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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1 15:59
북한이 한때 리듬체조 강국을 꿈꾼 적이 있었군요
 글쓴이 : 뉴넥서스
조회 : 845  

'새로운'강국'탄생 예고 유니버시아드 체조 휩쓴 북한" 기사를 알게되서 찾아봤는데 못 찾겠네요.
그런데 그당시 북한에서 리듬체조 선수하셨던 분이 한국으로 오셔서 국가대표팀 코치를 하고 계시군요.
지금도 국가대표팀 코치인지는 모르겠는데 북한에서는 최연소로 훈장도 받았다고 합니다.

손연재 선수는 너무 오랫동안 지나치게 비난이 많아서 이제는 개인적으로 호불호도 없을만큼 관심이 없지만
1970년대에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이후 몇 관왕씩 하는 선수들이 배출된
북한을 보면
리듬체조가 아시아인이라서 불리한 건 아닌거 같아서 글 하나 더 써봅니다.


제가 찾던 기사는 아닌데 북한 리듬체조 선수 관련 글의 일부입니다.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코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한 북한 여자 선수가 풍부한 표정에 우아한 몸짓으로 최상급의 연기를 선보여 마침내 결선 진출에 성공한다. 국제사회가 지켜본 인류의 축제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 북한 선수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집중되었다.

15년 뒤, 그는 돌연 남한 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2012년 그는 대한민국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코치로 후배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원조 리듬체조 요정’ 이경희 코치의 이야기다.

세계를 휩쓴 ‘리듬체조’ 요정

‘출신성분’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북한에서 이 코치는 고위층의 자제였다. 평양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그의 집이 있었다. 북한에서도 고위층 자택 밀집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출신성분과는 무관했다. 오로지 그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것이었다. 북한 내부는 물론 세계무대를 휩쓸 정도로 그의 리듬체조 실력은 당대 최고였다.

우선 북한에서의 그의 실력은 늘 1등이었다. 1989~1992년 ‘백두산 상’경기, 보천보 횃불상 경기, 공화국선수권대회 등이 그의 주 무대였다. 개인종합 1위와 종목별 1위는 늘 그의 것이었다.

국제무대에서의 성적도 화려했다. 1989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3위, 1990년 육상선수권대회에서 볼 부문 1위를 기록했다. 1990년 월드컵대회, 1991년 원정경기(러시아, 라트비아, 불가리아, 프랑스), 1991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개인종합 1위, 볼 및 줄 부문 1위, 곤봉 부문 2위 등을 차지했다.

이 코치의 선전으로 인해 북한이 스포츠 강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당시 북한에서는 최연소의 나이로 ‘공화국 공훈체육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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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또 16-08-21 16:11
   
몰랐던이야기네요 어떻게입국했는지궁금하네요.ㄷㄷㄷㄷ
붕붕붕 16-08-21 16:25
   
불리한 건 아니다 라는 말을 뒷받침 하려고 찾아낸 자료가 그리 많진 않은가 보네요.

근데 리듬 체조역사상 세계정상권인 선수가 역사상 한 10명 남짓만 지금까지 있어 왔던 것도 아닌데..

아시아 선수 3-4명이 있었다고 해서, 아시아인들이 다른 대륙 특히 동구권이나 유럽에 비해

많이 쳐진다라는 인상을 불식시키기엔 한계가 명확한 것 아닌가요?
     
뉴넥서스 16-08-21 17:10
   
역사도 짧고 인기종목이 아닌데다 동구권에서 발달한 종목이라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밑에 아시아인은 메달 따는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글에 대한 반론이니 북한에서만도 여러명의 세계대회 메달리스트가 나온걸로 충분히 반론이 된다고 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서유럽, 북미도 많이 쳐진다고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