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와 정사를 막론하고 공명은 뛰어난 인물임에 틀림없으나, 딱 하나 연의든 정사든 어디에서도 그에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물기용 측면이죠. 유비는 특유의 리더쉽으로 인물기용에 뛰어난 자였습니다. 관우/장비/조자룡/위연/마량/장완/비위/동윤/곽유지/이엄 등등 그 시대의 영웅이라 불릴만한 자들을 적극 기용했고, 마속은 '입만 산 자'로 경계 했죠.. 어떻게 보면 인물 보는 눈이 조조랑 필적할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공명은 연의,정사 어디에서도 보면, 일개 세력을 형성했던 관우측 세력(요화/왕보/주창/관평 등등..)을 시종일관 견제했고, 유비가 견제했던 마속을 중용했다가 읍참마속해야 하는 상황까지 만들었으며, 위연을 계속 의심했죠. 속이 좁은 인물인 양의를 끝까지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연의에서도 보면 중달이 "공명은 뛰어난 자지만, 인물 보는 눈이 없다"고 평했을 정도죠..
그래서 유비가 죽고 공명이 실권을 장악한 이후.. 이상하게도(?) 유비시대 때 인물 이후 점차 인물들의 씨가 말라가기 시작합니다. 끝까지 촉을 뒷받침했던 요화/장완/비위/동윤 등은 모두 유비시대 사람이죠.
정말 위대한 군주,리더가 되려면 무엇보다 인물기용에 뛰어나야 하고 시운을 타고 나야 하며, 원대한 꿈을 꾸고 그걸 이룰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조조와 유비의 영웅담론에서 조조가 직접 지목한 이유기도 하고.)
공명이 진정한 군주가 아니라, 최고의 모사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합니다.
공명은 연의에서도 보면 촉나라 장수가 조무래기가 되었다며 위와 오가 부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그건 대부분 본인의 책임이 클겁니다.(물론 계속된 전쟁으로 장수가 많이 죽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공명이 삼분지계를 논할 때 유비를 택한 이유도 연의에서 보듯 '천하를 다루는 사람 밑에서 공명을 함께 하기 쉬웠던' 것에 근원이 있겠지요. 공명은 생각보다 인물간 경쟁심리가 강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연의에서조차.)