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DNA까지 가지 않아도 신라가 북방민족계열이라는 증거는 많죠...마립간이라는 명칭에서도 '칸'이라는 북방민족왕들 지칭하던 흔적이 보이고..삼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심히 낙후되었던 신라 초기의 유물들만 보더라도 북방쪽 기마민족들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는 편이고..부여,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는 양쯔강 쪽에서 번성했던 예맥족들이 그 뿌리이고 신라와 가야는 그 뿌리가 달랐다고 보는 견해가 많기도 하구요..그래봤자 어차피 지금은 다 섞여서 한반도에 모여 살고 있죠...전주이씨도 전국에 살고 밀양박씨나 김해김씨도 전국에 있고...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니까요...
훈족과 흉노가 다른지 같은지도 모른다고 해야됩니다.... 아틸라 당시 로마 누군가 쓴글보면 생김새가 전형적인 동양인 상으로 묘사됩니다... 2차대전 막판 독소전 당시 소련군에는 많은 아시아계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가르켜 훈족 이 쳐들어왔다.. 독일인들이 이렇게도 표현을 했다던...
경주김씨는 원래 선비계 흉노족이란건 이젠 거의 확실해요...
당나라 어디서 발견된 신라김씨 묘비에서 밝히고 있거든요. 어떻게 온지도 일단 설은 나와있죠. 고구려와 전쟁서 남북 별개로 가던 세력이 퇴로가 차단당해 신라로 내려온...
그래서 광개토비에 신라를 가르켜 구시속민(예로부터 속민이었다- 이유는 속민세력이 현재 왕하니깐...)
라 하지 않았을까...
신라 건국설화도 얼추 비슷하죠..
신라로선 고마웠을것.. 왜? 그로 인한 선진군사문물로 "독립"가능성이 있슴..
신라와 같은 경우에는 대개 왕실이나 고위 귀족들의 유골을 대상으로 표본을 삼기 때문에 신라전체구성원의 표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표본오차가 있을겁니다. 북부에는 예맥세력이 버젓히 있는데 경상도 일부지역에서만 흉노관련 DNA가 발견된다는건 신라가 흉노인들의 나라가 아니라 흉노인들이 신라에 일부 들어왔다라는 증거입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신라 왕은 백제인 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기타 여러 기록을 보더라도 초기 신라왕은 백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백제는 고구려와 동족인 부여족 입니다. 결국 고구려 백제와 신라는 같은 혈통을 지닌 국가 입니다.
단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로 6 부족은 토착세력이고 신라왕은 백제 세력이라는 것이죠. 외부에서 왕을 초빙하는 것은 북방계의 풍습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초기 러시아 민족이 서로 간에 분열되어서 심하게 다투자 명망있는 바이킹의 족장을 초빙해서 왕으로 삼습니다. 러시아 민족과 바이킹은 서로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족으로 바이킹이 왕이 되어도 상관이 없던 시기 였죠. 이 것이 바보 이반왕이 스웨던(바이킹)과 싸우면서 독립 함으로써 둘이 대립되는 관계가 되며 이 후 피요트로 대제 시에 스웨덴을 격파 하면서 동유럽의 강자가 됩니다.
신라 역시 마찮가지의 일이 일어났다고 봐야 합니다. 가야 역시 토착세력이 김수로를 왕으로 초빙하는 형태로 설립 되어서 역시 신라와 같은 계열이라 봐야 하고요.
신라의 왕실은 북방세력이라는 것이 확실 한 것이 신라를 일본에서는 시라기라 불렀는데 뜻은 백목 입니다. 이 백목이 자작나무로 신라 천마총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자작나무로 된 유물이 많이 발굴 됩니다. 그리고 자작나무는 한반도에 자생하지 않으며 이 보다 북방에서 자랍니다.
소위 자이리톨이라는 물질도 자작나무에서 추출 하는데 이 자작나무의 분비물이 달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 부터 알려진 사실로 샤먼니즘에서 굉장히 귀중하게 여기는 나무로 백목이라는 말은 무당을 의미 합니다. 초기 박혁거세의 부인 부터 이름들이 모두 무당의 이름인 것으로 보아 초기 신라왕실은 무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사라는 말은 박시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는데 박시란 박수무당을 뜻하는 알타이 어 입니다. 박혁거세는 일종의 박수무당임을 알수 있고 차차웅 등등은 무당을 말하는 이두 표기법이라 합니다. 선생님을 뜻하는 스승이란 말이 차차웅에서 기원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스스옹이라 발음되며 이것이 스승이라 변한것 하며 아직도 일부 지방에서는 무당을 스승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라왕실은 아마도 백인계열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모용선비를 가르키는 몽골어가 바얀으로 이 바얀의 한문 표기가 백안白顔으로 백인종이죠. 그리고 이 바얀이라는 말은 부유 또는 부자라는 말로 소설이나 기타 문학에서 모용씨들이 부자였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이들이 부자 이어서 부유 또는 부자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부유 또는 부자라는 말이 백두산의 백두와 후지산의 후지(富士)등로 변하는 것 이고요.
그리고 원래 이 부유 또는 부자라는 말은 부여 개국시조라 여기는 부루의 별칭입니다. 결국 모용씨도 부여족으로 실제로 모용씨는 부여을 멸망하고 번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