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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1 19:29
하멜 표류기에 보면...
 글쓴이 : 생마늘님
조회 : 1,915  

벨테브레 라는 또다른 네덜란드 인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다가 관직까지 가지고 있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안녕하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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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14-05-21 19:31
   
     
생마늘님 14-05-21 19:35
   
와..감사합니당
써리원 14-05-21 19:33
   
하멜이랑 동시대사람이죠
     
생마늘님 14-05-21 19:35
   
우옹......
전쟁망치 14-05-21 19:51
   
그럼 박씨중 그 네델란드 사람의 피가 섞인 박씨도 있을수 있단 이야기?

물론 이제 거의 희석 되었겠지만.
     
생마늘님 14-05-21 19:54
   
그럴수도 있겠네요 ㅋㅋ
김님 14-05-21 19:52
   
1996년 KBS 다큐멘터리 중세 '조선의 비밀-하멜 표류기'에서 벨테브레이를 연기한, 전 주한 네덜란드 대사 요스트 볼프스빙컬(Joost Wolfswinkel). 이 다큐멘터리에는 네덜란드 대사 뿐만 아니라 대사관 농무관이었던 프레데릭 보스나 씨가 헨드릭 하멜 역을 맡은 등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적극적으로 참여, 협력하였다.

朴淵 / 朴燕, 1595년 ~ ?

본명은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Jan Janesz Weltevree). 조선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이기도 하다.[1]

1627년 일본으로 항해하다가 표착해 제주도에 상륙했으나 곧바로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조선시대 전반의 관례로는 조선과 통교하고 있는 국가중에 국경근처 국가 출신의 표류자는 직접 송환하고, 그렇지 않을경우 무조건 명나라로 보내 조치를 의탁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정세가 좋지 않았기에 부산의 일본 왜관에 의뢰해서 고향으로 보내려했으나 일본은 이것으로 뭔가 거래를 해려는 속셈으로 박연의 일행이 절리지단(切利支丹 크리스챤)이란 이유로 잠짓 거절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쿨하게 포기해버렸고 송환 노력은 거기서 끝난다. 결국 그는 훈련도감에서 근무하며 결혼해서 귀화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박연과 그의 동료 2명이 참전했으나 박연을 제외한 두 명은 전사했다. 그후 항복해온 일본인 및 청국인을 감시하는 일과 훈련도감에서 청이 싫어 조선으로 귀화해 온 명나라인을 비롯한 외국인들로 구성된 부대의 지휘관 자리도 맡았으며 대포를 개량하는 일 등을 맡았다고 한다.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헨드릭 하멜이 조선으로 표류했을 때 통역을 맡기도 했다. 갓 쓰고 한복 입은 백인이 와서 하멜이나 동료들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26년이나 지나서 조선에 적응이 다 되었고 반대로 네덜란드어를 같이 나눌 사람도 병자호란 이후에 죽어서 도통 말을 나누지 못해서인지 통역을 맡을 때 꽤 낯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나와있다. 하멜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네덜란드 말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서툴렀다고 한다. 다만 며칠동안 같이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시 능숙해졌다고. 조선인들은 하멜에게 벨테브레이를 가리키며 "이 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 줄 아는가?"라고 물었고 하멜이 "우리 네덜란드 사람이 틀림없다"고 대답하자 조선인들은 웃으면서 "틀렸다. 이자는 코레시안(조선인)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을 보아 조선인들에게는 인종은 달라도 같은 조선인으로 대우받은 모양이다.

하멜 표류기에서는 별 다른 얘기가 없이 사무적인 얘기만 나눈 것처럼 되어 있지만 조선측의 기록에는 벨테브레이가 하멜 일행을 처음으로 만난 이후 숙소로 돌아와서 소매가 다 젖도록 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기록상으로는 조선 여자와 결혼해서 1남 1녀를 두었는데, 당연히 혼혈이라 네덜란드 얼굴과 조선 얼굴이 반반 섞여 있다고 놀랍다는 기록이 있다. 여담으로 하멜은 자신이 탈출하던 1668년까지만 해도 벨테브레이가 살아있었다고 했는데 하멜이 일본으로 탈출하는 시점이면 이미 70이 넘은 나이로 고령이었으나, 언제 죽은지는 정확하지 않다.

성을 바꾼 것으로 보아 본관도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외국 귀화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본관을 하사받은 기록이 없다. 그의 후손을 자처하는 박씨 문파도 없는 상태. 네덜란드에 가족이 있었고, 후손이 한국에 있는 박연의 후손을 찾으러 왔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김충선과는 정반대인 경우.

하멜과 그의 동료들은 도둑질을 해서라도 조선을 탈출하려 했던 것에 비해 그는 무기 기술에 해박하고,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으며, 거친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 했던 것(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건장했다고 한다)으로 보아 군인 혹은 해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 건축가의 아들이고, 그의 대부가 시장님이었으며, 300굴덴짜리 집을 살 정도로 부유했던 하멜과는 처지가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당시 네덜란드 기록을 추적한 결과 벨테브레이의 신분이 밝혀졌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사략선 아우케르베르크 호의 장교였다고.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은 아우케르베르크 호가 나포한 중국 상선을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는 바타비아로 몰고 가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중국 상선에 옮겨 탔다가 태풍을 만나 아우케르베르크 호와 떨어지고 식수가 떨어지자 마침 가까이 보이던 제주도에 부하 두 명을 거느리고 상륙했는데 그 때 중국 상선의 원래 선원들이 배를 탈환하고 가버리는 바람에 제주도에 남겨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

《탐나는 도다》에서 하일이 연기하기도 했으며, 소설 《천년의 왕국》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출처 : http://mirror.enha.kr/wiki/%EB%B0%95%EC%97%B0
     
생마늘님 14-05-21 19:55
   
으허.....그냥 링크만 해주셔도 되는뎅  감사해여 ㅎㅎㅎ
          
김님 14-05-21 19:57
   
항복해온 일본인은 항왜라는 집단으로 병자 호란때 대우에 불만을 품은 상태서(이태원이 한성에서의 집단 거주지-이태원이란 한자의 뜻이 다른 태생의 마을이란뜻임)

이괄의 난때 항왜(함경도 같은 국경지대의 이주,정예 부대)들은 이괄편에서 싸우다 또다른 김충선(항왜 귀화 장수)
같은 조정의 진압 됨

명청 교체기때 명나라 장수(임진왜란떄 참전 했던 장수 집안 포함)를 포함한 명나라 유민들도 귀화함
               
생마늘님 14-05-21 20:00
   
음...몰랐던거네요...
               
제냐 14-05-21 20:41
   
김님 만세 ( ^^)人(^-^)人(^^ ) 만세 ( ^^)人(^-^)人(^^ )
싱끌레어 14-05-21 20:13
   
전 세종 때 나오는 박연이 저 박연인 줄 알았는데... 동명이인이었구나..
어쩐지 서양인이 동양의 음악을 잘 안다 했어;;;;
     
나와나 14-05-21 22:16
   
ㅋㅋㅋㅋㅋ
멀리뛰기 18-06-10 08:27
   
하멜 표류기에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