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국내 딸기농가 재배면적의 90%를 차지한 절대강자는 일본 도입종이었다. 국내 육성종은 1%를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이었다. 과일이 많이 달리는 장희(章姬·아키히메), 병에 강하고 과육이 단단한 게 강점이던 레드펄, 둘 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김 시험장장이 같은 해 1월 ‘매향’이란 국내 육성종을 개발·보급했지만, 맛이 뛰어나고 신선도가 오래가는 데 견줘 병충해에 약하고 재배가 까다로운 탓에 일본 품종이 싹쓸이하던 판도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거기다 우리나라가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에 가입하면서 품종 사용료(로열티) 문제까지 불거졌다. “일본 정부는 장희·레드펄 개발 육종가들을 위해 변호인단까지 지원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했어요. 해마다 30억~60억원에 이르는 사용료가 일본으로 건너갈 판이었죠.” 딸기를 둘러싼 한-일전은 일본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2005년 한국 축구의 박지성 선수에 비견될 ‘설향’ 품종이 눈꽃처럼 빛나면서 등장했다. 김 시험장장이 1995년 딸기 품종 육성에 뛰어든 지 10년 만이었다. 장희와 레드펄의 교배로 태어난 설향은 둘의 장점을 고루 갖춰 병충해에 강하고 과즙이 많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땅에 묘목을 꽂아놓기만 해도 딸기 농사가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재배가 손쉬웠어요.” 농사짓기가 까다로워 재배 기술에 따라 수확량이 천차만별인 딸기 농업에서 설향의 장점은 돋보였다.
설향은 국내 농가에 보급된 뒤 해마다 일본 도입종들을 10%포인트 넘게 밀어내면서 재배면적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3년 만인 2008년에는 단일 품종으로는 일본의 레드펄을 제치고 딸기 재배면적 기준으로 국내 1위 품종에 올라섰고 올해는 무려 75.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