요??

신라계 사람이 많았을까요??



왜 견휜은 백제계 사람들 지지를 받고 신라를 멸망 시켰는지 의문이네요.

이후 고려계 사람에게 망했지만 애초 삼국시대는 백제가 인구가 가장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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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전성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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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열강 18-11-20 21:22
   
글쎄요 그걸 알만한 사람들은 역사학자들 뿐 아닐까요?


전대 세금낸 통계같은 걸로,,,
hihi 18-11-20 21:22
   
난 어디사람일까.... 아마도 조상들도 경상도쪽은 연고가 없으므로 백제나 고구려사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죠?
니에루 18-11-20 21:23
   
백제가 토지가 비옥해서 인구는 젤 많지 않았을지요...?
파란사탕 18-11-20 21:23
   
아마도 백제왕자들이 난을 안일으켰으면 고려 백제중 누가 통일 했을런지는 모르죠.
바람아 18-11-20 21:24
   
당대 당나라 측 기록에 의하면 백제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여러 추측에 의하면 그래도 고구려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백제, 다음이 신라로 보더라고요.

근데 7세기 당시에는 신라가 더 인구가 많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요.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후 백제계 인구와 신라계 인구는 서로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고, 고구려 인구는 최소 1/3은 날아갔다고 봐야..
     
마마무 18-11-20 21:47
   
삼한일통 동족 개념을 추구해서 1/3 은 오바 같은데요?
          
바람아 18-11-20 21:57
   
수십 년의 전란 속에 죽은 고구려인 +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 + 여기저기 흩어져버려 실종된 고구려인 + 발해인이 된 고구려인.

이것 모두 다 합하면 신라로 귀부한 고구려인은 원래 고구려 인구의 1/3도 한참 안 된다고 봐야죠.
               
마마무 18-11-20 22:02
   
고려유민 고려호족들이 많았으니 한성 지방에서 세력 기승을 부렸고

백제계 유민이 많았으니 백제계 장보고와 산둥(제나라) 해상 경제권을 장악했을거라 봅니다.

그래서 도저히 경주는 천도를 못했을거라 봅니다.
                    
바람아 18-11-20 22:05
   
중국과의 긴 전란 끝에 살아남은 고구려인 대다수는 그냥 그 자리에 남아 발해인이 됐다고 봐야 합니다. 신라로 귀부한 고구려인 인구는 기록상으로 보면 그다지 많지 않아요. 후에 태봉이 세워지고 고려가 세워지지만 어디까지나 지배층이 고구려계인 것이지 그 밑의 백성들 모두 고구려계라고 보긴 힘듭니다. 물론 고구려 정체성을 강하게 지닌 고구려계 신라인들이 분명히 모여 살았으니 후에 고려도 세워질 수 있었던 거고요.
                         
마마무 18-11-20 22:08
   
그건 해석의 무리수일수 있습니다.

신라인 스스로 아무리 타락했어도 스스로  신라를 멸하는데 찬성할 사람은 극소수였을테니.
                         
바람아 18-11-20 22:09
   
사실 당시 기록이 너무 부족해서 정확한 답은 내릴 수가 없어요. 다 추측이지.
루카쿨 18-11-20 21:24
   
솔직히 백성들은 자기가 신라인지 고구려인지 백제인지 관심이 없었을겁니다.

중요한건 지배층의 숫자이지....
     
바람아 18-11-20 21:26
   
기록만 보아도 전쟁을 하면서 성과 마을 빼앗으면 거기 살던 사람들은 백제인이 됐다가 신라인이 됐다가 하죠.

하지만 국경 지역에서는 그럴 수 있어도 대체로 백성들도 확고한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있었을 겁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부흥 운동이 일어날 정도니까요.
본자아 18-11-20 21:25
   
근세를 보면 알수 있을것도 같은데
일제강점기 이전에 전라도 지역이 인구가 가장 많았다는데
거기가 식량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
인구수가 가장 많았다고
강원도와 경상도는 산이 많아서 인구가 적었다고 하네요.
     
고수열강 18-11-20 21:30
   
일제 강점기 이전에 전라도가 인구 많았는건 아닌거 같은데요..

곡창지대라서 인구가 많다는건 좀...

아무 서울 경기가 아니었을까요?

사람은 서울로 말은 탐라로라는 말도 있는데..
     
바람아 18-11-20 21:37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경상도가 인구는 더 많았습니다.
          
마마무 18-11-20 21:48
   
아마도 적었으니 지방호족들에게  국운이 흔들렸고 멸했겠죠.

그리고 많았다면 신라를 이후 계승했겠죠.
               
바람아 18-11-20 21:55
   
그거랑은 상관없습니다.

지방 호족들이 전라도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신라는 망할 때가 돼서 망한 겁니다.

그리고 경상도가 전라도보다 훨씬 큽니다. 경상도가 거의 항상 인구가 더 많았어요.
                    
마마무 18-11-20 21:57
   
항상 서쪽 영토가 더 많았습니다.
                         
바람아 18-11-20 21:59
   
한반도 서쪽 전체가 전라도가 아닌데요? 전라도는 경상도보다 훨씬 작습니다. 신라에 평야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조선 시대에도 경상도 인구가 전라도보다 더 많았습니다.
                         
마마무 18-11-20 22:03
   
동쪽은 애초 경상도 말고 살곳이 없어요.

예국의 강원도는 영동지방 빼고는 살곳도 없고 완충지대라 싸움터였죠.

호남,호서가 영남보다 인구가 많았어요.
                         
바람아 18-11-20 22:06
   
님 난독증 있어요?

분명 전라도랑 경상도 인구를 비교한 것 같은데요. 왜 또 충청도를 포함하시는지.

제가 말했죠? 한반도 서쪽이 다 전라도가 아니라고.

전라도랑 경상도를 비교하는데 왜 갑자기 호서 지방이 나와요.
                         
마마무 18-11-20 22:11
   
당시는 호남,호서 한 가족이였어요.

마한계(목지국,백제국)

후세에 전라도,충청도 나눈거지.

님은 지금은 국토 면적이 그때랑 동일하게 보시나요??

예컨데 경북 상주시는 옛날엔 호서지방에 더 가까운 백제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진한의 샤랑벌국의 본거지가 상주시에요.
                         
바람아 18-11-20 22:14
   
아니 그럼 님이 말하는 게 전라도가 아니고 충청도랑 전라도 합한 거라고 말을 하던가요.

지금 이 논쟁 자체가 전라도랑 경상도 인구 비교한 댓글에서 시작한 건데요.

님 논리면 경상도도 처음부터 지금 영토가 아닌데요?

왜 혼자 기준을 이랬다저랬다 하시는지.

지금 전라도가 과거 초기 마한의 영토가 아닌데 뭔 헛소리인지 모르겠네 -_-
자비스런 18-11-20 21:27
   
3국시대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다를 때라
3국의 공통점은
북방계 철기문명을 가진 지배계층이 한반도로 이동해서 한반도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는 정도.
예) 신라 골품제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에 넣을 수 있는거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들이 과학의 발전을 통해 요즘 들어나고 있음.
고대사를 새로 다시 써야할 정도로
위스퍼 18-11-20 21:32
   
삼국시대를 미개하게 여기며 중국인 공자만 쳐다봤던
친중 사대주의자들이 수백년간 역사를 왜곡시킨대다가
막바지에는 일제가 삼국 시대 사료를  강탈했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가 없어요.
바람아 18-11-20 21:33
   
왜 견훤은 백제계 사람들 지지를 받고 신라를 멸망시켰는지 의문이네요//

꼭 신라인이라고 해서 신라를 위해 목숨 바쳐 살라는 법은 없습니다. 견훤은 전라남도 쪽에서 해적들을 소탕하고 크게 입지가 올라가 있던 상황이고 당시 신라는 나라가 개판이던 상황입니다. 지방에서 경주로 세금이 안 올라올 정도로요. 신라가 낮은 단계 두품 백성들을 일일이 챙겨주던 나라도 아니고요.

견훤 입장에선 신라인으로서 대우받으며 살던 것도 아니고 충분히 반란을 도모할 법했습니다. 실제로도 아주 성공적으로 그게 먹혔고요. 백제계 신라인들을 모아 놓고 의자왕의 복수를 하자고 천명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호응했다고 하죠.

궁예가 신라를 '멸도'라고 부르며 극히 혐오했는데 견훤이 궁예만큼 신라를 증오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라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진 않았습니다. 경주로 전광석화처럼 기병들을 이끌고 가서 왕을 죽이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왕비를 겁탈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신라는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정통성이 쩌는 국가였기에 견훤도 함부로 멸망시키진 않고 후백제의 왕이긴 했지만 공공연히 왕을 칭하지는 못하고 신라 왕의 아래 단계 관직명을 자칭했습니다. 신라가 싫어도 신라의 정통성을 무시할 순 없었거든요.
     
마마무 18-11-20 21:50
   
중요한건 역사에서 신라를 차후 계승 안했고

신라 일부 귀족들은 고려계 밑으로 들어가서 귀속됬죠.
          
바람아 18-11-20 21:53
   
후백제는 신라를 적대적으로만 대하다가 결국 신라라는 세력 자체가 고려로 귀부하게 만들었고 육지에서는 고려보다 잘 싸우던 후백제가 고창 전투에서 완패하고 완전히 기울어버린 데다가 견훤 아들이 쿠데타까지 일으키니 후백제는 결국 멸망.. 왕건은 정치를 알았고, 견훤은 몰랐던 결과죠.
          
호랭이해 18-11-20 21:57
   
굿잡스 18-11-20 21:53
   
신라(- 시라尸羅)ㆍ고구려(- 고례 高禮)ㆍ남북 옥저(南北沃沮)ㆍ동북부여(東北扶餘)ㆍ예(穢)와 맥(貊) 모든 나라가 단군의 후예이다.

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 皆檀君之壽也

-제왕운기

예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 진한과 접하였고, 동쪽으로 넓은 바다에 막혔으며, 서쪽은 낙랑에 이른다.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의 땅이다.

濊北與高句驪·沃沮, 南與辰韓接, 東窮大海, 西至樂浪. 濊及沃沮·句驪註 100, 本皆朝鮮之地也

-후한서 동이열전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의 택지이다.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삼국사기 고구려


시조 혁거세 거서간

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 4월 병진일에 즉위해,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였다. 이때 나이가 13세였으며, 국호를 서나벌이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조선의 유민들이 산과 골짜기에 나뉘어 살면서 6촌을 이루었다. 첫째가 알천의 양산촌, 둘째가 돌산의 고허촌, 셋째가 취산의 진지촌, 넷째가 무산의 대수촌, 다섯째가 금산의 가리촌, 여섯째가 명활산의 고야촌이니, 이것이 진한의 6부가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NobleBlood 18-11-21 07:51
   
견훤은 신라를 멸망시킨 적이 없음......

마지막 신라왕이 스스로 고려 왕건에게 가서 항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