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조선은 건국되었습니다.
조선의 건국은 과거 동북아의 다른 나라의 건국과는 달랐습니다.
대체로 토벌과 합병으로 건국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조선은 정권 이양의 형태로 국가가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조선 건국 당시에 조선 건국을 반대하는 실질적 세력이 많았고, 다른 정권 이양의 방식으로 고려로 회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려 추종 세력들도 존재했다고 봐야 합니다.
더군다나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무장으로 외적 퇴치로 국민의 지지가 높은 인물이었으나 그의 정치적 역량은 이름값보다 못했다고 봐야합니다.
실제로 고려 말 고려를 개혁하고 새 시대를 일구자는 성리학 기본의 신진 사대부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지지기반이 필요했고, 이성계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 새 나라에 대한 철학과 이상에 도달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봐야합니다.
사실상 조선 건국의 이념적 토대와 정치적 방향은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다 설계했다고 봐야 하며, 이에 대한 왕족의 반발로 건국 초기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치적으로 혼란해지자 조선이라는 나라의 방향성은 더욱 모호해지게 됩니다.
태조에서 정종으로 정종에서 태종으로 다시 세종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4대 세습에 있어 그 기간은 불과 20여 년에 불과했습니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었는데 세종의 즉위는 1418년으로 건국 후 26년 만에 4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세종은 불안한 조선의 이념적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우선 정도전이 이룩한 신권 중심의 통치 체제와 태종이 이룩한 강한 왕권의 절충을 해야 했습니다.
그결과 세종은 스스로 성리학자가 되어 누구보다더 이념적으로 완비된 왕이 되어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성리학적 질서 확립이 조선 왕의 근본임을 표명하며, 후대 왕들의 방향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세종은 성리학적 질서 확립을 통해 조선을 이상세계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때 성리학적 질서는 중국의 사대가 아닌 조선 자체로의 성리학적 질서 완비를 의미한 고로 우리 나라 독자의 천문학이 필요했고, 법학이 필요했으며, 음율을 세워 법적 질서 확립도 이룩하려 했습니다.
더불어 바른 소리를 만들어 백성을 교화하고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질서가 확립된 중세 이상사회를 이룩하고자 한 것입니다.
세종께서는 혼란기에 나라의 군주가 되셨고, 당대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셔서 당시에 어느 나라도 하지 못 했던 이상 실현에 가장 가까웠던 군주가 됐습니다.
당신의 엄청난 노력은 얼마나 당신께서 나라의 왕으로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셨는지를 알게 하므로 지금도 존경하게 하고, 또한 당신의 고뇌가 느껴져 슬픔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