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자연계에서 사회를 이루며 군집으로 사는 동물들은 흔한데요. 군집이 주는 여러 장점을 이용하며 생태계에 적응하며 사는 동물들입니다.
인간은 이른바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지만(아주 고전적인 발상) 인간 역시 사회적 동물로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사회란 동물의 그것과 유사하면서도 매우 다른데 인간의 사회는 인류 문화의 충적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문화와 역사의 적층적 결과물이 현재의 사회라는 것이죠.
인간의 사회는 큰 사회와 작은 사회로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큰 사회는 대체로 국가나 민족 단위의 사회를 말하며 작은 사회는 가족 단위의 슬하 사회를 말합니다.
큰 사회는 경쟁을 기본으로 서열을 정하며 발달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큰 사회는 아무리 사회가 민주화된다고 할지라도 절대적 평등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서열과 계급을 정하기 위한 끊임 없는 투쟁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지극히 경쟁적이며 이 경쟁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엄청나게 발전한 규칙과 질서 속에 이루어집니다.
이는 동물 사회에서 수컷들의 경쟁 서열 사회와 비슷한 양상을 띕니다.
사실 인간이 개체에서 집단이 되고 다시 사회가 된 데에는 이러한 경쟁적 서열 욕구가 작용한 것이고, 그 경쟁의 치열함이 현재의 문명과 지식, 과학을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경쟁 사회는 자칫 타 집단과의 대결이나 투쟁을 만들 수 있고, 그 범위가 커지면 전쟁과 같은 비 상식적인 폭력 행동까지도 촉발합니다.
인류는 이러한 큰 사회에 회의감을 느끼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큰 사회의 파괴 혹은 소멸을 이야기하며 무정부주의나 비국가주의 혹은 사회주의 같은 이상론을 펼쳤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이 다시금 증명됐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큰 사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슬하 사회라 불리는 모계 중심의 가족 사회가 그것입니다.
이 사회는 가족 단위의 작은 사회인데 유교에서 말하는 부계적 족벌 사회와는 다릅니다. 왕어미라 불리는 모성을 토대로 자녀 관계로 형성되는 혈족적 사회로 이 사회는 경쟁이 아닌 공감과 이해라는 정서적 사회로 가족 보존이 목적이 되는 사회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 두 사회는 상충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언제나 함께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가족의 범주에서 가족을 벗어난 곳을 큰 사회로 보고 남성을 중심으로 경쟁과 서열을 추구하고 가족 안에서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모계적 사회가 서로의 가치를 가지며 상보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을 두고 남녀 평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현상에서 아쉬운 점은 여성들의 큰 사회로의 진입이 관건인 것처럼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근 사회에 진입하려면 경쟁과 투쟁, 서열이 기본인데 그것은 원하지 않으면서 권리 중심적 입장에서 평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큰 사회에서의 지위는 절대 평등하지 않은 입장에서 나온 것이며, 끊임 없이 그 지위를 위해 투쟁 중이라는 것을 인지 하지 못하고 그 지위가 누리는 권리나 혜택을 중심으로만 해석한다는 것이죠.
반문하자면, 가족 사회에서 슬하 사회를 꾸리던 모성이 그 가족 내에서 어떠한 지위를 누렸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굳이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 여성들의 큰 사회로의 확신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모성의 모습은 전쟁과 가난의 환경에서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존재로 보여지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전쟁과 가난이 우리 민족사에서 매우 흔한 현상이거나 우리 역사 전반의 시간을 차지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이를 모성의 모습으로 잣대를 삼는 것은 또한 문제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