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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09 12:29
제사나 차례 문화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것
 글쓴이 : 아삼
조회 : 804  

설이 얼마전 지나고 이제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사나 차례의 기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에 몇자 적어봅니다.

사람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제사나 차례가 유교가 기원이며 유학이 한국이 전파되면서 제사라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일 겁니다.

이 주장의 출처를 보니 주로 특정 종교로부터 수십년전부터 꾸준히 나온 얘기더군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거짓말입니다.

보통 제사라고 하면 돌아가신 조상의 기일에 지내는 기일제사(기제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실 주자가례는 물론이고 유교에서는 기일제사의 풍습이 없었습니다. 사당을 지어놓고 때마다 조상에게 제례를 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돌아가신 날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사실 불교식 기일제사입니다.

즉, 기일제사라는 것은 원래는 유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는데,
유교식 제례 규칙(주문공가례)가 성리학과 함께 고려말에 들어오면서 소위 성리학자들이 주자가례의 형식으로 제사를 지내야한다며 보급시킨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일반 서민부터 왕실까지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너무 많이 지내서, 아주 기본이 4대조 조상까지 지내는 것이라 고려 공민왕때 신분에 따라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조상의 숫자를 제한하기 까지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 서민은 부모님 제사, 그 이상의 하급 관리는 3대조, 그 위는 5대조, 또 그위는 7대조 조상까지 등등...이었죠.

그리고, 성리학이 들어오고 주문공가례가 들어온 이후에도, 일반 서민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제사는 불교식으로 지냈습니다. 홍동백서니 하는 제사음식을 차리는 차림새의 기원은 사실 이 불교식 제사 형식에서 나온 겁니다.
(제사에 대해서 보자면 동사강목에 고려시대에는 선친의 기일에 사람들이 절에 가서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다며 그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죠.)

심지어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식 문화를 강제했던 조선시대에도 왕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소위 유학자나 양반들 역시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내거나 주문공가례에 불교식 제사를 적절히 섞어서 지냈습니다. 이게 지금의 제사 형태의 직접적인 원류입니다.

조선시대에 아주 강력하게 불교식 제사를 단속하고 유교식 제사 형식인 주문가례를 장려하여 18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주문가례가 일반화되고,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와 소위 양반집안이라는 집안이나 유림에서 지내는 형식이 내려온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제사라고 부르는 돌아가신 날짜에 선조를 기리는 기일 제사는 절대로 유교가 그 기원이 아닙니다. 더구나, 원래 고려말에 도입된 성리학이나 주문가례에는 기일제사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성리학이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불교식으로 조상의 제사를 지내오던 것을 단지 유교식으로 형식만 바뀐 거죠.

그런데, 불교에 대해서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불교에는 원래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없습니다.
불교식 제례라고 하면 49재니 장례관련해서는 있지만, 돌아가신 날짜에 제사를 지내는 기일제사는 불교에서는 원래는 없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불교가 이 땅에 도입되면서 원래 있던 조상 제사를 불교식 형식으로 치루기 시작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과거 국사책에서는 불교가 전파되면서 제례 형식이 불교식으로 바뀌었다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더구나, 복숭아를 올리면 안된다거나, 팥을 올리면 안되고, 마늘 등 오신채를 제사에 쓰면 안된다는 것은 사실 불교와는 관련이 없고, 무속신앙이라고 폄훼되는 토착 신앙의 금기문화입니다. 이걸 불교가 흡수-포용한 것이죠.

이렇게 보면, 제사라는 것은 유교와도 관련이 없고, 불교와도 크게 관련이 없으며, 유교나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이 땅에 존재하던 것을, 불교, 유교가 도입되면서 그 형식만 그에 따라서 변해온 것이라고 추정이 가능합니다.

최소한 삼국시대부터 제사가 존재했다는 것은 삼국사기인가에 불국사를 건립한 김대성의 일화를 보면 김대성의 전생의 부모(천민)가 어린 나이에 죽은 김대성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부터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교 형식에 맞춰서 지내고,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주문가례에 맞춰서 지낸 것이지 제사라는 것 그 자체는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부터, 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한 겁니다.
알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형식의 변화와 기원을 억지로 왜곡되게 주장하는 건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일부 유학자들도 기일제사의 전통을 마치 유학-주문가례로부터 나온것인 듯 말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소위 유림이나 그쪽 사람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지는 몰라도 잘못된 것입니다.

공자가 우리 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면 당시 우리 민족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지내고 때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그것을 부러워하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공자때는 아예 유학이라는 것이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그때 이미 3년 상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주문가례니 뭐니 하는 유학과 우리나라의 제사의 기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근거입니다.

더불어 조상숭배를 위한 제사와 비슷한 의식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만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문화학자가 말하기를 유럽에서도 제사와 비슷한 풍습이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조상숭배는 전세계적인 전통으로, 인류학자에 따르면 기독교가 퍼지기 전인 유럽 등지에도 제사 비슷한게 존재했었고, 중동지방이나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도 제사와 비슷한 형식의 조상숭배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그런 조상숭배 문화가 없어진 이유는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기독교에서 조상숭배를 악-이단으로 규정하며 없애는 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라면 죽이고 파괴했다고 하죠.

최근에도 아프리카쪽으로 선교를 나가면서 그 지역에서 조상숭배 문화를 어떻게 없애면 좋을지 하는 것이 선교사들 사이에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른데 아프리카 일부 지역은 그냥 날짜 정해서 조상을 기리는 의식을 하고, 또 어떤 지역은 매일 밥상을 따로 차리면서 돌아가신 조상을 산 사람처럼 대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이단시 하면서 어떻게 하면 없앨까 연구하고 노력하는게 기독교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절대로 제사는 유교 문화의 유습이 아니라 삼국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그것이 불교가 전파되면서 불교식으로 형식이 바뀌고, 유교가 전파되면서 유교식으로 형식이 바뀐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의 다른 지역들도 형식만 다르지 제사와 비슷한 조상숭배 의식은 과거에 존재했었거나 또 존재해 왔습니다. 단지 외세의 침략 또는 다른 종교에 의해 그 전통들이 파괴되고 왜곡된 것이죠.

참고자료:

한국세시풍속사전 http://folkency.nfm.go.kr/sesi/dicPrint.jsp?DIC_ID=8138&xslUrl=dicPrint_Pop.jsp&printYN=Y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10986&cid=50221&categoryId=50230

두산백과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1126&cid=40942&categoryId=32167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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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17-02-09 13:06
   
사실이라면 대단하네요... 잘못알고있던걸..
유림이 17-02-09 17:2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재창조하는 게 세상'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