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8-02-04 13:02
세종 때를 이야기 해 봅시다.
 글쓴이 : 흑룡야구
조회 : 538  

1392년 조선은 건국되었습니다.

조선의 건국은 과거 동북아의 다른 나라의 건국과는 달랐습니다.

대체로 토벌과 합병으로 건국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조선은 정권 이양의 형태로 국가가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조선 건국 당시에 조선 건국을 반대하는 실질적 세력이 많았고, 다른 정권 이양의 방식으로 고려로 회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려 추종 세력들도 존재했다고 봐야 합니다.

더군다나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무장으로 외적 퇴치로 국민의 지지가 높은 인물이었으나 그의 정치적 역량은 이름값보다 못했다고 봐야합니다.

실제로 고려 말 고려를 개혁하고 새 시대를 일구자는 성리학 기본의 신진 사대부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지지기반이 필요했고, 이성계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 새 나라에 대한 철학과 이상에 도달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봐야합니다.

사실상 조선 건국의 이념적 토대와 정치적 방향은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다 설계했다고 봐야 하며, 이에 대한 왕족의 반발로 건국 초기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치적으로 혼란해지자 조선이라는 나라의 방향성은 더욱 모호해지게 됩니다.

태조에서 정종으로 정종에서 태종으로 다시 세종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4대 세습에 있어 그 기간은 불과 20여 년에 불과했습니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었는데 세종의 즉위는 1418년으로 건국 후 26년 만에 4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세종은 불안한 조선의 이념적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우선 정도전이 이룩한 신권 중심의 통치 체제와 태종이 이룩한 강한 왕권의 절충을 해야 했습니다.

그결과 세종은 스스로 성리학자가 되어 누구보다더 이념적으로 완비된 왕이 되어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성리학적 질서 확립이 조선 왕의 근본임을 표명하며, 후대 왕들의 방향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세종은 성리학적 질서 확립을 통해 조선을 이상세계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때 성리학적 질서는 중국의 사대가 아닌 조선 자체로의 성리학적 질서 완비를 의미한 고로 우리 나라 독자의 천문학이 필요했고, 법학이 필요했으며, 음율을 세워 법적 질서 확립도 이룩하려 했습니다.

더불어 바른 소리를 만들어 백성을 교화하고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질서가 확립된 중세 이상사회를 이룩하고자 한 것입니다.

세종께서는 혼란기에 나라의 군주가 되셨고, 당대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셔서 당시에 어느 나라도 하지 못 했던 이상 실현에 가장 가까웠던 군주가 됐습니다.

당신의 엄청난 노력은 얼마나 당신께서 나라의 왕으로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셨는지를 알게 하므로 지금도 존경하게 하고, 또한 당신의 고뇌가 느껴져 슬픔을 느낍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왜라면 18-02-04 13:04
   
반역으로 바뀌었죠.

이성계 이방원이 사대부를 내세워 만든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자주성과 민족의식이 고려보다 한참을 밑도는 나라였습니다.

명나라에 나라 팔아먹은 놈이 이성계입니다.

--------------------------------------------------------------

생각해보니,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에게 불쾌감을 유발 할수도 있겠네요.

지우려다가 그냥 남겨둡니다.
     
흑룡야구 18-02-04 13:10
   
저는 정도전이 결국 자신들의 사대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명분 획득을 목적으로 명에 제후적 반열을 얻고자 사대를 실시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이 때의 사대는 일단의 정치적 목적으로 굳이 비유하자면 중세 유럽에서 프랑크 제국이 자신들이 야만인이 아님을 인정 받고자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성계나 이방원은 '왕'이 되고 싶었지 정치적 철학은 없었다고 봅니다.
          
깍기감자 18-02-04 13:12
   
정치적 철학이나 계획은 정도전이 다했죠...
이방원이나 이성계는 결국 정도전의 장기말에 불과했고.....
하지만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는 바람에 조선은 미완의 국가가 된거고.
깍기감자 18-02-04 13:09
   
위화도 회군이라는 대승적 뒷통수사건이 조선의 최대약점......
이런 약점을 달고 사는 조선의 분위기가 사병의 규제와 문신의득세를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국방력 약화의 최대공로자가 되죠.
이런 것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 호란 등등 끊이지 않는 외세의 바람속에서
살게 했구요. 또한 우리가 현재에도 계속 중국에게 꼬리 밟히는 사대부적 풍조
가 이때 완성되죠. 빌어먹을;.;.!
     
흑룡야구 18-02-04 13:11
   
그 기반에는 정도전이 있었죠.

정도전은 실리주의적 입장이었겠지만 지금 와서 보면 모든 악순환의 원흉이네요.
          
깍기감자 18-02-04 13:14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정도전의 생각은 결국 민본주의사회 였거든요.
다만 완성하기 전에 이방원에게 날렸죠...결국 이방원이 원흉이라고 생각함...
욕심만 가득한 돼지...
               
흑룡야구 18-02-04 13:19
   
정도전을 따르는 세력도 문제였고, 과전법을 시행하면서 사대부들이 귀족화되는 토대를 마련한 것도 근원적 문제였다고 봅니다.

물론 너무 급진적인 토지 제도를 할 수 없었다는 당시의 현실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중인이었던 사대부들이 조선의 귀족처럼 되면서 그들의 세습화와 보수화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이라 봅니다.
                    
깍기감자 18-02-04 13:22
   
역설적으로 그래서 정도전이 아쉬운 겁니다. 결국 건국초에 기득권 세력이 형성되는 것은
막을 수 없고 그걸 끊어내는 것은 권력은 준 당사자 뿐인데 이방원이나 이성계가 그 이해
당사자가 아니었단 겁니다. 사대부 세력의 지나친 팽창을 억제하고 왕 사 민 세개의 세력
의 균형은 맞춰줄 인물이 정도전이었다는 생각이죠.
                         
흑룡야구 18-02-04 13:25
   
지난 역사에 만약은 없는고로 더욱 아쉽네요.

저는 정도전이 모두 할 수 있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당대의 분위기에서 왕파와 사대부들 모두에게 공적이 되었기 때문에 척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 놓고 사대부들은 그를 죽도록 방치한 주제에 추앙하는 역겨운 모습까지 보여줫죠.

똑똑하고 욕심 많은 지식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유래인 18-02-04 13:09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문종이 5년만 더 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흑룡야구 18-02-04 13:12
   
비슷한 맥락으로 정조가 좀 더 살았더라면 싶네요.

여러 정황상 거의 독살이던데 이 부분 제발 규명됐으면 좋겠습니다.
          
촐라롱콘 18-02-04 13:21
   
정조 독살설은 오늘날에는 거의 폐기처분된 학설입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정조독살설로 밥벌어먹는 차원을 넘어

그 내용을 근간으로 한 대중역사서-소설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당시 저를 비롯하여

여러 수많은 독자들이 엉터리 작자들 배만 불리는데 이용당하고 일조했다는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정조암살설의 근거로 삼는 연훈방(수은연기를 환부에 쬐는치료법)은...

수은의 중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당시로서는 피부에 난 종기를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대중역사서와 소설에서 당시 정조와 노론벽파가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묘사했지만... 정조가 죽기 몇 년전부터 당시 노론벽파의 수장인 심환지와 다정하게 주고받은

서신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허무맹랑한 소설로 밝혀졌습니다.
               
깍기감자 18-02-04 13:25
   
수은중독의 현상은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급사하지는않아요.
그리고 머리가 빠지고 손톱이 갈라지는등의 분명한 부작용이 있어요. 게다가 직접 복
용하는 것이 아닌 피부에 증기를 노출시키는 치료법은 수은의 체내 누적속도가느려요.
          
유래인 18-02-04 13:24
   
역대 왕조에 수많은 독살설들이 있죠
그중 사실인 경우도 있겠지만 정조 암살설은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 봅니다
               
흑룡야구 18-02-04 13:25
   
너무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의심이 들죠.
                    
유래인 18-02-04 13:29
   
정조가 엄청난 골초에 술꾼이었습니다.
엄청난 일중독이기도 했고요 ㅋ
돌연사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거예요.
                         
흑룡야구 18-02-04 13:33
   
정조가 죽고 이어지는 세도 정치 100년이 조선을 근대화를 이루지 못 하게 하고 식민지로 이어지는 전조였다고 보니에 정말 눈물나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민성이 18-02-04 13:14
   
지금도 흔히 표현되는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밥은 이성계가 준 밥이라는 이야기 뜻입니다.
그만큼 당시 백성들에게 이성계는 구원자였습니다.

고려말 권문세족의 토지독점이 망국의 원인이였습니다.
원래 전근대사회에서는 흔한 패턴입니다.
극소수의 토지독점 -> 천재지변으로 흉작 -> 유민발생 -> 대량아사자 발생 -> 농민반란 -> 왕조교체

고려도 그렇게 자주적인 국가는 아니였습니다.
몽골제국의 사위국이였고 왕족들은 고려인+몽골인 혼혈이였습니다.
     
왜라면 18-02-04 13:20
   
이밥은 입쌀에서 ㅂ이 탈락한 말입니다. 찰밥과 상대되는 말입니다.
이성계가 준밥이라서 이밥이라는 이야기는 좀 아닌것 같아요.
왕정시대에 임금을 칭하는데 이가 김가 박가하며 성씨를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흑룡야구 18-02-04 13:16
   
다소 방향이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데 저는 세종대왕께서 너무 어려운 자리를 맡으셨는데 엄청난 노력으로 그 일을 제대로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유래인 18-02-04 13:19
   
단하나 자식농사는 실패하셨네요 ㅠㅠ
     
흑룡야구 18-02-04 13:21
   
너무 잘 놓아 놔서 문제였죠.

똑똑한 아들들을 너무 많이 놓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