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8-11-20 23:13
에휴 진짜 잘 모르면서 왜 허위사실을 유포함?
 글쓴이 : 허거닭
조회 : 746  

한편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시조 혁거세거서간( 西)조에서는, “이에 앞서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 양산촌()이고, 둘째는 돌산() 고허촌(), 셋째는 취산() 진지촌() 혹은 간진촌()이라고도 하였다. 넷째는 무산() 대수촌(),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인데,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라고 되어 있다. 진지촌()이 간진촌()으로 불렸다는 기사와 촌이 언급된 순서를 제외하면 동일한 내용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 이사금() 9년(32)조에는, “봄에 6부의 이름을 바꾸고 그에 따라 성을 내려주었다. 양산부()를 양부()로 고치고 성은 이()로 하였고, 고허부()를 사량부()로 고치고 성은 최(), 대수부()를 점량부()[또는 모량부()라고도 하였다.]로 고치고 성은 손(), 간진부()를 본피부()로 고치고 성은 정(), 가리부()를 한기부()로 고치고 성은 배(), 명활부를 습비부()로 고치고 성은 설()로 하였다. 또 관()을 설치하였는데, 17등급이 있었다.( [] )”라는 기사가 확인된다.

여기서는 촌()이 이미 부()로 변경되었다가, 유리 이사금 9년(32)에 다시 부의 명칭이 변경된 것처럼 되어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 사량부()와 본피부()의 성이 각각 정씨(와) 최씨()인데, 여기에서는 뒤 바뀌어 있다. 이것은 『삼국유사』권1 기이 신라시조 혁거세왕( )조에서 본피부를 설명하면서,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라고 하였지만, 『삼국사기』권46 열전6 최치원()전에서는, “최치원은 왕경의 사량부()사람이다.()”라는 구절에서처럼 인식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부의 개편과 동시에 17관등제도 정비된 것으로 되어있다.

이상에서 사료를 통해서 살펴본 것처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언급된 6촌에 대한 부분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6촌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유리 이사금 9년(32)에 6촌을 6부로 바꾸고 각각의 부는 성씨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6촌장은 신라가 건국되기 전 진한 땅에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과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의 여섯 촌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다 서기전 57년에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신라의 첫 임금으로 추대했다.

그 후 신라 제3대 유리왕이 6촌을 6부로 고치고 6촌장의 신라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과 성을 내렸다.
 
양산촌은 급량부(及梁部) 이씨(李氏), 고허촌은 사량부(沙梁部) 최씨(崔氏), 대수촌은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 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 정씨(鄭氏), 가리촌은 한기부(漢岐部) 배씨(裵氏),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로 신라에 여섯 성씨(姓氏)가 탄생돼 각각 시조 성씨가 됐다.
 
 
 
그냥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던가 토종 한국인으로 자부심 가지고 살았는데 왜 좉문가님이 나를 이민계로 만듬?
 
미치고 팔딱 뛰겠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님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빵야빵야빵야 탕탕탕~~~!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고수열강 18-11-20 23:14
   
아 뭔가 있어보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지척!
jennnny 18-11-20 23:14
   
이크
     
칼까마귀 18-11-20 23:17
   
탱크
          
jennnny 18-11-20 23:22
   
조크
booms 18-11-20 23:15
   
???
화난늑대 18-11-20 23:17
   
좉물가? ㅎㄷㄷ
     
마마무 18-11-20 23:19
   
글쓴이님이 착각을 하시는 겁니다.

진한의 사로국이 신라랑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면 저런 넌센스가 생깁니다.
달빛총사장 18-11-20 23:17
   
네~
마마무 18-11-20 23:17
   
혁거세는 마한(진한) 우두머리 거서간입니다.

신라와 무관합니다.
     
허거닭 18-11-20 23:20
   
제일 하단에 기사 인용한 내용 보면 알겠지만 저 성씨들이 님이 말한 흉노들이 들어오기 전에 있던 토종인들이고요 그로 인해서 흉노 왕이 저들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성을 부여한 겁니다

혁거세는 외래종이고요 저 성씨들 부여된 사람들이 토착민 입니다
          
마마무 18-11-20 23:22
   
그 당시 신라란 나라 자체가 없었습니다만;;;
               
허거닭 18-11-20 23:25
   
하단에 기사 안 봤냐고요?

당연히 신라란 나라 없을때 부터 살던 토착민들을 대상으로 유리왕이 안정적으로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포상 같이 성씨를 부여했다고요

외래종이 토착민 다스리려고 하기 위해 부여했다는데 무슨 신라가 있었네 없었네를 논함

저 성씨들은 신라3대 왕이 부여해준건데

에휴 진짜

잘 모르면 그냥 글을 쓰지마요
허위사실 유포하지 말고.....
                    
마마무 18-11-20 23:32
   
에휴 역사를 공부하세요.

신라는 500년 전후 지증왕때 생겼습니다.

님이 말하는 시대는 마한이 다스린 삼한시대입니다.

진한의 왕을 차지한게 거서간 초기에 박씨였고 석씨였습니다.

이후 계림국이 흉노와 세력을 키워 김씨가 거서간을 차지했고 신라를 개국한겁니다.



님이 말하는 성씨 태생을 보면요.

6촌장이 살던 시절 진국(마한)->부여(백제)->신라->석씨 집안은 일본으로 귀화

이후 동대사에서 신으로 모심


그러니 님은 신라계 성씨가 아닙니다.

그냥 이후 신라 역사로 편승 귀속된거죠.

그래서 역사학자는 신라의 역사를 천년으로 보지 않습니다.
                         
허거닭 18-11-20 23:40
   
신라라는 이름으로 불리우지 않았다고 신라가 아니였다?

ㅋㅋㅋㅋㅋ

그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그전에는 대한민국이 아니였으면 이제 70년 역사밖에 없겠군요?

ㅋㅋㅋㅋㅋㅋ
                         
마마무 18-11-20 23:49
   
진한이 신라가 아닌데 왜 신라계죠??

애초 삼한은 마한인데요??
신의한숨 18-11-20 23:22
   
허 씨를 한참 찾았습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