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세계사를 배울땐 로마 천년이었죠.
분명히 서로마만 멸망하고 동로마는 살아남고 뒤에 비잔티움제국이되었고 지리부도였나요? 거기에도 잠깐! 나왔는데 십자군 전쟁으로 같은 기독교 군대에 습격당하기전에는 나오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현대 한국인이 배우는 세계사라는 것이 서유럽-미국으로 이어지는 역사만을 배우고 그들이 승자라는 것을 알수있었죠.
일본인이라고 다를 것이 없지요. (그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일본인이 보는 세계사를 배우게 됩니다)
일본인들은 개항당시 미국의 흑선으로 개항하고 당시 전세계를 좌우하는 영국을 그 모델로 삼습니다. (식민지 정책과 해군정책) 영국신사도 일본인들이 전한것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지배하는 방법은 영국식이라는 것이죠.
문화와 법률, 그리고 육군은 원래 프랑스의 것을 적용하려 했으나. 보블전쟁으로 독일이 승리하자 육군은 독일것을 모방하게 됩니다. (그 영향으로 현대 일본인에게 파리 우울증이 생겼죠.)
일본은 1차세계대전 이전 세계를 지배하는 서유럽인들의 역사와 문명을 도입합니다. 당연하게도 당시 서유럽인들은 동유럽을 야만의 땅으로 봅니다. (당시를 묘사한 각종 소설들을 보면 아주잘 나옵니다. 영국인이 동쪽으로 가는 것은 야만과 다신의 땅으로 가는것으로 묘사)
프랑크 왕국의 후손인 이들에게 그 프랑크 왕국의 지배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은 지워야할 대상이었던것이죠.
프랑크 왕국이 신성로마 제국으로 불린것은 그들과 로마대주교의 야합으로 인한것이죠.
한쪽은 로마황제 다른쪽은 왕중의왕인 교왕이된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놓고는 못했습니다. 외교상으로는 동로마황제가 로마황제이고 나머지는 프랑크왕국의 왕과 로마교구의 대주교일뿐이었으니까요.
이러한 것도 비잔티움의 쇠퇴와 십자군 전쟁중에 아랍인들과 싸운것이 아니고 오히려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모든것이 파괴됩니다. 지붕까지 금으로 덮여있다던 곳이 콘스탄티노플이었지만...
이후 오스만 터키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서 동로마제국을 끝장냅니다.
그리고 터키의 술탄은 스스로 로마황제라고 공언을 합니다.
왜냐면 로마의 정통을 동로마제국으로 봤고 그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장악하고 인민을 지배하기 때문에 스스로 로마황제위에 올랐던것이죠.
뭐 이런것... 유럽인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ㅎㅎㅎ
그렇지만 이쪽이 신성로마제국보다는 더 로마황제에 알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담이지만 로마제국멸망 이후 (오래전 미국 영화상의 로마제국 멸망사는 서로마로...) 러시아 공국이 비잔티움제국 황제의 몇촌 여동생인가와 결혼했다고 로마황제를 계승했다고 선언합니다. (짜르는 카이저의 러시아어입니다. 러시아 황제는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의 위에 있고)
역시나 서유럽에선 무시 하지만 러시아 역사에 있어서 그 연속성을 소비에트와 연관시키는 사람도 있더군요. 러시아가 지배하는 기독교 세계 = 소비에트가 지배하는 공산주의 세계, 물론 전세계입니다.
이렇듯 각기 자기들이 유리한데로 주장하는 것이 유럽의 정통성이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고 미국에 백인이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한국의 학자들은 식민지를 근대화시켜주신 일본식 교육을 최소한 제가 배울때까진 했던것입니다.
그리고 위에 오스만 터키 로마황세가 더 낫다는 글에는 유적도 존재합니다.
그리스는 그자체로 로마이전부터 있었고 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 (로마시)이 멸망한 뒤에도 1000년을 더 지탱합니다.
그리고 그 영토는 그리스를 중심으로 터키도 역시 해당되지요.
헬레니즘 문명과 로마 문명 그리고 터키까지의 역사적인 흔적들이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로마는 파도 파도 유물이 나온다고 할때 과연 이스탄불은 어떠한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바로 바다를 건너면 터키땅이고 그 땅에는 몇천년간의 역사적인 흔적들이 쌓여있습니다.
트로이 유적이 나온곳도 발굴하다보니 7~8겹으로 덮혀있다고 하더군요. 가장뒤인지는 모르지만 로마시대의 흔적도 나왔다고 합니다. 트로이 유적은 3번째인가 4번째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