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최영의 선생이 일명 '태권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방문한 해인 1967 년에 촬영한 영상
ㅡ 최영의는 이중국적자였다
ㅡ 최영의의 일본명 대산배달에서 '대산'은 그의 성 '최'를 파자하여 얻은 것이다. '배달'은 배달겨레의 그 배달이 맞다.
ㅡ최영의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민족종교,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유명한 고장이다.
ㅡ 이 영상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ㅡ 그가 태권도 사범들과 교류하는, 즉 대련 시범을 보이는 장면에서 연신 태권도 사범들의 서기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는 점이다
ㅡ 이 1967 년 영상에서 태권도 사범들은 비록 지금의 경기 태권도 보다 무게 중심이 낮으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활발한 스텝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ㅡ 그런데 최영의는 연신 그들의 자세를 앞굽이나 뒷굽이의, 중국 쿵푸에 연원을 둔 전근대적 자세로 교정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ㅡ 가라데는 일본이 아니라 엄연히 류구왕국의 무술이며 항일무술이었고 그 무술은 중국 남권에 기원을 두고 있다
ㅡ 이 영상에서 서기와 스텝에 대한 당시 태권도 사범들과 최영의의 인식과 견해 차이를 분명히 볼 수 있다
ㅡ 이 지점이 바로 태권도와 가라데를 가르는 지점이다
ㅡ 최영의와 최홍희는 일부 알리지다시피 극진공수도와 태권도를 통합하고자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최홍희의 입지가 급격히 불안해지면서 유야무야 되었고 두 무술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ㅡ 최홍희는 태권도의 최초 창안자이며 이는 분명히 명시 돼야 한다
1. 태권도의 정체성은 1960 년대에 형성이 돼 그 중심 기원이 되는 송도관 공수도와 대련방식에 있어 차별화
되었고 1970 년대에 고유성을 획득 완성한다
ㅡ 태권도의 정체성과 자질성, 고유성을 확정해야 한다
ㅡ 이것을 하지 않아서 가라데의 아류니 코리안 가라데니 하는 폄훼가 끊이지 않는다
2. 전자호구제를 폐지하고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ㅡ 권투에 전자 호구나 채점 있는가? 없지 않은가!
ㅡ 카메라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세상이다
ㅡ 판정시비는 카메라 기술로 보완해야 한다
ㅡ 태권도는 스포츠이기 이전에 무술이다
3. 태권도는 스포츠인가 무술인가?
ㅡ WTF와 KTF는 스포츠 태권도를 대변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대변하는 기관인가?
ㅡ 이대로 가다가는 답이 없다
ㅡ개혁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