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은 체력을 엄청나게 소진하는거죠.
바둑이 의외로 오래가요. 옛날엔 40~50대 이상부터 더 쳐주기도 했죠.
근데 나이먹으면 깜빡수때문에 못버티는거에요. 아무리 완벽하게 두다가도 한수 삐긋하면 그걸로 끝나는게 바둑이거든요. 조훈현의 경우에 그 깜빡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은 계가가 필요없는 대형전투바둑으로 기풍을 변화시켰고 오십 넘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린거구요.
일본기원을 중심으로 그런 얘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둑은 나이가 들어야 숙성이 된다.>
실제로 70년대까지만 해도 나이가 40은 되어야 타이틀에 근접하는 실력들을 갖추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타이틀을 보유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다가 소위 말하는 한국산 천재들이 나타난게 조치훈 조훈현 시리즈죠.
일본기원은 조훈현이 귀국하고 조치훈이 무쌍을 찍는게 이 시절입니다.
그 전의 늙다리들은 다 물러가는 거구요.
한국에서는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시리즈구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불세출의 천재가 나타나죠.
바로 이창호입니다.
이 당시에는 일본의 바둑 부심이 정말 대단해서 자기들이 세계 최강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게 바둑의 끝인줄 알고 있었죠.
세계적으로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창호가 겨우 지학의 나이대에 모두 뒤엎습니다.
회자해 보건데 <세계바둑 최강 - 바둑의 끝에 도달했다/신과도 두 점이면 족하다>던 자뻑의 당시 일본기원의 바둑 실력은 지금과 비교해 보면 최소 2점 이상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상황에 이창호가 최초로 <진짜 완성형 바둑>의 실력을 들고 나타난 거죠.
알파고가 나타나서 휘젓고 있는 이 시대의 바둑도 사실 진짜로 완성형 바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느정도 근접했다고 보는 거죠.
이창호를 불세출의 천재라고 칭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구시대적 도제제도하에서 나타난 완성형 기사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 당시 바둑 기사(특히 일본기사들)들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스승 누구 밑에서 사사받는 도제 방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이창호가 9살에 조훈현의 자택으로 들어가 바둑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도제 방식으로요.
그런데 이 도제제도의 치명적 약점이 수직적 수업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창호도 그랬다고 하지만 대략 한두달에 한번씩 스승이 지도대국이라는 걸 해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사형제들끼리 어느정도 연구도 하고 하겠지만 실력이 성장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기인하는 거죠.
그런데 한국기원은 이창호와 이세돌이 나온 이후 일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때가 아마 송아지삼총사가 출사표를 내 던질때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한국기원에는 중국이나 대만 일본에는 없었던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합니다.
바로 젊은기사들의 연구모임이 활발해지면서 이 기사들이 자체적으로 리그전을 펼치며 합동연구를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이 합동연구는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 노력 결과와 pc통신의 보급으로 탄생된 인터넷 바둑이 과거 이창호 이전의 바둑수준을 현재의 바둑만큼 끌어 올린 근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서 <진짜 바둑의 끝>에 근접하게 된 현대의 바둑에서는 과거처럼 나이 많은 기사들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현대의 기사들은 과거의 기사들이 40대에나 겨우 얻을 수 있었던 지식과 경험을 10대 중반이면 이미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노화가 진행되어 번뜩이는 기지를 잃어가기 시작하는 기사들이 재기발랄한 신진기사들을 상대하기 힘들어지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뇌가 가장 왕성하고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청소년기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당연히 인간이 바둑을 가장 잘 둘 수 있는 시기도 그때쯤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라는 거죠.
과거에 일본기원에서 <왈왈>했던 것들은 다 조또 모르는 것들이 척~ 했던 것이고, 그것을 한동안 고집했던 일본 바둑은 당연히 삼류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기원은 한국기원의 합동연구 방식을 더 발전시켜 아예 국가에서 주도해서 끌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가 최근 중국바둑의 강세로 이어진 것이구요.
정보화의 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